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롤로그 >
『 만남은 머리로 기억되고
이별은 가슴으로 추억 된다 』
어떤 선배가 자신의 소설책에 인용했던 글 문구가 문뜩 떠올랐다.
우리의 처음 만남조차 이젠 가슴속 추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백 번 각오했건만
막상 다가온 이별에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 바보같이 왜 우냐?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
난 턱이 아프도록 양쪽 어금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 .. 나 안 울었어. ”
그러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자신의 눈에도 투명한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꽉 잡고 있던 내손을 슬며시
놓는다.
“ 갈게. ”
슬프도록 떨리는 그 한마디에 어제부터 꾹꾹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구슬처럼 큼직한 눈물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지금이라도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까지 차오른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살짝 한번 웃어 보이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성큼성큼 출국대 안으로 걸어간다.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나오는 길.
내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새하얀 구름 사이를 뚫으며 멀리 사라진다.
눈이 부셔 하늘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 이별을 고하기엔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제 1 회. 대학생이 된다는 건..
(1)
“ 지긋지긋한 입시 지옥에서 탈출한 것을 위하여! ”
“ 그게 아니지. 그건 수능 끝나고 했었잖아. ”
민옥이 윤진의 말을 정정하며 맥주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 대학생이 된 것을 위하여!! ”
대학교 입학식을 하루 앞두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뭉쳤다.
한 해를 넘기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능 끝났을 땐 몰래 소주 한 병 사서 친구들과 자축 파티를
열었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술집에 와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이미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났다.
“ 우리도 드디어 내일부터는 대학생이구나. 왠지 어른이 된 것 기분이 드는데. ”
“ 대학생이면 어른 맞지 뭐. ”
“ 바보야. 어른은 성년의 날이 지나야 되는 거야. ”
“ .. 그런 거야? ”
민옥이 란에게 말했다.
캠퍼스와 동아리.. MT라는 단어는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고등학교 3년은 지독하리만큼 길었고 그리고 어색하리만큼 짧았다.
길게 늘어트린 갈색 머리와 양쪽으로 뚫은 귀.. 그리고 짧은 치마..
이젠 우리에게 더 이상 이런 걸로 간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 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들뜬 나머지 우린 그 대열에 끼지 못한 한 사람을 잊고
있었다.
“ 뭐야. 얜 또 언제 이렇게 마신거야? ”
“ 나라야. 정신 차려. ”
우리가 떠드는 동안 한마디도 없이 맥주를 홀짝이던 나라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취해 있었다.
친구들이 어깨를 붙잡고 아무리 일으키려 해도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맥없이 픽 쓰러지고 말았다.
“ 그러니까 대학 얘긴 왜 꺼낸 거야? 가뜩이나 재수 때문에 우울해 있는 애를.. ”
“ 왜 나한테만 그래? 같이 신나게 맞장구칠 땐 언제고. ”
친구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회피하며 술 집 앞에서 소리 높여 싸우기 시작했다.
휴.. 이것들아. 언제 철들래.
“ 그만. 그만. 이미 술 먹고 뻗은 걸 어쩌겠냐.
도저히 저 상태로 집까지 가긴 힘들 것 같고 누가 나라 집까지 데려다 줄래? “
란이 친구들을 말리며 말했다. 그제야 친구들은 싸우던 걸 멈추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 나야 데려다 주고 싶긴 한데 집이 가장 멀잖냐. 지하철도 일찍 끊기고 말이야. ”
“ 너희들 우리 엄마 성격알지? 나 통금시간 늦었다간 맞아 죽어. ”
이것들이 점점. 밤새서 놀자고 할 때는 언제고..
애들의 속 들여다보이는 핑계가 오가는 와중에 갑자기 윤진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그러고 보니 하늘이가 나라 집과 가장 가깝지? ”
“ 아, 저기 나는.. ”
그러자 일제히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그리곤 내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쾌재를 부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 노하늘, 당첨~ ♩ ”
“ 택시~ 택시~!! ”
난 등에 무거운 나라를 엎은 채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소리쳤다.
지나가던 택시 아저씨가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그냥 스윽 지나가버린다.
분명히 택시 머리맡에 빨간 색으로 ‘빈 차’ 라고 쓰여 있는데 말이다.
“ 뭐 저런 차가 다 있어? ”
뒤에 오는 노란 택시를 향해 또 한 번 손을 흔들었지만 반응은 똑같았다.
그렇게 한참 길에 서서 목 아프게 불렀건만 모두 그냥 지나쳐 버렸다.
아니, 이 사람들 단체로 파업 중인가?
“ 쯧쯧. 학생. 백날 그래봐야 소용없어. 요즘 택시들 술 취한 여자들은 잘 안태워줘. ”
옆에서 같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 에.. ? 왜요? ”
“ 요즘 뉴스에서 워낙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공공연연하게 떠들어 대고 있잖수.
일부 몰지식한 여자들이 택시비 안내려고 취한 척 택시기사를 성추행 범으로 몬다나,
뭐라나.. 암튼 기사들도 본전도 못 뽑는다고 아예 안태우려고 한다우. “
난 너무 기가 막혀 손 흔들어야 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과연 아줌마의 말이 옳았다.
30여 분간을 승강장에 서서 아무리 외쳐도 내 앞에선 멈추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왔던 아줌마도 먼저 택시를 잡고는 미안한 표정 한번 지으며 가버렸다.
택시 잡기를 포기한 난 다시 나라를 업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 이 못된 지지배들. 싸그리 다 죽었어. .. 아흑, 무거워. ”
난 속으로 내일 친구들에게 1시간 이상 따질 말을 곱씹으며 궁시렁 거렸다.
나라의 반쯤 구부러진 신발 끝이 바닥에 질질 끌린 채 내 등에 편히 업혀가고 있었다.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이 흘러 코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등은 축축이 젖어 끈적거렸다.
간신히 한발자국 뗄 떼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한참 그렇게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데 나라의 뒷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론 겨우 나라의 엉덩이를 받치고 나머지 한손으로 나라의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 액정에 ‘우리자기’ 라는 닭살 멘트와 하트가 떴다.
우리자기.. ?
틀림없이 남자친구의 전화인데 나라에게 애인 있다는 얘긴 들어 본적이 없다.
이게 감히 우리 솔로부대를 배신을 해?
.. 클클.. 오늘 딱 걸렸으..
최대한 정보를 캐서 내일 애들한테 모조리 퍼트려 놓을 테다.
“ 나라 핸드폰입니다. ”
“ .. 나라 폰인 건 아는데 누구? ”
오, 일단 목소리 좋고..
송일국과 소지섭을 섞어 놓은 듯한 저음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멋진 남자임을 상상하게했다.
“ 나라 친구예요. ”
“ 친구.. ? .. 친구 누구? ”
“ .. 하늘이요. ”
“ 성은 ? ”
“ 노하늘이요. ”
“.. 노란하늘? ”
.. 이런.. 무엄한 놈 같으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 푸하하핫!! 노란하늘~ 노란하늘~ ”
뭐 이런 매너 없는 사람이 다 있어?
남자친구의 처음 좋았던 이미지가 깨지며 기분이 상해버렸다.
정말 가까이에만 있었음 면상을 20대쯤 갈겨주고 추가로 어퍼컷 3방에 돌려차기 5번을 날린 후
걸레처럼 너덜거릴 녀석을 쓰레기통에 마구 쑤셔 넣고 싶었다.
녀석의 복식웃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 크크.. 화났냐? ”
“ .. 알면서 왜 물으세요? ”
“ 미안. 나라 친구라 그래서 좀 장난 치거뿐인데 소심하게 진짜 삐진 거 아니지? ”
“ 안 삐졌어요. ”
“ 에이~ 삐졌네. 너 혹시 A형 아냐? ”
놀랍게도 녀석은 나의 혈액형을 정확하게 맞췄다.
내가 그렇게 소심하게 굴었나? 그건 그렇고 왜 말끝마다 반말이야?
“ 됐구요. 그런데 왜 자꾸 반말이세요..? ”
하자 녀석은
“ .. 너 몇 살이냐? ”
“ 스무 살요. ”
“ 너 어른한테 말대꾸하라고 배웠어? ”
“ 아.. 아뇨.. ”
“ 우리 서로 비겼으니까 계속 반말한다. ”
라고 하는 것이다.
난 더 이상 이 사람과 얘기해봤자 입만 아플 것 같고 점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나라를 힘겹게
끌어올리며 말했다.
“ 남자 친구라면서 지금 여자 친구가 술 취해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데리러 안 오실 거예요? ”
“ 나라가? .. 얼마나 마셨는데? ”
순간 녀석의 말투가 조금 심각해졌다.
어쭈. 그래도 여자 친구라 걱정은 되나 보네.
“ 맥주 500cc로 3컵 정도? ”
“ 겨우 그 정도로? 쯧쯧.. 내가 그렇게 허약하게는 안 키웠거늘.. ”
녀석의 한숨(?)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 .. 그래서 지금 어디인데? ”
“ 강남역 부근이에요. ”
“ .. 강남역.. ? 잠깐만 강남역이면 여기서.. .. (잠깐 동안의 정적이 이어지고)
너 나라랑 친하다고 했지? 그래. 잘 부탁 한다. ”
그리곤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난 녀석의 반응에 너무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한 체 한참동안 끊어진 휴대폰을 들고 서 있었다.
이 녀석, 진짜 남자친구 맞아?
그날 어떻게 집에까지 업고 갔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돌아왔는지 나라의 남자친구일로 너무 흥분한
나머지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다음 날, 내 온 몸은 바늘로 쑤신 듯 근육통이 일어났고 결국 입학식 참석 대신 방에 大자로 뻗어버렸다.
“ 거기 밑에.. ”
“ 여기? ”
“ 아니. 그보다 좀 더 아래.. ”
바다(여동생 이름)가 허리에 하얀 펭귄표 파스를 손으로 꾹꾹 눌러 붙이며 물었다.
“ 어떻게 언니보다 한 뼘이나 더 큰 사람을 집까지 업고 갔어? ”
“ 걔 집은 버스랑 지하철도 안다니고 택시도 안 잡히는데 그럼 어뜩하냐? ”
“ 쯧쯧. 언니도 참 피곤한 타입이야. ”
가뜩이나 몸도 쑤시고 어제 일로 짜증나 죽겠는데 바다는 한심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시비를 걸었다.
“ 내가 뭘? ”
“ 콜택시 부르면 되잖아. ”
“ 엉? ”
!!..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일어나려다 그만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크게 뽀직 소리가 난 게 아무래도 허리가 놀란 것 같다.
“ 으아아아악. ”
난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신음소리를 냈다.
“ 언니, 바보. ”
바다가 다시 다친 허리에도 파스를 붙여주며 중얼거렸다.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다니.. 허흑.. ..
========================================================================
2006년 1월부터 7월 1일까지..
6개월 정도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소설은 단편 빼곤 처음이라 이곳에 올리기까지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이틀에 한번씩 이곳 2번 방에 올릴테니 재밌게 읽으시고 리플 다는 쎈-스 ^^
님들의 답글 하나에 힘나는 옥이 입니다.
처음엔 도입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라 조금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씩 재밌는 사건도 일어나고 여러 캐릭터도 등장하니 분명 후회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쁜 배경을 만들어주신 [포샵 : 사은] 님 정말 감사합니다.
- 7월 2일. 빙옥♀누이 -
첫댓글 재밌어요 ^^ 이름들이 다 낯이 익네요. ㅇ_ㅇ 그나저나 콜택시
요조숙녀님 감사합니다. 일부러 쉬운 이름들로만 지었답니다. 아무튼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 ^ㅁ^
배경이 너무 예쁘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내안의 너 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 배경이 맘에 든답니다. 그런데 리플이 잘 안보이네요
제목이 낯익어서 들어와봤는데 재밌네요. *^^* 건필 근데 진짜 6개월동안 준비하신거
inside님 감사합니다. 동요로도 많이 불렀던 이름이죠?? ^^ 거기서 모티브를 따왔답니다. 제목에 대한 이유는 차차 밝혀질테니 기대하셔도 좋을겁니다. *^^*
아- 6개월씩이나 준비하셨다니.. 정말대단해요 그리고 재미있답니당..^^ 건필하시궁 담편도
#정이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준비했으니 꾸준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__)
6개월 준비한만큼 커다란 기대 걸어도 되죠건필하세요^^
이치고 이치에님 감사합니다. 앞부분은 조금 늘어질수 있지만 캐릭터들의 성격을 알게되면 아마 재미있으실거예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감사합니다.
우와. 6개월을 준비하시다니...대단하세요^^ 저는....저도 6개월 후에 다시 돌아 올까요?ㅠ.ㅠ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건필 하세요.^^
소심한얍삽녀님 감사합니다 ^^ 얍삽녀님 글도 읽다보니 열심히 쓰신 노력이 보입니다.. 꼭 오래 준비했다고해서 훌륭한 글이 아니고.. 그렇다고 짧은 기간 준비했다고해서 그런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얍삽녀님 글도 너무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암튼 끝까지 재밌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
처음에 검은 바탕에 흰글씨가 나와서 놀랐어요~~ 흠흠흠~^0^
알당송주희님 안녕하세요^^ 우연히 검색했다가 코멘이 달려 있어서 놀랐답니다. 처음 받았던 배경화면인데.. 참 정이 많이 들었던 배경입니다^^ 소설도 재밌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