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레 31,31-34; 히브 5,7-9; 요한 12,20-33
사순 제5주일; 2024.3.17.
1. 사순 제5주일인 오늘 말씀의 주제는 자연의 섭리를 비유로 한 신앙의 섭리로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사순 시기의 절정인 성주간을 한 주일 앞두고 우리가 들은 이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아온 그리스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을 내다보시고 하신 일종의 유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로써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집약한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당신을 따르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요청하시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자연의 섭리를 표현한 이 말씀 한 마디에 그리스도 신앙이 지향하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2. 이 말씀은 식물이 번식하는 자연의 현상을 관찰한 평범한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봄에 싹을 틔운 식물은 여름에 돋아난 입사귀를 통해서 광합성 작용을 하고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 속에는 씨앗이 들어있어서 밀의 열매인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그 속에 들어있던 씨앗이 땅 속으로 들어가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싹을 틔우는 성장과정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대개 한 톨의 밀알 속에는 많은 씨앗이 들어있어서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씨앗을 땅 속에 들여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흙 속에 파묻혀서 썩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는 밀알은 사실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사람의 일생에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3. 사람도 장성하면 짝을 만나서 혼인을 하고 자녀들을 낳아 기르는 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생입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는 부모는 온 힘을 다하고 가진 것을 다 쏟아붓고 헌신합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 이치와도 비슷합니다. 인류는 그렇게 해서 존속해 왔고 번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혼인하지도 않으셨고 따라서 후손을 두지 않으신 예수님께서 굳이 이 말씀을 당신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하신 이유는 사람의 평범한 일생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 같습니다. 밀알의 비유는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사는 일생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바치는 죽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흔히 이 밀알의 비유를 실천한 사람들로 순교자를 연상합니다. 실제로 역사상 신앙의 이유로 자기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은 다음에 많은 열매를 맺은 것처럼 후대에 많은 신앙인들이 생겨나게 하는 선교적 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세기에 활동했던 교부 떼르뚤리아누스는 이를 두고,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그분의 부활을 믿고 모였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스테파노는 유다교 집단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는 순교를 했지만, 그 때문에 흩어진 신자들에 의해서 오히려 복음이 사방으로 퍼지는 결과를 낳았는데, 특히 북쪽으로 흩어진 신자들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공동체를 세워서 소아시아는 물론 그리스 선교의 거점이 되기도 했고, 결국 로마제국 전체를 복음화시키는 놀라운 섭리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은 박해자였던 사울이 신자들을 체포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극적으로 선교사로 전환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4. 본시 바오로는 순교한 스테파노와는 가믈리엘 밑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였습니다. 말하자면 동창생이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스테파노가 처형당할 때에도 그에게 차마 직접 돌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돌을 던지던 자들의 옷을 맡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리스도교에 대해 반감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인데, 벼락을 맞은 후에 정반대로 달라졌습니다. 박해자로서 보였던 열정 이상으로 선교사가 되어 소아시아 일대와 그리스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오로와 그의 선교 결실을 맺게 한 씨앗은 스테파노의 순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라는 밀알 하나가 엄청난 열매를 거둔 것이지요.
5. 우리나라 천주교의 초기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1779년 무렵부터 경기도 천진암에서 천주학을 공부하던 젊은 선비들이 중국에서 전래되어 온 천주학 서적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되었는데, 이 강학회를 주도하던 이벽이 권유하여 이승훈이 북경에까지 가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왔고, 서울 수표교에 있던 이벽의 가정집에서 이승훈에 의해 강학회에 참석하던 젊은 선비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천진암 강학회를 주도하던 이벽은 선구자답게 세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하였고, 학자 형제 중에 형이었던 권철신은 고대 교회의 학자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권일신은 동양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정약전은 베드로의 동생이며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했던 안드레아, 정약종은 대학자였던 아우구스티노, 제일 나이가 어렸던 정약용은 예수님의 막내 제자였던 사도 요한 등의 세례명을 받고 영세했습니다. 이들의 그 뒤 행적과 인품을 고려하면 당시 이들이 성경과 교회 역사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정확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신앙 모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참석자들이 많아지자 더 넓은 장소로 옮긴 곳이 지금의 명동 성당 터인 명례방에 있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었습니다. 당시 김범우 토마스는 중인 신분의 의원이었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모임을 위해 드나들더라도 남의 눈에 뜨여도 이상하지 않으리라고 여겨서 그리로 옮긴 것인데, 천주교 신앙 모임을 하던 어느 날 이상하게 여긴 포졸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신자들이 모조리 잡혀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추조적발사건(秋曹摘發事件)이라고 부르는데, 추조는 당시 형조를 일컫는 말로서 지금으로 치면 경찰서입니다.
그래서 1785년 봄에 김범우를 비롯한 이승훈, 이벽,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일신 등 주요 참석자들이 형조에 끌려가서 문초를 받았으나, 양반 자제들이었던 그들 대부분이 훈방되고, 중인 신분이었던 김범우 토마스만 경상도 밀양 땅으로 유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 명례방 신앙 공동체에 덕망과 학식을 갖춘 젊은 선비들 여럿을 참석시켰던 이벽의 조직적이고 사려깊은 배려가 있었던 덕분에 이 사건 이후 그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흩어져 천주교를 전하는 바람에 전국으로 복음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이 경기도의 사도로 불리울 만한 권철신 암브로시오,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가 지금의 양평으로 불리우는 양근에서 신앙 공동체를 세웠고, 전라도의 사도로 불리우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충청도의 사도로 불리우는 이단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이존창 루도비꼬입니다. 유항검과 이존창은 본시는 양근 권일신의 집에 머물다가 그에 의해 입교하고 명례방 모임에까지 참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주고 세례를 베풂으로써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 천주교가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도 이단원 루도비꼬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니다. 김범우 토마스는 유배된 지 1년 만에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으니,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셈입니다. 또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충청도 내포 지방의 사도로 불리웠던 이단원의 집안 후손들 중에서 조선 천주교 최초의 신부 두 사람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이단원 조카딸의 손자요, 최양업 신부는 이단원 조카의 손자입니다. 이러고 보면 김범우 토마스 순교자의 피가 조선천주교회의 꽃을 피우는 소중한 밀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하지만 반드시 순교 행위가 아니더라도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서 바친 삶이라면 역시 똑같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습니다. 바치는 것이 목숨이든 일생이 영어 단어로는 똑같이 Life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혼인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삶을 밀알의 비유에 더 적합하게 빗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독신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셨습니다. 독신으로 자신을 봉헌할 뿐만 아니라 청빈과 순명으로도 일생을 봉헌하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교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서원을 하고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새로운 형제자매를 백 배로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7.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 위한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과 죽음으로 이 세상은 심판을 받을 것이며,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이끌어 들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직자와 수도자의 봉헌은 평신도들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도록 하기 위한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봉헌은 혼인성사로 받은 축복된 성을 온전히 깨끗하게 하여 혼인의 성소로 승화시킴은 물론 세상에서 일하는 직업 역시 세상에 대해서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기회가 되도록 직업 성소로 승화시키는 데에서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이렇게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가 모두 다 함께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의 빛이 됨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위한 밀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혼인과 직업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아가는 평신도 집안에서 사제 성소와 수도자 성소가 나오는 법이기 때문에,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는 교회를 이루는 기본 세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이것이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시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약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맺으셨던 계약은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갱신되었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여해서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계약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받아 모시며 하는 응답을 통해서 이를 거듭 다짐하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이 모든 지향을 종합해서 되새기며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성찰하는 특별히 거룩한 시기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