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어느 여행 수필 작가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낼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아요.”
화는 언제 생기게 될까요? 무시당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오해나 소통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입시, 취업, 승진, 결혼, 육아 등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화낼 준비가 된 사람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기 감정을 억누르는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화병’이 있습니다. 화병은 화를 많이 내는 병이 아니라, 적절히 표현되어야 할 울화와 억울함 등이 내재하여 있는 병입니다. 문제는 이 화병이 터지면 큰 일인 것입니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닙니다. 또 자기가 당한 것을 언젠가는 다시 되갚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가 가득한 세상 안에서, 일상 속 깊숙이 스며있는 이 화를 주님 뜻에 맞게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주님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구약성경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는’이라는 부분은 피해자와 동일한 정도의 피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복수법인 탈리오 법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넘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라는 것은 모욕에 대해서도 사랑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치는 행위는 유다인 사회에서 수치심을 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겉옷까지 내주어라.’라는 말은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 권리조차 사랑으로 기꺼이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라는 말에도 재미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법으로는 로마 병사가 유다인에게 강제로 천 걸음까지 짐을 들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천 걸음까지는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강제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동행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마음을 사랑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 기준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세상을 넘어선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권리를 내려놓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 사랑을 베풀기 힘든 대상이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할 이유를 찾기보다 사랑할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주님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이미 난 길을 따라가지 말고, 길이 없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흔적을 남겨라(랄프 월도 에머슨).
사진설명: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첫댓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신부님 강론입니다.
한국 사람은 화낼 준비가 되어있다?
신부님의 강론 잘 읽어 볼게요
늘 수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