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청년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청년들로 힘써 모이게 하시니 주님의 은혜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은
이들이 항상 복음을 듣게 되고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본문 주해)
10~11절 :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블레셋의 가드로 피한다.
당시 블레셋은 중앙 집권적 왕이 없고 여러 도시의 연맹체 국가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가드는 가장 가까운 국경 도시였다.
애굽 왕을 바로라고 하듯이 블레셋 왕의 명칭은 아비멜렉이었다. 아기스는 개인 이름이다.
그래서 본문을 배경으로 하는 시편 34편에 아기스를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본 것이다.
“이 사람은 분명히 저 나라의 왕 다윗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서, 저 나라의 백성이 춤을 추며,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고 노래하였습니다.”라고 한다.
신하들은 다윗을 칭송하는 노래를 기억하였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아기스에게 보고한다.
12~13절 : 다윗은 블레셋인들이 자신을 알아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의 계산 착오로 극도로 다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 다윗은 미친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옆에 있는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새번역)
14~15절 : 다윗을 본 아기스가 미치광이를 데리고 왔다고 신하들을 호통치며 다윗을 부정한 물건을 보듯이 기피한다. 미치광이는 악신에 사로잡혔다고 보았기에 이들을 해치면 자기가 해를 입는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지는 않는 것이다.
다윗은 원하던 대로 아기스에게서 쫓겨나 위기를 모면한다.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향한다.(22:1)
(나의 묵상)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거짓말을 하고, 무기를 챙기던 다윗이 이제 스스로 블레셋 땅으로 가서 다급한 상황에 처한다.
다윗은 왜 블레셋으로 갔을까?
골리앗을 죽일 때는 소년이었지만 이제 세월이 흘렀으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 섰던 것일까? 아니면 적의 적은 아군으로 여길 수도 있으니 사울에게서 도망친 자신을 망명한 자로 대우해 줄 것이란 계산이 깔렸던 것일까?
하지만 상황은 다윗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다윗은 미친 자 행세까지 함으로 겨우 목숨을 보존하여 그 블레셋 땅을 벗어난다.
큰 믿음의 사람 다윗이 두려움에 휩싸이니 인간적인 계산으로 이 일 저 일을 시도하며 갈팡질팡한다.
두려움 때문에 머리를 굴려 계산하는 모습은 익숙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다.
오늘 본문과 관련된 시편 56편과 34편이 그것을 보여준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고,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이 시편들은 다윗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찾아온 위기의 상황이 영적인 피로감을 주어 하나님께 묻고 결정하는 일들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이 시편들이 증거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4)
다윗처럼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일까지는 아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다급한 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된다.
그때 머리를 굴려 인간적인 계산을 하거나, 사람의 도움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늘 말씀 앞으로 나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간구하고 기도한다.
나의 매일의 말씀 묵상이 다윗의 시편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나의 상황이 어떨지라도, 또 내 마음의 계산이 어떨지라도, 주님께서 다윗을 주님 앞에 앉혀주시듯, 나를 말씀의 자리에 앉히시어 다시 주님께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힘있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복잡한 계산을 다 지우고, 주님 앞에 투명하고 단순한 마음을 올려드리게 하시니, 또 한 편의 나의 시편이 지어진다.
(묵상 기도)
주님,
다윗이 이런저런 실수를 하지만
그 처참한 상황 중에도 하나님을 부르고 찬송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 곁에 더욱 가까이 있게 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이 믿음의 길을 따라갑니다.
제 길에 주님이 동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길에 제가 동행하게 하옵소서.
그 길을 갈 때 저의 시편이 비록 투박할지라도 끝없이 이어져
주님께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