『박씨 부인전』은 17세기 말~18세기 초로 창작 연대를 추정하지만, 다른 고전 소설처럼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한글 필사본만 칠십여 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토끼전』등 판소리계 소설만큼 당대에 큰 인기를 누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인조가 청나라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한 병자호란을 겪은 백성들이 이야기 속에서나마 오랑캐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기 때문은 아닐까?
소설가 김종광씨는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과 그 교주본을 바탕으로 삼고 그밖의 이본 십여 종을 참고하여 이 작품을 썼다. 고려대 소장본은 임경업 장군의 활약을 주로 다룬 다른 이본들에 비해 박씨 부인의 남다른 능력과 재주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박씨 부인전』은 박씨 부인이 이시백과 혼인하여 박대를 받다가 허물을 벗는 전반부와 오랑캐의 침략을 물리치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얼굴은 이끼로 덮인 돌덩이처럼 빡빡 얽었고 눈은 실 드나드는 바늘귀만하고, 코는 험한 바위 같고 나발 같은 입은 두 주먹을 넣고도 남을 만큼 큰’, 흉측한 박씨 부인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온갖 박대를 받으면서도 이를 묵묵히 견뎌낸다. 오히려 집안 식구들이 자기 때문에 불편해할까 봐 뒤뜰에 ‘피화당(避禍堂)’을 지어 홀로 외로운 생활을 해나간다. 박씨 부인의 신통한 재주는 시아버지의 조복을 하룻밤 만에 혼자 다 짓는다든지, 비루먹은 망아지를 사서 키우면 높은 가격에 중국의 사신이 사리라는 것을 예측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박씨 부인의 초인적인 능력은 허물을 벗은 후에 더욱 두드러진다. 임경업을 죽이기 위해 간교한 청나라 왕과 왕비가 보낸 여자 자객 기홍대를 도술로 물리치고 오히려 호되게 꾸짖어 청나라로 돌려보냄으로써 임금으로부터 ‘명월부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이후에도 박씨 부인은 청나라의 침략을 예상하고 임경업이 북쪽 의주에서 내려와 한양성을 지켜야 한다고 남편인 우의정 이시백에게 말하나 간신 김자점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조선은 용골대 용율대 형제가 이끄는 오랑캐에게 침략을 당해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하는 등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된다. 특히 피화당 주위의 신기한 나무들이 모두 갑옷 입은 군사로 변한다거나 몸종 계화에게 도술을 걸어 용율대의 목을 베어 집 앞에 걸어놓고, 이에 분개한 형 용골대와 대적해 물리치는 박씨의 기개와 능력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결국 용골대를 비롯한 오랑캐들은 ‘다시는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청나라로 돌아가지만, 수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렸으며 여인들과 세자, 대군 등이 잡혀 가게 된다. 다시 한양성으로 돌아온 임금은 박씨 부인의 혜안에 따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박씨 부인에게 ‘충렬부인’이라는 칭호와 상을 내려 이시백의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박씨 부인전』에는 역사에 실존한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함께 등장하는데 역사에 실존하는 인물은 주로 무능력하여 끝내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남성들이며, 허구의 인물은 주로 초인적인 능력과 용기, 지혜를 갖춘 여성들이다. 이런 점에서 『박씨 부인전』은 조선 후기 여성 사회 일각에서 일기 시작한 남성 사회에 대한 도전 의식을 반영하며,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옛날에 비해서 ‘남녀 평등’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순응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시대는 남녀 구별 없이 개개인이 마음껏 자신의 삶을 펼쳐 나가는 시대가 될 것이며, 또한 강대국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와 통일을 이루어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요즘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박씨 부인의 인내심과 지혜,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줄 만하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