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력의 정도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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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는 ‘내담자가 말하는 게 다 옳다.’라고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는 내담자가 합당하다고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으로서는, 즉 그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여긴다는 걸 알아주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줘야 비로소 그가 자신의 속을 드러내어 푼다는 것이다.
성미 급한 나는 그런 식으로 내담자를 마냥 봐주고 공감했다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며 이의를 제기하곤 했다. 한두 번 이해해 주는 몸짓을 보이고는 자신을 객관화하도록 해석이나 직면 등을 동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면서 이러한 주장이나 이견은 어디까지나 강조점을 하기 위한 설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즉 자아 강도가 아주 낮은 사람에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분포가 매우 넓다. 그러므로 취약한 내담자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그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하거나 지지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고, 어느 정도 기능을 유지하는 일반인에게는 자극이나 도전을 가해 시간을 단축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므로 양쪽의 주장이 다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다시 생각하는 점은 고통이나 괴로움을 결정짓는 제1 요인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본인 소화력의 정도라는 것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이나 자극은 촉발 자극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의해 건드려지는 내적 상태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각각의 수준이나 상태에 따라 다 달리 접근해야 하므로 내담자를 마냥 공감하는 것도 맞고, 자신을 객관화하도록 해석이나 직면을 해주는 것도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통해서다.
어떤 남자가 외도했는데, 그 부인은 거의 허물어지듯 정신을 잃었다. 가정 살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이조차 돌보지 못할 만큼 횡설수설하며 위중한 상태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그 남자는 거의 죽을 뻔할 정도로 절망하며 괴로워했다. 누가 봐도 풍전등화 같은 하루하루였다.
또 다른 가정에서도 남편의 외도가 의심되자, 아내는 곧바로 가정법원에 이혼 소장을 제출했다. 그러자 펄쩍 뛰며 극구 부인하던 남편은 아내에게 온갖 각서를 써주는 등 싹싹 빌며 가까스로 이혼소송을 무마했다.
또 어떤 부인은 남편이 10년 주기로 그런 사고를 치자, 그때마다 야단법석을 떨다가 남자의 속성이 그런 욕망을 추구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며 여기게 되었단다. 아무튼 아내인 자기가 눈치채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어떤 부인은 남편이 외도 대상인 여자를 단념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마음졸이며 기다렸다. 이 부인은 자기가 남편의 비행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남편에게 숨기고 지냈다. 자기는 결코 가정을 깨고 싶지 않은데, 잔소리했다가는 도리어 이혼을 당할까 봐 겁을 내는 거였다.
또 다른 경우는 남편이 다른 여성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러한 사실을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이 어찌나 꽝꽝거리는지 당할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 일절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도리어 극진하게 받들어주었단다. 그랬더니 남편이 힐끔힐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하더라고 했다. 이 부인은 말하기를,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런 일로 이혼할 것도 아니라서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겠거니 하며 견딘다고 하였다.
가정마다 제각기 사정이 다르고 또 부인마다 다른 성정을 보이는데, 특히 남편의 외도에 대해 그렇게 다르게 반응하는 걸 보고 나는 어지러울 정도였다.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그토록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웠다.
다시금 깨달은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외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의 능력이지 않을까 하였다.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면 아무런 게 아니고, 대단한 거라고 여기면 엄청난 사건이 되고….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또는 일체유아(一切由我)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상대의 허물이 큰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별것 아닐 수도 있으니 정작 다스릴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지 않을까 한다. 즉 자기를 보호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자기의 소화력을 키우는 거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담에서 공감을 해주는 방식이 맞을 수도 있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도록 분명하게 일러주는 방식도 옳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들보다 더 중요한 건 각자의 수준이나 성향이므로 제1차적인 핵심을 젖혀둔 채 제2차적인 방식을 가지고 지나치게 왈가왈부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볼 수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첫댓글 "정작 다스릴 대상은 바로 나 자신"...
주변에도 소름끼칠 정도로 외도가 많네요..
거의 대부부은 이혼으로....
오늘도 상담사례 소개.
감사해요...
더러운 음란마귀 사탄마귀들 득실득실...
언제 어디서든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이지 싶습니다. 힘이 있으면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