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보기 딱 좋은 날씨였던 지난 토요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위치한 LG 챔피언스파크를 방문했습니다. LG-KIA 퓨처스 게임이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문에 떡하니 넥센 히어로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일정을 잘못 알고 왔나 했는데 그 차량은 화성 3군 선수들이었고 KIA 2군 선수단은 이미 짐을 내려놓고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이 날 메인구장에서는 퓨처스리그 게임이 그리고 보조구장에서는 3군 연습경기가 오후 1시 같은 시간에 동시에 열렸습니다.
사실 3군 연습경기는 일정이 정해진 것도 없고 따로 발표하지도 않습니다. 육성군 전담 담당자가 타 구단 관계자 혹은 대학 감독과 서로 일정을 맞춰 조율하는 수순으로 이뤄집니다.
프로야구 대세는 육성입니다. 자원의 한계를 통감하며 결국 키워서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각 구단들은 3군을 운영하며 이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LG는 2014년까지 구리 훈련장을 사용하다 이전을 결정한 뒤 총 1천 억 원 이상의 거금을 들여 이곳 이천에 'LG 챔피언스파크'를 준공했습니다.
‘구리 시대’엔 3군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훈련장과 숙소의 거리가 멀어 차로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원하는 연습량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장소도 비좁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퓨처스 홈경기 일정 관계없이 3군 연습경기를 맘껏 잡을 수 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변화입니다.
“게임은 일주일에 2번 정도 잡고 있어요. 3번은 좀 많은 거 같고 2번은 적은 거 같고 2주에 5경기 딱 적당한 거 같아요. 시간 맞는 팀을 골라 끼워 맞추고 있어요. 간혹 뛸 선수가 부족하다며 취소 연락도 옵니다. 알겠노라 하고 다음을 기약하죠. 그리곤 다른 팀을 섭외하죠. 구장 좋다는 소문이 퍼져서 오겠다는 팀 많아요. 저희 입장에선 이동하느라 시간 빼앗기지 않고 좋죠.”
LG 육성을 담당하는 정성주(운영총괄)차장은 대화 도중 SK로부터 취소 연락을 받자 곧바로 이를 노찬엽 육성 총괄코치에게 전달했고 동시에 다른 팀을 섭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 야구계가 그토록 부르짖던 인프라 구축이 이뤄졌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LG 챔피언스파크 메인 경기장은 좌우 100m에 중앙 125m로 잠실구장과 똑같은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보조구장은 어떨까요? 역시 중앙 125m이고 인조잔디도 깔려 있고 간단하지만 전광판도 설치 되어 있어 게임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관람석까지 있습니다.
보조구장 옆 웨이트장 뿐 만 아니라 실내연습장 또한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최신식으로 지어져있습니다.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투자로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LG 트윈스의 미래가 밝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무늬만 프로선수? 아니 3군이 진짜 퓨처스
프로야구 3군. 아직 우리에겐 생소한 집단입니다. 프로유니폼을 입고 있긴 해도 KBO 공식 기록이 없는 경우가 절반이 넘고 야구팬은 물론이고 구단 관계자조차 이름 석 자가 낯선 경우도 꽤 됩니다. 그나마 2군에서 게임을 좀 뛴 경우면 예외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훑어보면 아마야구 시절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이자 주축 선수로 소문을 몰고 다닌 선수들입니다.
아직 프로에 적응을 하지 못했거나 혹은 부상 등으로 주춤하고 있거나 한동안 운동을 쉬었던 이들이 다시 시작을 다지는 곳입니다.
플레이의 갈증을 연습게임으로 대신하고 있는 3군 선수들 그러나 이들이야 말로 진짜 한국 야구의 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2군은 1군에서 내려온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거나 페이스를 되찾는 곳으로 활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1군 상황에 따라 2군 투수로테이션이 바뀌기도 하고 엔트리도 바뀝니다. 주전으로 뛰던 선수가 벤치로 밀려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나이대, 연차수도 천차만별.
LG만 보더라도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양상문 감독의 콜을 기다리고 있는 이병규(9번)를 비롯해 봉중근,김광삼 등이 2군 게임을 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2군은 1군행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인 것입니다.
그에 비해 3군은 육성군이라 불리며 2군 게임 출전을 목표로 하는 이들로 꾸려져 있습니다.
2군과 3군을 오가고 있는 모 선수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2군은 1군에서 내려온 선배님들도 많아 눈치 보이기도 하고 조심스러워요(잠시 머뭇거리다가). 기분이 좋을 리 없잖아요. 하지만 3군은 비슷한 또래들이 같이 하는 거 라 내 게임에 집중할 수 있고 경쟁심도 생겨 좋은 거 같아요. 물론 제가 뭐하고 지내는 지 부모님조차 모르신다는 게 좀 속상하긴 하지만(웃음). 그래도 연습게임이라도 하니까 뭐가 부족한 지 뭘 더 연습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퓨처스 게임은 한정적이긴 하지만 TV 생중계까지 되는 등 프로야구의 한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아가고 있습니다. 몇 몇 인기구단 2군 선수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합니다.
이제 프로야구는 2군도 인정받고 관심 받는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3군에게 눈을 돌릴 때가 아닌가 싶어 계획 했던 메인구장 게임이 아닌 보조구장으로 과감히 발길을 옮겨 3군 게임을 관전했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인 25일 챔피언스파크를 재방문, 또 다시 열린 화성과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21일엔 2-1로 끌려가던 LG가 9회말 홍창기의 동점 적시타에 이어 박재욱의 끝내기 안타로 3-2 역전승을 거뒀고 25일엔 2회 김해현-김창혁-김승훈 7,8,9하위타순에 배치된 타자들이 연속 3루타로 석 점을 뽑는 등 초반부터 불방망이를 앞세운 LG가 장단 12안타로 9-5로 또다시 이겼습니다.
LG 3군, 11승 1무 무패행진 질주
LG 3군은 올시즌 주 2회 꼴로 25일까지 총 12차례 홈에서 연습경기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고려대와 무승부를 제외하고 11승 전승.
공식게임은 아니라도 전승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LG 3군도 여느 팀과 마찬가지로 유동적이고 불확실합니다. 아픈 선수도 꽤 되고 2군에 뛸 선수가 없으면 보충도 해줘야 합니다.
누가 딱히 에이스라고 하기에도 쑥스러울 만큼 마운드가 들쭉날쭉합니다. 선발이 난타를 당해 초반 대량실점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LG 3군 선수단은 특유의 집중력으로 게임 종료후 승리의 미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요즘 LG 3군 선수단은 ‘질 것 같지 않다’ 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노찬엽 육성군 총괄코치에게 무패행진의 원동력에 대해 묻자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선수들이 그 이유를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제가 한 일은 판을 펼쳐준 것뿐입니다. 매일 연습만 해서는 자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뭘 고쳐야 하는지 몰라요. 스스로 느끼는 게 중요하죠. 일단 게임에 들어가면 이겨야하죠. 이기는 방법을 알아가는 풀어가는 것도 공부죠. 선수본인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플레이하고 판단하도록 맡깁니다. 게임 중간엔 코치가 해 줄 건 없다고 봐요. 코칭은 훈련시간에도 충분하니깐요. 오늘 (홍)창기가 4안타쳤길래 제가 야구천재라고 띄워줬어요. 이곳에 있는 선수들은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잖아요. 스스로 느끼면서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게 육성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찬엽 총괄코치는 1989년 MBC에서 선수생활을 시작 ,은퇴 후엔 LG,한화 등에서 지도자생활을 했고 2013년엔 LG 2군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엔 LG 1군 타격코치로 활동하다 올해 육성군을 맡아 쌍둥이군단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쉽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훈련량 많기로 유명합니다.
“지면 단체로 체력 훈련도 하고 투타별로 벌칙도 정해놨어요. 가령 직구를 놓치면 별점 한 개 이런 식으로 그 개수에 따라 게임 종료 후 엑스트라 받는 선수를 정하죠. 그러니까 더 집중하고 죽기 살기로 이기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기고 싶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닌데 다들 미친 듯이 잘하네요.”
특히 타자들의 방망이가 눈에 띄게 날카롭고 장타력이 돋보였습니다.
제 5선발로 자릴 잡아가고 있는 이준형(우완)에게 3군 소식을 알려주자 ‘ '네? 전승이라고요?: 와! 잘 나가네요.’ 라며 반겼습니다.
장소가 뭐 중요할까요? 같은 유니폼 입은 내 동료가 잘해 이겼다는 것 만으로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인 듯 했습니다.
3군이면 어떠랴 다 같은 야구잖아
LG 트윈스는 군보류 선수 외 총 68명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엔 1군 엔트리에 있는 선수 27명, 그리고 퓨처스 리그에 나서는 25명 그리고 재활군 13명 이외 나머지 선수들이 육성군 및 아카데미 소속으로 3군선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정식선수로 등록되지 못한 이들이 대다수. 100번대 등번호도 흔합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고교 대학 무대를 펄펄 날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2군도 아닌 3군. 그나마 게임을 뛰면 다행.
그래서인지 3군에서 만난 선수들 상당수가 오랜만에 기자와의 만남에 반가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한숨으로 속상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합류한 선수들이 꽤 됩니다. 투수 중에서는 이희성(좌완) 나규호(우완). 야수로는 오상엽.전호영(이상 내야수) 등이 있습니다. 또 2010년 6라운드로 입단, 군 복무 뒤 지난해 합류한 김창혁(포수)도 오랜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시범경기에도 나섰고 2군 게임을 뛰다 최근에 3군에 온 홍창기(외야수)를 비롯해 2라운드로 지명된 김주성(내야수)도 재활군을 거쳐 현재 이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상훈 초대 원장이 이끄는 투수 유망주 육성 시스템 ‘피칭 아카데미’에서 개인 지도를 받고 있는 신인 천원석(좌완),김대현(우완)은 3군에서 실전 피칭을 한 뒤 2군 마운드에 투입되는 차근차근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1군은 고사하고 퓨처스 입성을 목표로 잡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고 싶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과정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단계를 밟아가며 진화하면서 인정받아야 비로소 원하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LG 3군을 계기로 다른 구단의 3군 및 육성군에 대한 궁금증과 의지가 불타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퓨처스는 이들이 아닐까요?
스스로 야구 인생의 바닥을 찍고 있다는 자괴감도 밀려 올 법 하고 또 잊고 싶은 어둠의 순간이라고 여길 수 있는 3군 생활.
그러나 먼 훗날 이때를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라며 많은 취재진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선수가 나올 거라 믿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죠.
기사제공 홍희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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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이천챔팍을 보면서 4~5년뒤엔 엘지가 약산보다 더 육성잘하는 구단이 될거라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약산은 야수만 잘만들어 내지만 엘지에는 야생마 피칭아카데미 원장이 있기에 투타모두 약산을 능가할거라고 기대합니다.엘지가 구리에서 허송세월 할동안 약산이 만들어놓은 성과에 너무 의기소침 안하렵니다. 늦었지만 시작이 반이니까요
오늘 퓨처스 이천 홈 경기에서 1픽 루키 김대현선수 6이닝 무실점(3볼넷) 선발승 했습니다. 2군 선발 3경기만에 호투인데. 좀 더 경험 쌓아 1군에서 다시 보고싶네요.
이글 끝까지 읽느라 퇴근이 늦어졌네요.
좋은 소식은 빠를 수록 좋지요.
감사하고 퇴근길 가벼워질 것 같네요.감사!
오늘 코프랜드 초반부터 잘 던져줬으면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