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장,
아들들 역시 엄마가 아침에 주방으로 나온 것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오늘부터 어머님께 살림을 배우려고 하니 일찍 일어나야지요.
어머님!
저도 밥 좀 주세요."
유혜영은 당연하다는 듯 의자에 앉는다.
김형우는 그런 모습을 보지 않는 듯 모두 보고 있다.
민희는 국과 밥을 유혜영 앞에 놓는다.
"무엇으로 밥을 먹어요?
숟가락과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먹어야 해요?"
팔을 뻗으면 닿게 되어 있는 수저통이다.
민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수저통에 있는 수저를 꺼내어 며느리 앞에 놓는다.
그 모든 모습들을 그저 말없이 지켜보는 김형우다.
시어머니가 의자에 앉든 말든 밥을 먹기 시작하는 유혜영이다.
"당신도 어서 앉아요.
그리고 어서 먹고 준비를 합시다."
유혜영은 밥을 먹다 말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준비를 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려 온다.
"어디를 가시려는 것은 아니죠?"
"왜 아니냐?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다."
"저하고의 약속을 잊으셨어요?
오늘부터 살림을 가르쳐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는 것을 잊으셨어요?"
"살림을 가르쳐 달라?
네가 결혼을 한 것이 엊그제냐?
네가 아직도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냐?
그리고 네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살거라!
우리는 네게 살림을 가르쳐 줄 시간이 없다.
우리 나름대로의 생활을 방해하려고 하지 마라."
"아버님!
며칠만.........."
"며칠이 아니라 단 일분도 안 된다."
김형우의 냉혹한 거절의 말이다.
민희는 두 사람의 대화에 무엇이라고 끼어 들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입을 다문다.
"어머님!
제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시겠어요?"
"어미야!
내 다시 말을 한다만 네 어머니를 일을 부려먹을 생각일랑 하지 말거라!
도우미는 얼마든지 다시 부를 수 있다.
조금이라도 그런 불손한 생각으로 네 어머니를 집에 묶어두려는 마음이었다면 새롭게 마음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보거라!
얼마든지 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손가락 까닭 하지 않고 네 어머니를 부려 먹고 있는 것이 아니냐?
어느 집 며느리가 가만히 앉아서 다 해놓은 국과 밥을 달라 손가락으로 먹어야 하는냐 하며 시어머니를 부려먹고 있냐?"
"........................."
유혜영은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다.
"아버지!
제가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이 잠이 덜 깨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 삶에 더는 누구든지 끼어드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여보!
일어납시다.
모처럼 아침을 맛있는 곳에 가서 사 먹읍시다."
김형우는 민희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이층으로 올라간다.
유혜영은 속이 뒤집어 진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속을 끓인다.
"무슨 일이 있었어?"
성일이 묻는다.
"무슨 일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며칠 못 오신다고 해서 그동안 어머님께 살림을 배우려고 부탁을 드렸을 뿐인데 아버님께서는 잠시도 어머님을 떠나려 하지 않으시니 그렇지."
"당신이 살림을 배우겠다고?
당신이 살림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잖아?
전에 할머니께서 생존해 계실 때 이미 다 배우고 잘 해 왔던 살림아니었어?"
"그렇지만 손을 오래 놓아서 그런지 모든 것이 어설퍼서 그래요."
"그래도 아버지 말씀대로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도우미아주머니는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도 부를 수 있잖아?
왜 꼭 어머니가 필요해?"
"당신은 모르면 차라리 잠자코나 있어!"
유혜영은 남편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시아버님이 정말 싫다.
아무리 여자에게 빠졌다고 한들 저럴 수는 없는 일이다.
여우에게 씌워도 단단히 홀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유혜영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일 수가 없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화풀이를 할 대상이 없다.
멋지고 우아하게 성장을 하고 나가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유혜영은 막내 동서 조은숙에게 간다.
"형님!
아무런 연락도 없이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유혜영의 안색이 편안해 보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상냥하게 대한다.
"지금 시간이 있어?"
"네!
오늘은 한가한 편이에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동서!
나 정말 속이 상해서 이대로는 못 참겠다."
"왜요?"
"아버님이 정말 왜 그러시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이건 완전히 그 여우 년을 끼고 도시는데 정말 못 봐주겠다."
"무슨 말씀이세요?"
"일부러 도우미아주머니를 오지 못하게 하고 대신 살림을 맡기려고 하니 아버님이 잠시도 집에 두지 않고 데리고 다니시는데 정말 화가 나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 정도로 붙어 다시는 거예요?"
"아휴!
말도 하지 마!
눈꼴사납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다.
아예 그년에게 일을 시킬 생각을 하지 말라고 못을 박으시더라."
"세상에!
시집을 왔으면 당연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여자의 본분이 아닌가요?
어떻게 아버님이 그러실 수가 있어요?"
조은숙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안 그래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유혜영이다.
"완전히 여왕마마시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해서 모시고 다니는 것을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그러니 돈이 얼마나 새어 나가겠어요?
보나마나 우리에게 줄 임대료를 주지 않고 그렇게 몽땅 다 써버리시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속이 더 뒤집어 질 수 밖에.
언제부터 차를 바꾸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고....."
"형님!
이러다가 그나마 있는 것 몽땅 다 털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무슨 수라도 내야지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동서를 찾아와 이렇게 상의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
무슨 방법을 생각을 해 보라고."
"정말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막아야지요.
벌써 몇 달을 임대료 수익을 한 푼도 주지 않으시고 있으니 정말 너무 하세요."
"그러니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간의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아?
여자 맛을 보더니 늙은 영감이 완전히 돌아버렸어!"
두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해 댄다.
한참을 그렇게 둘이서 죽이 맞아 거품을 내 품으며 시부모님을 향해서 온갖 험한 소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형님!
방법을 바꾸어 보세요."
"어떻게?"
"일단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잘 해 드리세요.
아주 상냥하고 공손하게 대하시기도 하고요."
"뭐라고?
자네는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해?
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유혜영은 펄쩍 뛴다.
"잠시 그렇게 변한 척을 하시란 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아버님을 혼자서 나가게 하시게 하고 일을 시키든 모욕을 주든 해야 제 발로 걸어나갈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지요."
조은숙은 교묘하게 충동질을 한다.
조은숙으로서는 그 방법이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손해 볼 것이 없다.
큰 형님이 아버님의 눈 밖에 나기만 하면 더 좋은 일이고 형님의 계획이 성공을 해서 그 여자가 집을 나간다고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로 인해 아버님이 충격을 받아서 쓰러지신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난 그런 방법을 쓰기 싫다.
단 한 순간이나마 그렇게 잘해주기 싫은데 어떻게 해?"
"그럼 할 수 없지요.
형님이 하지 못하신다는 일을 제가 대신 할 수도 없고 그럼 지금 이대로 살아가시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겠어요?"
"..........................."
유혜영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허기야 형님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형님 자존심에 그러기 쉽지 않겠죠.“
조은숙은 교묘하게 유하영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마음먹으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어?
잠시 자존심 따위 묻어버리고 속 창자 다 빼버리고 하려고만 마음을 먹으면 하지.“
”형님은 마음도 여리고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에 못하실 겁니다.“
”내가 마음이 여리다고 생각해?“
”그럼요!
강한 것 같지만 아주버님도 손에 쥐지 못하신 것이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 아닌가요?
남편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시는 형님이 그런 일을 하시겠어요?“
유혜영은 막내 조은숙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다.
“자네가 어떻게 생각을 하던 반드시 해 낸다.
잠시 내 자존심 따위는 접어두고 그 여우같은 년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한다.
그래야만 우리들 재산을 지킬 수 있고 고스란히 상속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요!
그 일은 큰 형님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대신 할 사람이 없습니다.
형님만 믿을게요.
그리고 제가 필요하시면 연락만 해 주세요.
쏜살같이 달려가서 거들어 드릴게요.“
조은숙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한다.
조은숙의 그런 속셈을 간파하지 못한 유혜영은 자신의 편을 확실하게 만들었다며 조금은 안도하며 기분을 푼다.
다음날 이른 아침 유혜영은 주방으로 나와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준비라고 해야 밥과 국을 끓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민희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혜영의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한다.
“어머님, 편히 주무셨어요?”
“어?..........그래!
헌데 에미가 밥을 하고 있는 것이니?“
”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면서 어머님께 배워야지요.
오늘 아침은 제가 해 보았습니다만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어제 오늘 새로 시집온 새색시도 아니면서 그 정도를 못하겠니?
이렇게 에미가 주방에 서 있으니 주방이 꽉 차는 느낌이고 아주 좋구나!“
“그럴 리가 있나요?
저 보다는 어머님이 아주 잘 어울리는 주방인 걸요.
공연히 저는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주부의 손길은 이 집안 어느 곳이나 모두 기다리고 있단다.
오늘 아침은 온 가족이 기뻐하면서 아침을 먹을 수가 있겠다.“
민희는 참으로 기분 좋은 아침이라는 생각을 한다.
며느리가 마음을 바꾸어 이렇게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남편도 아들도 아이들도 모두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함께 주방 일을 거든다.
성일과 아이들이 나와서 놀라는 눈으로 혜영을 바라본다.
“당신이 이 시간에 주방에는 어쩐 일이오?”
성일이 묻는다.
“오늘 아침은 내가 나오기도 전에 에미가 나와 다 했는데 다들 좋지?”
“뭐라고요?
정말 이 사람이 아침밥을 했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네!
혼자서 모두 다 했다네!“
형우 역시 놀라는 눈으로 며느리를 본다.
잘했다는 말도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고 형우는 식탁에 앉는다.
모두들 식탁에 둘러앉는다.
민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진다.
“당신도 어서 이리 앉아요.”
“조금 거들고 나서 앉을게요.”
“무슨 소리요?
당연이 며느리의 밥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거늘!”
형우는 민희의 손을 잡아끌어 의자에 앉힌다.
그러나 혜영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밥과 국을 모두의 앞에 놓는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