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무효소송과 이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간단합니다. 이혼은 결혼이 전제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결혼무효소송은 결혼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결혼이 없었으니 위자료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혼은 결혼이 있었던 사실 때문에 위자료 청구가 가능할 것입니다. 배우자 어느 한 편이라도 대단한 부자라면 위지료 문제는 큰 부담이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이혼이란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결혼은 무효다.’ 그런데 분명 결혼한 사실이 있습니다. 때문에 소송을 해서 무효화하자는 말이지요. 이혼 소송은 지역에 관계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문제는 결혼무효를 만들려면 있었던 곳으로 가서 없애야지요.
겨우 20대에 들어선 러시아 청년 ‘이반’이 스트립바에서 만난 ‘애니’에게 빠졌습니다. 거액을 주고는 자기 하나에게만 봉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어차피 돈을 보고 붙는 것인데 업소보다도 훨씬 낫지요. 2주 휴가를 내고는 휴양지를 다니며 유흥을 즐깁니다. 맘껏 즐기며 거액의 돈도 버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입니다. 말 그대로 흥청망청 제멋대로 즐깁니다. 이미 그 스트립바에서도 유명해졌습니다. 워낙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연히 돈 따라다니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러시아의 집을 떠나 타국에서 간섭 없이 지내는 생활은 이반에게는 천국일 것입니다. 그렇게 내내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부모가 가만있겠습니까?
이반을 맡고 있는 직원이 있습니다. 부모가 러시아 재벌은 맞는데 과연 정상적으로 출세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들을 공부하라고 보낸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수시로 보고를 받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모르겠습니까? 허랑방탕한 생활이 보고가 되겠지요. 부모가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낙원 같은 생활을 버리고 돌아겠습니까? 둘이서 즐기며 이반이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기 싫다고 고백합니다. 방법은 없을까? 성인이니까 결혼하면 돼. 여기서 그냥 살면 되지. 미국인이 되는 거야. 그거 괜찮은데. 나와 결혼하자. 기막힐 일입니다. 이 갑부의 아들과 결혼이라! 속된 말로 봉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능할까요?
이반과 애니는 조그만 교회로 들어가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객도 없고 요란한 잔치도 없습니다. 그냥 형식적인 식만 행하고 목사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됨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결혼증명서까지 받아둡니다. 애니는 일하던 업소에서 결혼을 선포하고 자기 짐을 싸들고 나옵니다. 동료들이 부러워하지요. 시기하던 한 동료는 2주나 가나 보자고 합니다. 아무튼 의기양양하게 업소를 떠나 이반의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반의 부모의 직원들이 찾아옵니다. 이반은 그들의 출입까지 통제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애니가 발버둥칩니다. 이반의 아내로 큰소리칩니다. 하기야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으니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일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증명서를 스마트폰에 찍어 러시아 부모에게 통지합니다. 부모가 길길이 날뛰는 것이 당연합니다. 물론 사전 통보를 받고 여자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요. 한 마디로 아들이 미친 짓을 한 것입니다. 그야 술은 고사하고 마약도 하는 마당에 미치기는 했습니다. 한창 정욕이 불일듯하는 때이니 여자에게 당했다고 여깁니다. 당장 미국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이반에게는 위기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셈입니다. 이 둘을 잡아두라고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을 결혼했던 그곳으로 데려가 무효소송을 하려는 것입니다. 반드시 본인들이 있어야 하고 결혼식을 행했던 곳으로 아야만 합니다.
부모가 찾아오고 이반은 날래 도망칩니다. 애니가 따라가려 했지만 옷 챙기다가 놓쳐버립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잡혀 있습니다. 문제는 이반이 반드시 동행해야 소송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나서서 이반을 찾으러 다닙니다. 결혼무효소송을 집행하자니 이반이 있어야 하고 애니는 그래도 이반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으리라는 기대로 부모 앞에서 당당하게 결혼을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알만한 곳을 두루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이반이 전의 그 바에서 술에 절어있는 것을 발견하여 데려옵니다. 부모도 당도하여 이제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반은 부모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꼼짝못합니다.
하기야 돈으로 시작되었던 일입니다. 이반 부모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들 위협에 애니의 저항은 먹히지 않습니다. 그저 선심쓰듯 주는 소액의 대가로 만족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믿어보려고 했던 사랑은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자기를 지키며(?) 끝까지 따라다닌 ‘이고르’가 애니의 처소에 내려줍니다. 그리고 직원이 뺐었던 다이아 반지를 언제 취했는지 애니에게 건네즙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지요. 짧은 시간 티격태격하며 무시하고 지내왔지만 어쩌면 이 사람이 자기에게 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을 것입니다. 그의 품에서 흐느낍니다. 영화 ‘아노라’(Anora)를 보았습니다. 결혼, 하기는 서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해야 안전하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