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부터 ‘봄의
왈츠’까지 스토리를 입은 청산도, 일본 관광객을
부르다

- ▲ (좌) 당리진터의 서편제길과 ‘봄의 왈츠’ 세트장.
(우)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
5분20초 롱테이크의 끝부분이다.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침투한 영화 전문용어가 있다.
오버랩(overlap)과 페이드아웃(fadeout)이다. 1993년에 나온 이 영화가 성공하면서 한 가지 영화 용어가 추가됐다.
롱테이크(longtake).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렇게 나온다. ‘롱테이크는 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 상업영화의 쇼트는 10초 내외인 데 비해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진행되는 것을 롱 테이크라고 한다. 카메라가 고정된
롱테이크는 일반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사실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영화감독 임권택이 이 영화에서 5분20초 동안
‘롱테이크’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과 양딸 송화(오정해 분)는 흥이 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길을
걸으며 걸쭉하게 노래를 부른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 난다/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사람이 살면 몇백 년을 사나 개똥 같은 세상에 나와 둥글둥글 사세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이청준 원작의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임권택 감독은 이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현장에 와보고 풍광에 압도되어 시나리오에 없던 롱테이크로 찍었다. 서편제길만 놓고 보면 유채꽃이 만발하는 4월이
최적기다. 노란색 유채꽃이 초록색 청보리와 푸른색 바다와 만들어내는 풍광이 압권이다. 기자 역시 영화에서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대한민국에
저런 곳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지 않았다면 청산도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다’. 그랬다면 드라마 ‘봄의 왈츠’도 청산도를 무대로 촬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6월 초 청산도를 다녀온 지인은 이런 말을
전했다. “청산도에 임권택 감독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 임권택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청산도를 찾겠는가.” 임
감독은 이 풍광에 반한 나머지 청산도에서 예정에 없던 한 장면을 더 찍었다. 유봉이 동호와 송화에게 소리와 북을 가르치는 그 장면. 이곳은 실제
사람이 살던 초가집이었다. 현재도 영화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서편제길에서 걸어내려가도 5분이면 닿는다. 영화에서 유봉이 마루에
앉아 송화에게 호통치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기자는 지난 7월 12일 서편제길에서
일본 도쿄에서 온 여대생 두 명을 만났다. 다나카 아즈사(田中梓)씨와 수가와라 사야가(菅原沙也佳)씨. 다나카 아즈사는 성균관대에서 1년간 유학한
경험이 있어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이들은 ‘서편제’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다. ‘봄의 왈츠’의 로케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겨울연가’
‘가을동화’ ‘여름향기’의 연작 시리즈로 제작된 게 ‘봄의 왈츠’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봄의 왈츠’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본의 팬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편제 언덕길을 지나면 박공지붕의 집이 나온다. ‘봄의 왈츠’ 촬영 때 지은 세트장이다. 집
앞에는 이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 네 명의 사진이 실물 크기로 세워져 있다. 일본 여대생들은 ‘봄의 왈츠’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 먼 청산도까지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겨울연가’의 무대로 나오는 춘천과 남이섬에 여전히 일본 여성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 ‘봄의
왈츠’는 ‘겨울연가’와 마찬가지로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 중 하나다. 청산도는 ‘봄의 왈츠’에 또 다른 촬영장소를
빌려주었다. 읍리의 당산나무다. ‘봄의 왈츠’에서 주인공 아역들이 이 당산나무 밑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장면이 동화처럼 그려졌다. 김미경
문화유산해설사가 당산나무를 설명하자 일본 여대생들은 감격하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청산도는 ‘서편제’를 빼놓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도락리 해변가에 있는 민박집 이름은 ‘서편제 민박’이다. 어딜 가나 서편제, 서편제 한다. 그러니 청산도에 임권택 감독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여행객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다. 서편제길에 황토색 시멘트를
깔고 왼편 돌담에 시멘트를 발라놓고 수평을 맞춘 것이다. 편의성만을 생각하는 공무원들의 한심한 발상에 혀를
내둘렀다. 전라남도의 슬로시티 네 곳 중에서 왜 청산도가 가장 찾고 싶은 장소가 되었을까. 청산도는 자연도 아름답지만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 촬영된 영화 ‘서편제’. 사람들은 슬로길을 걸으며 스토리에 취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