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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
[K 생각] ㅡ 생각 경영 (9) : 역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10번 잘못했다고 10번 매번 매를 때리면 그 자식은 싸이코패스 성향을 보일 수 있다. 억지로라도 하나만이라도 찾아서 칭찬을 해줘야 크게 삐뚤어지지 않게 된다.
윤똘이 10가지 중 10가지 모두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억지로라도 한 가지는 칭찬해주려 한다.
역설 네 가지를 짚어보자.
뱃속에 칼을 품고 있다는 '구밀복검'을 MBC가 윤똘을 향해 품고 있을까 조선일보가 품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MBC가 아니라 오히려 조선일보가 품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에 입안의 혀처럼 알랑대던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앞장서 쳤듯이. (역설 1)
윤똘이 검찰공화국을 꾀한다면, 오히려 검찰 전체를 죽이는 일이다. 요직에 앉힌 검사들도 뒷날 집중 표적이 되어 역으로 사냥을 당할 것이다. 또한 뒷날 윤똘 역시 검찰에 의해 역으로 당할 것이다. (역설 2)
윤똘과 국짐이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 탓을 해대는데, 문재인 정부는 '국가의 품격'과 '정치의 품격'을 높여 놓았다. 그랬으면 윤똘과 국짐은 '보수의 품격'을 높여 세워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하지만 윤똘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박근혜가 보수 품격을 떨어뜨려 탄핵당한 일이 바로 엊그제다. (역설 3)
현재까지의 경제상황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ㆍ코로나 팬데믹
ㆍ초 양적완화, 글로벌 인플레이션
ㆍ네 번의 자이언트스텝, 킹달러 현상
ㆍ10개월 연속 무역수지 마이너스
ㆍ1%대 성장률, 경기침체
ㆍ부동산경착륙, 돈맥경화, 기업도산
ㆍ신용위기, 부채위기, 금융위기
미국 IRA(인플레 감축법안)으로 현대차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인차와 리스차는 보조금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 현대차의 노력이 물론 있었겠지만, 윤똘의 노력도 칭찬해주고 싶다. 위기를 더 큰 기회로 만든 전화위복의 성과가 될 터이다. (역설 4)
2. 2022
삼효(三效 three effects, 3E) 정책..!!
1. 재난지원금 30조원을 투입해서, 300조원의 효과(效果)를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재정이 어떻고 저떻고 따질 게 아니라!
2. 보람 : 만족, 가치, 자부심
3. 효용效用utility 쓸모, 좋은 보람, 만족, 유용성
ㅡ 공리주의功利主義utilitarianism
4. 실용實用pragmatic
ㅡ pragma(행위)+-ic(형용사 접미사)
ㅡ 실용주의實用主義pragmatism
5. 삼효(三效 three effects, 3E)
1) 효과效果 Effects 만족스런 결과, 보람있는 결과
2) 효능效能 Efficacy 보람있는, 만족스런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능력, 유효성
3) 효율效率 Efficiency 효과의 정도, 만족도, 능률
3. 2022
실용주의에 관하여(1)..!!
1.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에 함축된 두 가지 의미
(1) '방법'으로서의 실용
(2) '진리'로서의 실용
(1) 결과(practical consequence)에서 찾는 퍼어스 ㅡ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
(2) 유용성(usfulness)에서 찾는 제임스 ㅡ 유용성의 진리
2. 확장적으로 진화시킨 듀이
1) 眞理 대신 '探究(Inquiry)'로 대치시킴
2) 교육은, 흡수가 아니라 '발견'하고 '개조'하는 것
3) 문제해결은, 지식 탐구가 아니라, 문제와의 ‘끊임 없는 씨름’
4) 진리는 九九表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
5) 사상은 '진화하는 과정'
6) 인간은 '생활체', 즉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7) 인간의 삶은, 작용doing과 반작용underdoing의 연속, 즉 상호작용interaction. 즉, 도전과 응전
8) 상호작용들이 경험을 이루며, 경험이 인간의 삶을 구성
9) 상호작용이 중단될 때, 문제적 상황(problematic situation)
10) 불확실성(uncertainty)이란, 문제적 상황의 문제(problem)를 내포하는 것
11) 문제 해결(problem solution)은, 불확실성을 확실성(certainty)으로 바꾸어 놓는 것. 그 과정이 탐구(Inquiry)
12) 인간의 삶은 문제들의 연속
13)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부터의 탐구과정
14) 철학은 삶의 ‘도구’
15) “Learn by doing" 이것이 듀이의 실용주의철학
16) 철학적 관심은 결국 실천의 문제
4. 2022
《시》
책을 왜 읽고, 지식은 왜 쌓는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다!
책과 지식 / kjm
5. 2022
[펌] 조성은 (생략)
6. 2021
[moonism 해부 (1~10)]
1.
철학은 설명입니다. 설명 방식의 차이에 따라 여러 종류의 철학들이 등장해왔습니다.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과학은 자연을 설명하지만, 철학은 인간을 설명합니다.
철학사, 즉 철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철학들이 명멸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려고 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한 주머니에 때려박는 걸 시도했습니다. 그러려니 일관성이 필요했고, 그럼으로써 일관된 서술이 원칙으로 자리잡습니다.
그 서술 혹은 설명의 공통된 타깃은 무엇이었을까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 합리론과 경험론, 프영미철학과 독일철학,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자본주의철학과 사회주의철학 또는 공산주의철학, 그리고 '능력주의'까지...
유교철학과 불교철학, 성리학의 이기철학까지...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알아맞춰보세요^^
2.
'욕망'입니다. 자연은 절대 욕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처음엔 주로 '개인의 욕망'을 다뤘지만 근대 이후부터는 '사회적 욕망'도 함께 다룹니다. 이 둘을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공리주의에서 나타납니다.
주의(...ism)는 생기거나 만들어지고 자라면서 도그마(dogma, 신념)으로 굳어집니다.
각 신념들의 대립과 충돌은 전쟁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합니다. 1, 2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그랬고, 미소간의 냉전도 역시 그렇습니다. 진보와 보수간의 정치적 분쟁도 또한 이것에 기인합니다.
각기 '이론'을 구축하면서, 그 하나의 이론 속에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모두 담습니다. 공간적으로는 심지어 아프리카까지도 때려 넣습니다.
욕망은 '이익'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각 욕망들이 이익 분쟁을 일으킵니다. 또한 욕망들은 여러 욕망들로 갈라지고 분열합니다. 그리하여 욕망들끼리의 충돌, 즉 이익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경쟁 사회로 들어서면서는, 이기고 지는 스포츠나 도박 같은 '게임'에 비유되어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합니다.
"게임이 너무 불공정하다!"라는 불만에, 게임은 그대로 놔두고 "불공정을 바로 잡자"는 주장과, 기존 게임을 엎어버리고 "새판을 짜자"는 주장이 충돌합니다.
어쨌거나 그 결과가 모두에게 좋은 결과면 그게 곧 '정의'가 됩니다.
욕망의 충족은 어디서 이루어질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3.
욕망과 욕망이 만나는 곳, 바로 '시장'입니다.
거기서 욕망하는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그래서 또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생겨납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저절로 공평하게 이익을 얻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시장의 '가격'을 정부가 간섭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욕망'과 '이익', 그 다음엔 뭐가 나타날까요. 바로 '권력'입니다.
시장의 지배자, 욕망의 지배자, 이익의 독식자가 바로 그 권력입니다. 돈의 권력과 정치적 권력, 그리고 군사력.
얼마전까지 미국은 이 모든 걸 독점적으로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효 기간이 이제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 징조들이 미중간 무역전쟁이나 코로나방역에서의 최악의 실패, 인종차별의 사회적 불만, 트럼피즘에서 보여준 극단적 미국우선주의와 민족주의 등 곳곳에서 보여집니다.
현대의 정치는 '선동 정치'로 고착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각 욕망들에 부채질해서 끓게 만들고 이로부터 갈등을 유발시켜 그 해결을 자처하고 나서는 이른바 포퓰리즘 정치인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게 '방송 언론'입니다. 신문 언론의 영향력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뉴미디어가 그 빈 자리를 메꿉니다.
욕망의 정치, 갈등의 정치, 분열의 정치가 대세입니다.
그 선두엔 트럼피즘이 있습니다.
어렵게 3년 동안 모아서 1,000만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다시 또 1,000만원을 만들기 위해 3년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좀 더 빨리, 좀 더 쉽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게 욕망의 실체입니다.
개인의 욕망을 활짝 풀어줄 것이냐, 제어할 것이냐?
만일 제어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제어가 가능한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또 어떻게 증명해 보일 수 있는가?
여러분에겐 그 답이 보이십니까?
4.
코로나는, 수천년을 이어온 그 모든 인간의 욕망들을 일거에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감히 아무도 코로나에게 "왜?"냐고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대신 정부에게로 화살이 돌아갑니다.
코로나 대신 정부가 답해야 하고, 또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코로나가 막대한 피해와 손해를 주는데도, 정부는 반대로 그것(정부 정책)이 이익이라는 것을 설명해줘야 합니다.
코로나에겐 반항이 허락치 않지만, 대신 정부에게는 설명 요구와 반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국민에게 설득되어져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설득에 실패했지만, 우리는 설득이 일정 부분 됐습니다. 문제는 이 설득이 계속해서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나는 돌발 상황들, 그리고 형평성이나 불평등의 문제 제기가 계속해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부동산 폭등 현상은 실상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니까요.
세계 모두 코로나로 인하여 유동성 공급이 확대되면서 세계 공히 자연스럽게 나타난 일시적인 공통 현상입니다.
우리나라 언론만 호들갑이죠. 코로나로 인해 억눌려진 욕망들을 언론이 자극적으로 충돌질하고 악의적으로 부풀리기 때문입니다.
"지난 2분기 G7 국가의 가계처분가능소득은 코로나 이전보다 100조(원) 넘게 증가했으며, G7 국가의 주택 가격은 1년 전보다 평균 5% 올랐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전합니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코로나가 안정기로 들어선 이후에 나타날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침체'입니다.
자칫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똑같이 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머지않아 전세계의 부동산시장은 급격한 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는 영국 파이내셜타임즈의 지적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판단 오류"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즉, "문제인데 문제가 아닌 줄로 아는 것과, 문제가 아닌데 문제로 아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 중, 코로나 방역과 부동산가격 안정 문제는 불가항력의 문제로, 전자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잘 선방했다고 평가를 받지만, 후자의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서 정부 정책의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1월 5일) 2021년 첫 국무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말을 보겠습니다. 온갖 수식어 다 빼고, 정치적 수사도 다 빼고, "...을 하겠습니다"도 빼고, 오로지 "...입니다"만 보겠습니다.
"경제 성장과 발전의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지극히 낙관적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경제성장률 1위를 기록할 전망이고, 수출 반등세도 이어져 12월 수출액으로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시스템반도체, 친환경차, 바이오헬스 등 3대 신산업 분야
수출이 모두 두 자릿수로 성장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이 확대되어 미래 전망을 더욱 밝게 합니다.
주가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주가 3,000시대를 바라보는 등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 또한 역대 최고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G7 국가를
넘어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자, 느낌이 어떠신가요? 여기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코로나 백신 문제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은 가장 시급한 문제와 가장 중요한 문제 둘을 앞에 두었을 때, 무엇을 먼저 처리하시겠습니까?
단, 시급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중요한 문제를 놓치거나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떡하시겠습니까?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한 쪽을 아예 포기하시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후한 성적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언론들은 우리가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옆에서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를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은 계속해서 그런 언론들과 편승해서 정부의 바쁜 발걸음을 막아세우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왜곡된 여론에 편승해서 정부에 실망한 일부 국민들도 생겨났습니다.
자! '문재인을 위한 변명'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5.
한편에선 어둡고 그늘진 측면들이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 그 해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안타깝게도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명암이 다시금 또렷이 나타났다. 세계 최고의 방역, 최고의 성장, 최고의 수출, 최고의 국가자부심이 빛나는, 그러나 세계 최악의 빈부 격차,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복지 지출, 최장의 노동시간, 최다의 산재사망이, 마치 버려진 잿더미처럼 널브러져 있는 한국 사회의 위선적 풍경 말이다." ㅡ [한겨레] [세상읽기] 코로나 1년, 너무나 한국적인 명과 암 / 신진욱
코로나 국면에서 백신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었고, 정부가 지향한 길과 방향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성찰과 함께, "과연 그 해결책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극화의 문제'입니다. 이를 "코로나 양극화"로 부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코로나 국면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전국민의 피로감은 쌓여만 갑니다. 또한 억눌렸던 욕망들이 서서히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합니다.
욕망을 누르고 자제하는 인간은 있어도, 욕망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이 욕망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분출되느냐가 관건입니다. 욕망이 잠시 잠을 잘 뿐, 욕망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걸 착각하고 간과하면 조만간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고 문제는 커져버린 상태로 나타납니다. 그땐 이미 늦어서 수습할 길이 막혀버립니다.
'철학의 부재'가 그런 악순환을 불러 오는 것이죠.
그럼 문재인의 정치 철학은 어떤 것일까요?
아시는 분이 계시면 힌트라도 좀 주시겠습니까?^^
6.
인간의 욕망은 이기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모든 것은 코로나로부터 시작된다"라고 하지만, 본래는 "모든 것은 경제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1992년 선거 당시 빌 클린턴 후보 진영에서 내걸었던 선거 운동 문구인, "It's the economy, stupid"(경제라고 바보야)도 바로 여기에 기인합니다.
경제란, "부족한 재원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를 단적으로 가리킵니다.
인간의 '욕망'(이기적 욕구), 제약받지 않으려는 '자유'에의 충동, 최소한일 것을 요구받는 정부의 역할, 분배의 효율성과 적절성으로 표현되는 평등 의식, 이타심을 기대하는 공동체적 도덕 감정 등등은, 철학적으로 여러 고민들을 낳습니다.
무제한적인 이기적 욕망 표출의 제어와, 합리적 분배를 위한 복지 체제의 구축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입니다.
"최소한"이라는 것은, 정부의 축소된 역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규제)장치의 최적화'로 바꿔 말해야 합니다. 동의를 하든 안 하든, 현대 정치에서는 필수입니다. 방임 상태(경제적 무정부상태)를 막고 양극화를 방지하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판단은 양갈래로 갈라집니다. '실질적 손익 판단'과 '도덕적 선악 판단'이 그것입니다. 즉, 인간의 욕망을 '삶의 부분'으로 볼 것이냐, '악'으로 볼 것이냐 하는 엇갈린 판단이 생깁니다.
경제학은 전자에 위치합니다. 서양적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양적, 특히 유교적 관점에서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두 개의 관점,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입니다. 두 가지 모두 참(진리)입니다만, 하나의 참이 다른 참과 모순 관계를 가집니다.
'적폐청산'이 판단의 기준을 선악에 두었다면, '국민통합'은 실질적 이익에 기준한 것으로, 그 뿌리가 각기 다릅니다.
새해 벽두에 등장한, 박근혜와 이명박 전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논의"는 그러한 딜레마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철학의 핵심은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그 뿌리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7.
욕망의 충족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뒤이어 따라오는 것이 '고통'입니다.
반면에 욕망이 충족이 되면 '행복'을 얻습니다. '행복의 철학'과 '고통의 종교'가 그래서 탄생합니다.
(여기서 일단 고통의 크기와 행복의 종류에 대해서는 뒤로 넘깁니다. 논점에서 일탈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욕망의 철학'보다는 '고통의 철학'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문재인 철학을 이루는 여러 기둥 중 가장 핵심은 <고통 분담의 철학>입니다.
각각의 욕망들이 충돌하여 일으켜지는 갈등 상황에 대한 문 대통령의 해법은 사실상 취약하다고 보여집니다. 보수언론들과 야당으로부터 이 틈을 노린 공격에 계속해서 당하는 실정입니다.
욕망이 일으키는 갈등과 충돌들을 민주 여당이나 주변 참모들과 각급 행정청과 지자체에서 어느정도 해소시켜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 했습니다.
그래서 '고통 분담'이라는 주요 의제마저도 도드라지게 위로 부상하지 못하고 잠수를 타는 중입니다.
단지 예외적으로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만큼은, 정은경 방역본부(방역관리청)에서 매우 (욕망의) 관리가 잘 이루어졌고, 따라서 '고통 분담'의 철학이 제대로 구현됨으로써 최고의 성과를 이룬 것입니다.
백신 수급 문제가 일시적으로 나타났지만 커다란 물줄기를 바꾸진 못 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고통분담의 전제가 되는 '신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재인 철학의 또 하나의 핵심 기둥이 되는, <신뢰의 철학>이 등장합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8.
지난 3년 7개월 동안, 시대적 커다란 새 물줄기가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커다란 시대적 국가 과제였습니다.
북핵 문제의 해결로서, "비핵화" 협상안의 제시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으로서, 한반도에서 일어난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되, 한미동맹은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평창올림픽 개최의 성공이었습니다. 준비 과정의 초기에는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아무도 그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북한의 호응과 전 국민적 호응을 함께 이끌어내며 결국은 이뤄냈습니다.
여기서부터 <운전자 철학>이 등장하게 됩니다.
미국의 눈치만 보면서 뒤따라가던 오래된 습성을 버리고, '주도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상태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철학>이었습니다.
여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또한 트럼프 대통령도 긍정적 반응을 보임으로써 획기적 전환을 이룹니다.
이전까지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서로 막말을 주고받으며 심지어는 욕에 가까운 조롱들을 예사로 던지던 때였습니다. 거기엔 몇 번에 걸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미간에 전쟁까지도 예상하게 하는 아주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만,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첫 방미 외교에서 얻은 매우 큰 획기적인 성과였던 것입니다.
북미간에 긴장을 완화시키는 한편,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헤게모니(주도권)를 아무런 쟁탈도 없이, 어떠한 잡음도 없이, 순순하게 대한민국으로 거의 훔치다시피 거져 가져 온 사람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나 모두 내심으로는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상황적으로나 그 뒤의 진행상으로 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사람 모두 끌려다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팩트)입니다.
국내에선 이런 문 대통령의 <운전자 철학>(운전자론)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지만, 배 아파하는 찌질한 모습들에 불과했습니다.
트럼프는 측근에게, 만일 북한과 전쟁하면 희생자는 얼마나 나겠냐고 물었었고, 최대 3,000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 수치가 트럼프의 광기를 잠재웠고, 그 대안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패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고, 이제 바이든 시대가 열리면서, 섣부른 예단이야 안 하겠지만, 문 대통령의 <운전자 철학>은 계속될 것이고,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관념 철학'들이 "무엇이 옳은가"를 이성적으로 따져 묻는 것이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의지'와 '행동'으로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철학>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 가운데는 "..을 하겠습니다." 혹은 "..을 해내겠습니다."라는 표현이 유독 많이 들어갑니다.
※ 저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절대 홍보가 아닙니다. 이걸 홍보라 생각하신다면, 당시에서도 지금에서도 상황 파악이 모자랐던 겁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오후에 다시 이어서 올릴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9.
뭐니 뭐니 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은 <플랫폼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연대의 철학>이죠.
'연대'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연대입니다. '연합'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연대(連帶, connectedness)는, 공통의 가치를 위해 함께 움직이고 함께 책임지는 것으로, "같이 갑시다!"라는 표현으로도 대치될 수 있습니다. 즉, '참여'의 성격이 강하며, 연합(聯合, union)이나 동맹(同盟, alliance)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연대'는 가입도 마음대로고 탈퇴도 마음대로입니다. 아니! 아예 가입과 탈퇴 자체가 없습니다. 기차를 함께 타는 '동승'의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기차에 동승'한 이상은 '공동운명체'가 될 수밖에 없듯이, 위기의 순간에 함께 연대함으로써 함께 탈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각자의 '욕망'에 기반한 '각자도생'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마침 코로나 국면에서 이 연대의 방식이 엄청난 효과를 냈음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코로나 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그 효과의 조짐이 보입니다. 각종 지표들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쇄'가 없이도 우리는 그것을 해 냈습니다. 봉쇄를 안 하고, 시민들의 연대의 힘을 믿었기에, 방역도 성공했고 경제도 지킨 겁니다.
※ 오늘은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침 오늘 문 대통령께서 '신년 인사 말씀'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있으셨기에 짤막하게 마무리합니다.^^
10.
저는 문재인 대통령께 '위로의 철학'과 '위안의 철학'을 주문하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코로나 블루'로 불리워지는, 사람들의 우울감을 그리고 불안감과 공포감 내지는 분노까지도... 위로해주고 위안을 주는 그런 철학의 필요성을 느꼈었는데, 사실은 문 대통령을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저만의 착각을 나중에야 알아챘습니다.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문제 제기에서, 전문가들을 포함해서 대개의 사람들은 '욕망의 존재'로 보는 게 일반이고 상식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욕망들이 가져다주는 '고통의 실체'까지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마치 "황소 걸음으로 걷겠다"는 문 대통령의 황소의 우직함과 함께, '소의 되새김'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욕망'은 늘 '성공'을 향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성공은 10%미만에 머물고, 나머지 90%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즉, 10%의 성공과 행복보다는 90%의 실패와 고통에 주목했던 문 대통령입니다.
그 고통들을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맡기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연대'를 통한 '고통분담'의 길을 모색했던 것이고, 이로부터 <상생의 철학>을 펼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문 대통령은, "나에게 불행할 권리를 달라!"는 수많은 어리석은 도전들과 맞서 싸우고 '설득'하며 무수히도 '인내'하셨더랬습니다.
아마도 남은 임기마저도 그런 인내와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던 문재인의 "운명"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혁은 하되, 고통을 줄이고, 연대를 통해서 미지의 길을 앞장서 함께 걸으며 개척해 가는 모습은, 어쩌면 '선구자'로서의 운명의 길에 들어섰다고도 보여집니다.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라고 하시던 말씀에서도, 문 대통령의 '고뇌'와 함께 조국 장관이 겪은 '고통'을 모두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때의 모습을 보고 자신은 진보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떠들고 다시는 진중권에겐 그저 헛웃음만 나옵니다. 미학도 철학입니다. 미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다는 그에게선 전혀 '학문의 향기'가 안 맡아집니다. 물론 '예술의 향기'도 없습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을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영혼의 영역에서의 예술적 가치인 아름다움을 뭉개버리는, 그런 자격과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권리의 본질은, 지키고 보호하는 것에 있지,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저 말장난으로 먹고사는 진중권은 곡학아세의 한 부류일 뿐입니다.
금태섭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겁한 사람들은 항상 자기 변명을 달고 삽니다. 자기 변명에 급급한 사람에게서는 그의 진실성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몇겹의 가면들이 벗겨지면서 결국 박쥐의 민낯이 드러나고 맙니다.
※ 오늘은 쓸데없이 저의 신성한 연구에 시중잡배를 끼워 넣게 됐습니다. 갑자기 "감탄고토"의 말과, 오늘 추미애 장관께서 언급하신 "견강부회"가 떠올라서 조금 흥분했습니다.ㅋ
7. 2020
[전쟁과 평화]
전쟁에선 정의가 소용없다.
전쟁에선 상생이 쓸모없다.
전쟁에선 인심이 안 생겨난다.
전쟁엔 살상과 파괴만 있을 뿐이다.
전쟁엔 분노와 공포가 넘쳐난다.
전쟁은 이뤄놓은 모든 걸 앗아간다.
우리가 평화를 기원하는 이유이다.
평화엔 꿈과 사랑이 있다.
평화 속에서만 가치와 철학이 싹튼다.
평화는 미래의 담보다.
난 트럼프가 평화주의자인 줄 알았다.
트럼프는 바보다!
트럼프가 미국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평화의 길밖에 없는 이유다.
김정은은 자존심과 함께 평화도 지켜야 한다.
김정은의 선택이 평화이길 바랜다.
북한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다.
평창의 기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은 한 번으로 족하다.
지혜로운 자, 평화를 사랑하는 자이다!
8. 2020
[미국의 영화산업과 촛불문화]
촛불 문화는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며, K-pop은 촛불 문화의 전파자로서,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세뇌'로부터 해방시키는 탈출구 역할을 한다.
세계 최강의 미국이 되기까지에는 미국의 영화 산업의 발달이 있었고, 이를 발판으로 해서 영화를 그리고 영어와 팝을 통해서 세계 곳곳을 잠식하면서 세뇌 작업을 했었던 거다.
우리는 이 세뇌로부터 해방을 알리는 신호탄인 K-pop을 쏘아 올렸으며, 촛불 문화로서 꽃을 피우게 되었고, '기생충'을 비롯한 영화 산업이나, 펭수 같은 캐릭터 산업, 'baby shark(상어 가족)'같은 애니 등에서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의 문화는 '정복 전쟁'이 아니라 '상생 평화'로서, 새 시대의 문화 트랜드를 창조해 나가고 있으며, '비폭력 촛불 문화'의 등장으로 승화시켰다.
이를 더욱 빛나게 계승시키고 이어가는 일은 우리의 책무요 숙명일 것인데, 구시대의 분열과 파벌의 악습을 불러들여 좀비처럼 일어서려는 '한심한' 무리들이 이를 방해하고 붙잡아 세우려는 무리들이 있어, 이를 응징토록 하는 게 또 하나의 촛불 문화의 임무가 되어버렸다.
자고로 민초들의 품삯을 갈취하고 고리대금업으로 민생을 파탄시켜온 패악한 기득권자들의 농간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그 행패가 두드러지고 민낯을 밖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아울러 편가르기로 소일하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국민 회의'(국회), 국민을 망신주고 쥐잡듯 하는 검새들.
이는 우리의 촛불 문화가 더욱 더 단단해지고 깊게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우리가 여전히 품을 팔아야 한다는 걸 뜻한다고 보여진다.
'정권교체'란 말은 아주 작게 들리고, '세대교체'란 말이 매우 크게 들려오는 요즘, 나는 또 하나의 희망이 열리고 있음을 본다.
미국 영화산업에 의해 족쇄처럼 채워져 세뇌가 되어버린 이른바 '꼰대들의 멸종'과 함께, 촛불 문화와 K-pop으로 인해 일어나는 자유와 평화를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K / 202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