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다(황선미)
동화 작가 황선미
어부의 손.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간.
채널을 돌리다가 언뜻 이 장면을 보고 말았다. 이른 새벽 물안개 속에 거룻배를 띄우는 부부. 그들은 거뭇한 산과 호수에 층을 이룬 물안개 속으로 들어가며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열다섯·열아홉에 부부가 되어 평생을 호수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첫아이를 그 물에서 잃었단다. 새끼손가락도 그 어느 지점에서 잃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배를 띄우고 동자개, 떡붕어를 건져 올려야 했던 건 오지에서 어린 자식들을 키워낼 방도가 그것뿐이라서. 자식을 묻은 호수에서 평생 흔들리며 그물을 던지고 끌어 올리느라 그들 손은 그 일을 해 온 사람답게 구부러져 있었다. 놀러 온 사위가 그물 던지기를 주저하며 "엉키면 큰일이잖아요" 하니, 노인은 "엉키면 풀면 되지" 한다. 툭 뱉은 그 말이 뭉클했다. 엉킨 그물을 어떻게 푸는지, 태풍에 물고기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병든 자식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 아름답다. 부모다워서, 어부다워서, 사람다워서 참 고맙다.
'○○다운' 사람이 실종되다시피 한 시절이다. 다소 답답한 듯해도 이 말은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핵심을 돋보이게 하는 기능이 있다. 한국어 접사 '답다'는 '~와 같다' '그런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체언에 붙어 형용사를 이루는 말이자, 그 체언이 지니는 성질과 특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는 말이다. 아이답다, 젊은이답다, 친구답다, 부모답다, 스승답다, 전문가답다, 정치가답다.
‘맏이답지 못하게’ 생선 가운데 토막에 젓가락을 댔다고 허구한 날 지청구를 들어서 나는 이 말에 반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자답게 굴어라’ ‘큰딸답게 참아라’ ‘뉘 집 자식답게 행동해라’ 소리는 기어이 그 조건을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답다’에 부정적인 입장처럼 보여도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답다’가 여전히 내 좌표임을 다시 확인한다.
첫댓글 '~답다' 라는 말, 올가미 같지만 '나를 나답게' 지키는 일이기에 오히려 자유하다.
그냥 나대로 나답다.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