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소묘 (외 1편)
도 복 희
십일월은 발끝부터 취한다
옛날 애인의 부부동반을 질투하였다
웃고 있었지만 거짓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발이 접질렸다
난간 기둥을 잡지 않았다면 경사를 굴렀을 것이다
그날 숱하게 했던 약속들이 날렸다
개인적인 관계는 중세가 되었구나
모호한 슬픔이었다
문화원 앞은 흔들리는 계절이 들이 닥쳤고
이십칠 년이 지나간 후였다
전시회를 핑계로 다시 이곳에 오지 말자 생각했다
시간이 비켜갈 것이다
더 이상 애틋하지 않아야 한다
아직 실종신고는
너는 자주 사라졌다
홀연하다
사라진 방의 입구에서 발이 녹았다
발 없는 나는, 몸통으로 찾으러 다녀야 했다
간소해져야 부지할 수 있는 목숨이었다
떨어진 능소화를 줍던 저녁이 있다
사라지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파란 웃음을 배우러 시민대학에 갔다
웃음은 이식 되지 않아서
가루로 쏟아져 내렸다
흉내냈지만 육화되지 못한 밤이 회오리를 낳았다
흔적은 단서가 되지 않기도 한다
너는 구겨진 종이컵이기도 했고
벗겨진 운동화 한 짝이기도 했다
찾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버렸다 얼굴도 버렸다
비밀스럽게 널 쫓을 때마다 잠은 어수선해졌다
-시인정신 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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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정신 신작시 초대석
감정 소묘 외1편/도복희
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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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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