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이요
김광한
천주교 신자는 누구든지 미사시간이 시작되면 맨 처음 이런 고백의 기도를 합니다. 가슴을 세 번치고 큰 소리로 남의 탓이 아니라 제 탓이라고 말할 때 남을 원망하던 생각은 조금쯤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상례입니다. 물론 다만 그 시효가 짧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이 있지요. 중세의 수도원이 배경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월리암 수사(修士)는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기위해 파견되지요.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은 놀랍게도 고명한 학식을 가진 수도원의 도서관장인 호르헤 수사이지요. 독선(獨善)의 화신인 호르헤는 수도자들이 금서(禁書)를 보고 타락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책장에 독을 발라 놓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지요.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호르헤에게 월리엄은 이렇게 호통을 칩니다.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는 진리...그것이 바로 악마야."
그리고 그의 제자에게 이런 말을 하지요.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항상 조심하라. 그들은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정의란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을 했고 정의인지 불의 인지 알지도 못한 사람들만 희생을 당했습니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정의가 될지 모르지만 상대에게는 그것이 불의가 되는 진리 아닌 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인류에 명멸한 수많은 혁명의 시작은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망하게 끝났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정의, 그리고 독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 나폴레옹 등 영웅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오직 그들만의 정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로소이다!하면서 자신의 탓을 먼저 생각할 때 이런 독선과 진리로 위장한 속임수는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