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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19: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19: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19: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19: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9: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9: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9: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 주 해
1. 공생애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후에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예루살렘에서 수난 당할 것을 말씀하신다.
1) 베드로의 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수난의 길을 가실 것을 선포하신다.
2) 변화산 체험후에 다시 수난을 예고하시고, 수난후에 세워질 교회생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
3) 교회생활은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은 자들이 예수생명으로 행하는 교회 생활이며, 요한복음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새계명을 주셨다.
4) 교회에서 가장 큰 자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가장 불행한 자는 실족하게 하는 자다.
5) 교회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공동체이며, 형제가 죄를 범하면 권면하고 치리를 하되, 그 영혼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공동체이다.
용서의 근거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2.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작된 여정은 갈릴리를 통과하여 마침내 유대 땅에 이른다.
1) 예수님이 유대 땅에 이른 것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당하기 위해서다.
2)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므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생명 주시러 유대 땅에 들어왔으나 큰 무리들은 생명 주시는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을 따른다.
3)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큰 무리들의 병을 고쳐 주신다.
-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려고 이땅에 오셨으나, 우리의 아픔, 고통, 슬픔을 치유하여 주신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신다.
3. 바리새인들은 한결 같다.
1)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수많은 표적을 듣고, 눈 앞에서 손 마른자가 치유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예수님을 시기하여 제거하려는 데만 힘을 쓴다.
2)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제거함으로 하나님 노릇하고 싶어하는 마음 즉 완악한 마음이 정해지자 한결같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죽이려고만 한다.
3) 예수님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나, 바리새인들은 여기에는 관심이 없다.
4) 그들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고, 함정에 빠뜨리는 것 뿐이다.
4.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나와 묻는다.
“무엇이든 이유만 있으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3절).
1) 바리새인들은 2가지 이유로 이혼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한다.
2) 첫 번째는 유대 지역에서 세례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의 이혼과 재혼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다가 처형된 곳이다.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는 이곳에서 예수님이 이혼 문제를 세례 요한처럼 말한다면 헤롯에게 알려서 예수님을 잡아가게 하면 된다.
3) 두 번째는 이혼 문제는 두 학파간에 해석이 다른 첨예한 문제였다.
- 율법에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는 아내 버리는 것을 엄격히 금했다.
- 반면 율법에 대해 개방적인 힐렐 학파는 아내 버리는 것을 개방적으로 허용하였다.
5.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중시하는 모세의 율법(창세기)으로 대답하신다.
1)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실 때에도 기록된 말씀으로 대답했다(4:1-11).
2)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창 1:27)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라고 대답하신다(창 2:24).
3)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6.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므로(딤후 3:16; 벧후 1:21) 진리의 영인 성령의 조명으로 해석해야 한다.
1)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고 쓰여졌다(요5:39-40).
- 구약 즉 율법과 선지자들은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롬1:2).
- 구약의 선지자들은 부지런히 연구하여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과 영광을 기록하였다.
2) 기독교 역사에서 19세기부터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 특정한 원리나 이념, 상황을 전제로 성경을 해석하게 된 것이다.
3)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는 자신들의 사상을 전제로 율법을 해석하였다.
- 그들은 예수님은 어떤 사상을 전제로 아내를 버리라는 율법을 해석하는지 시험한다.
7. 성경의 해석을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자의적으로, 자아의 욕망을 따라 해석하게 된다.
2) 바울은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3) “말씀을 혼잡하게 하다”라는 말은 새번역에서는 “말씀을 팔아먹는다”라고 번역한다.
8. 예수님은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덧붙이지 않고, 율법에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
1) 말씀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는데도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이의를 제기한다.
-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7절).
2)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데 이의제기가 있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3)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1-4절에서 나온 내용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이혼하게 되면 이혼 증서를 써 주라는 것이다.
- 이는 버림받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4) 이 계명은 아내를 버리는 남편이 아니라 버림받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계명이다.
5) 그런데 바리새인은 전후 문맥을 버리고, 아내를 버릴 때 이혼 증서를 써주면 된다고 말한다.
9. 예수님은 모세가 아내 버림을 허락한 것은 남편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1) 성경에서 서로 다르게 말씀할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신다.
2) 형제를 용서하는 것과 형제를 치리하는 문제는 서로 상반되게 보일 수 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아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도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10.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말씀을 취하기를 좋아한다.
1)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야 구원받는 다는 말씀보다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다는 말씀을 취하려고 한다.
2) 교회가 성도의 잘못에 대하여 치리해야 한다는 말씀보다는, 교회가 무한대로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취하려고 한다.
11.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과 반대되는 말씀을 취하는 해석을 하신다.
1)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신 목적대로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2)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신 것은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그렇게 허락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3) 만약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혼한다고 하지 말고, 나의 마음이 완악해서 이혼을 허락하셨구나고 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2. 예수님은 이혼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신다.
1)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이라는 것이다.
2) 당시에 아내를 버리는 본심은 새 아내를 맞이하여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 있었다.
13. 예수님은 율법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 편에서 해석하면 성경을 쉽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이신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을때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을 대부분 알 수 있다.
1) 즉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하면 주님의 뜻을 쉽게 알 수 있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
2) 그러나 문화를 따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다.
14.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했다는 말씀은 긍휼의 말씀이다.
1)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 편에서 진리만을 선포하는 것이 합당하다.
-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심판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2)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이혼을 허락하는 율법을 넣는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본래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그렇게 해도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15.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심판 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해 주신다.
2) 죄에 대한 심판이 집행되어야 하나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오래 참아 주신다.
3) 불순종하는 자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아야 하나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불순종하는 자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채워주시기도 하신다.
4) 우리의 완악함을 무시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대로 행하신다면 우리 대부분은 공의 심판으로 인하여 남아 날수가 없을 것이다.
5)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는다고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돕고 채우신다고 하여서 내 마음이 부드러운 것은 아닐 수 있다.
6) 나의 완악함을 용납하심은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과 긍휼 때문이다.
16. 제자들이 사람이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예수님의 대답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자 된 자가 있다고 하신다.
-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육적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이다.
2) 그는 결혼하든 안 하든 오직 그의 나라를 위해 육적 욕망을 절제한다.
- 무엇보다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성경을 이용하지 않는다.
3) 순전한 마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자이다.
◈ 나의 묵상
회개: 생명의 빛이 비추는 비참한 존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성경, 진리, 율법에까지 기록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나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은 참으로 많은 것을 허락하여 주셨다. 당연히 심판하셔야 하는데도 긍휼로 여겨주신다. 오히려 가끔은 죄가운데 있는 나에게 복을 주시고 도와 주신다. 너무나 인자하시고 자비하셔서 내가 지금 죄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지독한 죄인으로 있다. 나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고, 나의 악행은 손가락질 받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나의 죄로 인하여 양심에 찔리고 눈물을 흘리나, 점점 나의 완악한 마음은 죄에 대하여 둔감해지고, 말씀을 떠난 죄에도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이렇게 완악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고, 이렇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와 감격과 기쁨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다.
인생이 힘들다고 푸념한다. 완악한 마음을 바꾸어 달라고 떼를 쓴다.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회개하지 않는다.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 아, 얼마나 비참한 존재이며, 얼마가 큰 죄인인가? 사도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라는 인식이 항상 있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이면서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다. 그래서 나를 주장하고, 과시하며, 나의 옳음을 주장하고, 판단하고 정죄한다. 이 죄악을 어찌할 수가 없다.
2. 생명을 나타내는 복음(구속의 은총으로 존귀한자 되어 아버지 품에 안기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품이 좋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한 말씀을 받아 먹는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시나 주님의 인자와 자비와 긍휼은 끝이 없다. 나는 날마다 그 사랑을 힘입어 살아간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사실 자비 가운데 집행된다. 1/10000분의 일로 경감하여 심판하신다. 지옥 불에 던져 넣어야 하나, 실제 심판은 성냥불에 데이는 정도로 집행된다. 영원한 고통을 받아 마땅하나 한시적인 고통을 겪게 하신다. 무엇보다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신다. 진노의 목적도 의를 기초로 다시 세우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하여 성전을 짓기 위함이며, 새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복음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나같은 죄인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신다. 내가 죄인되어도 십자가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는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용납할 수 없는 죄인된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여 주신다. 완악한 나를 내치지 않으시고 완악한 마음 그대로 받아 주신다. 정말 염치 없이 나아가도 하늘 아버지는 자비로 영접하여 주신다. 탕자에게 잔치라니, 므비보셋에게 왕의 상이라니, 합당하지 않은 사랑으로 아버지 집에 들이신다. 이 모든 은총은 예수님 때문에 주어졌다.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안에서 구속의 은총이 주어졌다. 그러기에 오늘도 십자가 밖에 없다. 구속의 은총밖에 없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그 영광을 날마다 보이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묵상 기도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옵소서. 나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주님이 허락하신 것을 사랑과 긍휼로 받게 하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것을 괜찮다고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것을 주님이 기뻐한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허락을 이용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 삶에서 주님이 허락하여 주시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긍휼과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제 마음의 완악함 그대로 보응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님의 자비가 영원함을 항상 인식하게 하옵소서. 제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죄인인 것과 항상 주의 인자하심이 비추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그리고 허락을 넘어 부드러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로 자라게 하옵소서. 다음세대와 함께하는 한밤의 기도회 가운데 성령님 임재하여 주십시오. 토요일에 시작되는 복음생명캠프를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생명의 공동체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으소서.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의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