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처소
분명히 구약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과 성막과 어떤 특정한 지리적 장소에서만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요한복음 4장 20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한 이유이다. 근본적으로는 이 여인이 예수께 자기가 어디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하시는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21절에서 "여자여 내 말을 들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대답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얼마 안 있어서 두 곳 다 없어지게 될 것이므로 두 곳 다 예배의 처소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옛 언약의 상징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가 이제는 더 이상 그리심 산이나 예루살렘에서 드려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성막이나 성전 또는 의식(儀式)이나 제사 제도의 의미를 부인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상징이나 예표나 모형적인 모든 것들을 부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징들이 폐해지고,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나 제사나 제사장들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신자(信者) 개인 개인이 산 성전(living temple)과 산 제사장(living priest)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단회적(單回的)이고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영원한 제사로 드려질 것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제사는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상징적인 것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다만 상징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성막이나 성전에 한정되어 계시거나, 또 우리가 그런 곳에 제한하여 둘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도록 마음에 자극을 주는 수단으로서, 그것들은 상징들일 뿐이다. 그러나 새 언약에 있어서 그 상징들은 실체로 대치됨으로써 외적(外的)인 것에서 내적(內的)인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근본적으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처소로 알려진 모든 장소들이 이제 얼마 안 있어서 폐하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운명하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나뉘어져 누구든지 지성소로 곧장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A. 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사마리아 성전은 B. C. 125년에 이미 파괴되었다. 따라서 모든 상징적인 제도들은 그 마지막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이제 성전도 없고 눈에 보이는 상징적인 건물도 없으니 하나님을 어디서 예배해야 되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새 언약의 실체
1. 성전인 성도 개개인의 몸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산(living) 성전이다. 당신이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입니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은 말이다. 당신은 해변이나, 산이나, 시골이나, 당신의 거실에서, 또는 당신이 운전할 때나, 나무 그늘에서 쉴 때나, 혹은 숲속을 거닐 때나, 현관에 앉아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나, 아침에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를 맡을 때에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어디로 가서 어느 환경에 처해 있든지 간에, 당신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생기게 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옳은 말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교회당에 나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성전인 성도들의 회집(會集)
오늘날에도 독특하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만나시는 장소인 예배처소로서의 성전이 있다. 이제 이 특별한 건물에 대해서 살펴보자.
에베소서 2장 19-22절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아주 생생한 용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인다. 또 그들을 분리된, 개인적인 성전(성도 개개인이 성전이라는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집합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로, 바울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동일한 시민"(동료시민 : fellow citizens)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fellow citizens)이요"(19 상반절).
그런 다음,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권속"(19 하반절)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한 가족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동일한 시민으로서, 또는 보통의 가족처럼 혈연적으로만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20-22절은 우리가 "한 건물로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즉, 우리가 연결되어 한 건물을 이룬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하나님께는 특별한 건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가시적(可視的)인, 구속받은 성도들의 산(living) 회집(모임)인 것이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는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개개인이 성전일 뿐만 아니라, 집합적(성도들의 모임)으로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의 거대한 성전인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5절
베드로는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산 돌"(living stones)이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모임에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예배 처소를 이루게 되는데, 그분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을 나타낼 수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
바울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라고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모일 때에 우리 중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9, 16-17절
9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한 다음에, 16-17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우리가 왜 모여야 하는가? 놀랍고도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가 산(living)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로 지어진 성전이아니라 살아 있는 몸으로 지어진 성전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혼자 은밀하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회집(會集)하여 예배를 드림으로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히 10:24)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집합적인 회집(會集)이 필요하다. 이로 말미암아 산돌이 하나하나 쌓여져 하나님의 거처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실제로는 지리(장소)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예배를 위한 특별한 건물이나 장소가 필요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구속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우리에겐 특별한 제사장이나 제사가 필요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제사장들이며,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가 드려졌으므로 우리는 중보자 없이 우리 스스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산 성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주간의 첫날에 예배를 드릴 것을 제정하셨을 때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예배에 충실케 하기 위함에서였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충실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일에 드리는 공 예배인 것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또 성도들의 회집(會集)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 10:25)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당신이 하나님의 구속(救贖)하심을 입은 백성들 중에서 받는 격려와 증거와, 당신이 혼자 있을 때는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성령)이 이루시는 독특하고도 기이한 역사들이 바로 당신이 응답해야 될 내용들인 것이다. 당신은 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예배 처소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 자신을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 밖에 두는 것이 된다.
당신의 불은 꺼져가고 있지 않은가?
어느 목회자가 교회에 살 나오지 않는 사람을 심방했다. 심방을 간 날이 마침 추운 겨울날이어서 두 사람은 벽난로 가에 앉아서 불을 쬐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교회 출석이 불규칙한 그 사람에게 목회자는 "지난 주일에 형제님을 뵐 수가 없더군요. 시간이 나고 마음이 내킬 때만 교회에 나오시는 것 같은데, 정말 교회 출석이 뜸하시더군요. 형제님이 매주 교회에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사람이 자기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목회자는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라고 말하고는, 벽난로 옆에 있는 집게를 집어서 난로 안의 모든 화목들을 따로 따로 완전히 흩어 놓아 화목들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했다. 잠시 후에 불꽃이 일고 있던 화목들의 불길이 모두 사라지고 불이 꺼져갔다.
"형제님, 지금 바로 이와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교회의 모임에서) 떨어져 나가면 당신의 불도 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집(모임)에 함께 참여하여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예배를 드린다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 나는 내 생애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특별한 시간(주일날의 공 예배)을 갖는 것을 한 번도 건너뛴 적이 없다. 당신도 그래야 한다. 공 예배에 성실히 참석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