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에 재역전
내게는 한 학년 아래 누이동생이 있다. 누님도 다섯이나 있었으니
과히 여성 천하 가정이다. 장사를 하는 우리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가정집에는 하얀 세라 교복을 입은 동생 친구들이 소복했다.
동생은 온순하고 인심 좋아 장, 훗날은 친구들을 걸핏하면 끌어 모아
옥수수 튀밥을 나누어 먹었다. 내가 어쩌다 그 방에 들어가면 누이
친구들은 “00이 오빠요! 같이 먹시더” 했다.
그런 때 옵빠야 체통 때문에“난 괜찮아” 했다.
여성의 일생 중에서 최고조로 싱싱하고 아리따운 그 여고시절----
복사꽃 피부에 한껏 물올라 서너 미모 하는 서울 대구로 유학 간 누이
동지(?)들도 보였다. 그러면 나도 반가워 자연스레 함께 튀밥을 먹기도
했다, 꽃 밭속에 청일점이라 ----!!!
그런데 동생 친구들 중 초중고 절친한 사이었던, 웅변대회만 나가면
늘 1등만 도맡아 하고, 웃음기 있고 긍정적이었던 “0자”라고 있었다.
꼭 중요한 시기, 점 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내 가정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에게, “00이 오빠요, 살다보면 빛 볼 날도 와요, 힘 내소” 했다.
솔직히 그 많던 누이 친구들 속에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목석처럼
묵묵했다. 세상 하루라도 살기 싫어 침울했고 전혀 미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울서 고삐리로 방학을 맞아 동생한테 온 00도 보였다.
초등 때부터 누이와 붙어 다녔는데, 한창 감수성이 왕성한 시기라,
00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게 남자에게는 무덤에 들어갈 때 까지
기억한다는, 첫사랑으로 턱도 없는 서글픈 짝사랑이었다.
그런 걸 은연중 눈치 차린 <0자>는 알아서 협조적이었고 동생은 꼴꼴 난
자존심 때문에 판판히 방해치고 모질게 꼭 결정타에서 이 오빠를 제어했다.
세월은 흘러 0자는 울진으로 시집을 가 쌍둥이 아들을 낳고 불행하게도,
트럭에 치여 죽었다. 동생 말에 의하면 거의 종이 장 같이 비참하게 되었고,
사고 당시 바닥에는 검붉은 피투성이가 질펀했었다, 한다.
사연도 많고 울분도 많은 내 마음 감복해서 인가? 난 지금 그런대로
견딜만하고 반찬이라도 잘 챙겨주며 옆에서 애교부리는 아내가 있다.
내가 또 사업을 떠벌일까, 여적 두려워하며 오늘 같이 길동무 방에
걷기라도 가려면 “직장(산방 길방) 잘 다녀와요, 잘 근무하고요”하며
길동무 방 "근무"하러 가는 나를 보며 마누라가 쌔액 웃는다.
그러나 지금도 00는 미혼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직장에서 나름대로
즐겁게 보람되게 살고 있다. 틈나면 해외 여행하고 글을 쓰면서---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했다. 역전에 역전 아니, 재역전이다.
이제는 종반전 기분인데, 내 뒤 남는 자들에게 쌈빡한 이미지 들게
하고 싶다. 밉지 않게 잘 먹고, 잘 놀고 잘 죽었다고-----
영정 사진에는 병원 영안실 가면 훈장 같은 검은 태도 없이 하고
우리의 호프, 쌈빡한 <거서리>라고 적어두고 싶다.
다소 멜랑콜리 분위기인데 길동무 방 갔다 오면
또 달라 집니다. 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요---
푸 하 하 하! <거서리>도 무드 잡을 줄 안다고요,
첫댓글 거서리님은 우짤라고 여자 이야기가 아니면 글맥이 나오지 안는가뵈..ㅎㅎ
역시, 난봉은 난봉이야 글맥을 보면 참새가 방앗간보고 못지나가듯 재미있는
여자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여자이야기로 끝나지만 실속은 없으면서..ㅋㅋ
밤낯 허우적 거리는 그이야기지만 그속에 묘미가 있고 재미가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이 흐뭇해 지는것은 거서리님의 특이한 글솜씨인가..
인터넷 글은 20줄 이상 되면 독자가 인내력의 한계를 느껴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 밑에 늘숲이라고
긴 글인데도 문체가 박력 있고 숨김없이 흘러가 눈을 못 떼게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길게 쓰고 일종의 트랜드를 가져보려
합니다. 세상의 명작 가운데 여자 등장 안하는 게 거의 없습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부활 안나카레리나 닥터 지바고 그리고
점점 더 문학적 큰 평가를 받는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 등등,
오늘 운길산 길동무 방 가려다 그냥 급조하여 올려봅니다.
그런데 저는 백번 백패이니 이번에 일본서 여행 하시다가
돈 많고 야시시한 일본 온나상 소개 좀 해줘요!
혼또 기레이네 온나상! 말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이소!
거서리님은 역시 재미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가봐
나역시 거서리님처럼 소탈하고 털털한 군밤장수 처럼 살아가면 좋겠어요..
글쎄 일본에서 거서리님 마음에 와 닿는 여자가 있을까..ㅋㅋ
저와 갑장인데 옛날 그 시절 어려운 시골살림에
그 많은 따님들을 고등교육까지 시켰으니 거서리
부모님의 경제력과 교육열이 대단하십니다.
자주들어 정겨운 닉인데 "거서리" 무슨 내용입니까?
혹시 투전판에서 "개평"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잔돈 거스럼 돈 방언인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즐거운 주말되십시요
여기서 여러 번 질문을 받아 답을 해주었습니다.
고향의 촌 동네 이름입니다. 받침 없고 부르기 좋고
어쩐지 촌티가 많이 나서요, 고맙습니다.
늘 좋은 일만 생겨 나이소!
원래 여인 천하 가정에서 자란 남자들은
한 여성과 지고지순한 연애를 못하는 법이라오.
거서리님이 아직도 여성 동지들 틈에서 살아도
결론적으로는 짝사랑인 첫사랑을 간직한채로
조강지처의 사랑을 받는것으로 만족하며 살지어다. ㅎㅎ
역전의 용사, 쌈박한 거서리 선생... ^*^
오늘도 불면으로 지새워야 하나요?
백전백패한 초라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런 추억이 있어 지나고
보니 이렇게 끌쩍거릴 수 있는가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맏이인 큰 형님이 한분 게시고 누나 있고
내 밑에 동생이 있었습니다. 형님은 늘 가게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수완이 전혀 없고 순하여 ,
걱정 없이 법 없이 사는 분이었습니다. 누님 중에는
쌍둥이도 있었고요, 오늘 길동무 방 갔다 가
술도 많이 먹었는데 허무감에다 어쩐지 더 쓸쓸해
지는 기분입니다. 이러다 흘러 가는대로 저는 갈듯
합니다. 정성 들인 꼬리 글에 고마움을 드립니다.
원래 입김으로 양기가 올라오는 분들은으니 ,,,
실전에는 약한 법이라지예....
전번 살짝 맛만 보여준 마눌님 사진 보이 ...
인물이 장난이 아니라 카이 ..
여인네 둘레에서 살
산전수전공중전 알것다 알아쁘시니 ,,,
재미난글 봄기운 처럼 사뿌이 날라 갑니다,,,,
극찬이십니다. 올릴 적당한 사진이 없어
올려 보았습니다. 긴 글에 여자 등장 않으면
어쩐지 밍밍한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사실
이것, 저것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데, 그런 배짱이 없어 한창 모자라는 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절 대해 주니 고맙습니다.
오늘 길동무에서 뵈어 반가웠습니다.
부러울 것 없으신 거서리님
봄 햇살과 오후 내내 도킹 하다 오셔서
허무하고 쓸쓸하다 하시니 영 ~ 그러네요.
만나 뵈어서 즐거웠습니다.
닷새간 방에만 있다가
걸어서 이제는 원상회복이 되었습니다.
길동무 방에서라도 자주 뵈어요,
글중 슬픈이야기 땜에, 읽는 사람도 슬프게 하네요.
감정의 기복이 많으신 거서리님, 즐겁게 살아가셔요.
이것 저것 깊게 생각하셔도, 살아가는데는 해답은 하나요.
자신의 마음먹기 나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