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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호수♡마리아
◼요한 15,1-8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점점 봄이 없어지고 있죠. 긴 겨울과 긴 여름.
아름답던 봄과 가을이 이러다가는 정말 어찌 되는 것인지.
정말 생태계가 자꾸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봄에 피어야 하는 것도 나와야 하는 것인지 안 나와야 하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3월에 기온이 높게 오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개구리들이 땅에서 나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이틀 후에 눈이 내려 다 얼어 죽었어요.
땅이 얼어 구멍을 파지 못했던 것이죠.
아인슈타인이 지구상에서 벌이 없어지면 3년 안에 지구는 멸망한다고 했죠.
지금도 외국도 한국도 점점 꿀벌들이 없어져요.
왜냐하면 얘네들이 먼 곳에 가서 꿀을 따와야 하는데 전파가 많아 찾지를 못한대요.
눈에 안 보이는 너무나 많은 전파, GPS 이용할 때마다 얼마나 많겠어요.
그래서 벌들이 갖고 있는 레이더가 다 망가졌대요.
철새들도 요즘은 갔다가 못 돌아와서 안 간대요.
수천 km를 유전자에 있는 레이더를 가지고 다녀왔는데, 지금은 못 찾아온대요.
결국 조물주 하느님이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지구를 가장 기대를 걸었던 인간들에 의해 다 망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도 여기는 아직 초청정 지역이라 법적으로 돈사, 축사가 못 들어옵니다.
오로지 과수원 같은 밭농사밖에 없어서 여기는 오염될 것이 없어요.
그래서 밤에도 별이 쏟아집니다.
어릴 때 봤던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카시오페이아 등이 손에 잡힐 듯 밤하늘을 꽉 채우죠.
또 아마 반딧불 보신 분이 있을 텐데, 반딧불이는 반드시 맑은 물이 옆에 있어야 살아요.
왜냐하면 반딧불 애벌레가 다슬기를 먹고 사는데, 다슬기가 일급 시냇가에서 살기 때문이죠.
공기도 좋죠.
어제는 힐링가든 생기고 처음으로 혼배미사가 있었어요.
몇 가지 기록이 어제 만들어졌는데, 첫 번째는 힐링피스가든의 첫 혼배미사였고,
두 번째는 사제 생활 동안 650쌍 정도 혼인성사를 했는데, 그중에 가장 어린 분들이죠.
어제 강론도 유튜브에 올렸는데 들어보셨습니까?
나이가 70세, 내 고등학교 동창이죠.
나는 아주 풋풋한 사람 혼인성사를 첫 번째로 할 줄 알았는데, 70이에요.
그리고 내 고등학교 동창 혼배성사를 준다는 것도 생각하지도 못 한 일이었고요.
여러분들 자제 중 혼배할 분 있으면, 여기는 스몰 웨딩하기 딱 좋아요.
아까 우리 입당성가가 뭐였죠?
‘나는 포도나무요.’
크리스천들이 가장 많이 듣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성서 구절, 장절은 몰라도 하나 말하라 하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있는데 외우세요.
오늘 우리들은 두 가지 중요한 관계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신앙은 관계성이라 했죠.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또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이 세계 중에서 하나가 망가지면 나머지 두 가지도 온전치 못한 관계를 바뀌어요.
내가 나 자신을 저주하는데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관례도 다 깨져요.
첫 번째 관계,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는 가지와 줄기의 관계예요.
가지가 줄기에 어떤 힘으로 붙어 있나요?
본드나 핀으로 붙어 있거나, 아니면 못으로 박아 붙였나요?
이렇게 억지로 붙이면 붙어 있을 수는 있지만 금세 죽겠죠.
우리는 자주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내가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내가 영성적으로 커질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너무너무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냉담 한번 하지 않고 그래도 주일은 지키고 살게 하는 그 힘이 무엇인가?
나무에 붙어 있게 한 그 힘이 무엇인가?
결론부터 얘기 드리면 그것은 돈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식도 아닙니다.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고, 영성적으로 커질 수 있고, 어떤 일이 있어도 냉담에 빠지지 않게 하는 그 강한 힘은 뭐냐?
겸손입니다, 겸손.
바로 본드보다도 강하고 순간접착제보다 강한 것이 바로 겸손이라고 하는 접착제입니다.
겸손을 이기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향주삼덕 강의를 참 많이 합니다.
신덕, 망덕, 애덕, 순명, 용서, 그리고 기쁨.
겸손에서 나오는 덕들이 바로 향주삼덕 열매들이죠.
언젠가 피정 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느 왕국에서 왕이 죽고 꼬마 왕자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열 살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이 어린 왕은 왕이 되면서부터 뭘 했는가?
보는 사람마다 90도로 인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비서실장이 ‘임금님, 임금님 나이가 어려도 나라의 어버이신데 어떻게 아래 것들에게 먼저 인사하시나요?’
그러자 어린 왕이 말대가리, 닭대가리, 사람 해골을 구해 오라 합니다.
비서실장이 구해 오자, 왕이 그것을 시장에 가서 팔아 오라 했어요.
참 별것 다 시킨다고 생각하며 말대가리, 닭대가리, 해골을 나란히 세우고 팔기 시작했죠.
‘말대가리 사세요. 닭대가리 사세요. 사람 해골 사세요.’
닭대가리는 한 시간 지나니 나갔어요.
그 나라 풍습이 닭대가리를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대,
또 말대가리도 바로 나갔어요.
정월 초하루에 말대가리를 걸어놓으면 무병장수한다는 풍습이 있었죠.
이제 뭐만 남았죠? 해골.
‘해골 사세요.’ 하니 사람들이 ‘미친놈이 별것을 다 팔려 하네.’ 하며 지나갔죠.
결국 해골을 팔지 못하고 돌아왔죠.
‘임금님 두 개는 팔았는데 해골은 못 팔았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열 살짜리 꼬마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지 아세요?
‘보세요. 사람 죽으면 닭대가리 말대가리만도 못 해요. 그런데 왜 고개를 왜 못 숙이나요?’
그때야 비서실장이 무릎을 딱 치면서 ‘드디어 이 나라에 성군이 나왔구나!’
어린 왕을 따라 궁궐 안에 있는 관리들이 자기보다 급이 낮아도 먼저 숙이기 시작했죠.
누가 나한테 먼저 인사하는데 나쁜 놈이라고 험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궁궐에 음모 덩어리가 없어진 거예요.
그리고 그 얘기가 담을 타고 백성들 사이에 퍼지면서 백성들도 보면 겸손하게 먼저 인사했죠.
그래서 그 열 살짜리 어린 왕은 창과 칼로 백성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머리 숙이는 것 하나 가지고
태평성대를 이뤘다고 하는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올시다.
여러분들, 어떻게 해야 겸손해지나요?
그냥 하루에 겸손, 겸손, 겸손, 겸손, 겸손, 겸손을 천 번 입으로 떠든다고 겸손해집니까?
나한테 좀 그 방법을 알려 줘.
나도 교만한 사제이고 겸손해지고 싶은데, 제일 힘든 것이 겸손입니다.
하느님에게 받은 것이 많을수록 더 교만해지기 쉽지요.
교만은 참 큰 적이에요.
기를 쓰고 살아도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죠.
겸손은 분명히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 상냥하게 한다고 겸손한 것이 아니죠.
‘여보세요~ 찬미 예수님~’ 이런다고 겸손한 것 아니죠.
겸손은 관상을 통해 만들어져요.
우리의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자전거 바퀴가 2개가 같이 굴러가지요?
영성의 두 가지의 축의 첫 번째가 ‘자기에 대한 관상’입니다.
관상이라는 단어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관상이라는 말의 뜻은 정직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정직하게 볼 때 우리는 겸손이 생겨요.
자기를 제일 정직하게 봐야 할 때는 어느 때인가?
저녁에 잠들기 전 저녁 기도할 때.
솔직히 저녁 기도 가톨릭 기도서에 나와 있는 것 중얼중얼하면 5분도 안 걸려요.
그러나 ‘주님 오늘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로 지은 죄를 주님 앞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면서.
내가 오늘 말 때문에 누구 상처 주거나 거짓을 한 적은 없었던가를 하나하나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영적 비참함을 느낍니다.
‘아이고, 내 꼬라지. 오늘도 내가 무수히 걸려 넘어졌구나.’
이렇게 주님 앞에 자신의 영적으로 비참함을 고백할 때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대낮에는 바빠서 다른 기도 못하더라도 아무리 바빠도 잠자기 전 적어도 10분은 하느님께 봉헌하세요.
최소한의 자기에 대한 관상을 통해서 겸손이라는 선물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단계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저절로 넘어가요.
앞바퀴가 굴러가면 뒷바퀴는 따라가게 되어 있죠.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에 대한 관상을 안 해요.
그리고 포장하고 미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만을 끌어안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것은 묵상 안 하죠.
자기에 대한 관상을 통하여 겸손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넘어가면서 기쁨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에게서 떨어질 수 없다고 하는 담대한 마음과 굳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아무튼 가지와 줄기의 관계는 겸손이라고 하는 접착제로 붙어 있다는 것이 이해되시죠?
두 번째는 그럼 가지와 가지는 어떤 관계입니까?
이제까지 얘기한 것은 줄기와 가지 사이, 이번에는 가지와 가지와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가지와 가지와의 관계는 붙어 있는 관계가 아니라 줄기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관계죠.
예수 그리스도라는 줄기에 겸손으로 가지들이 붙어 있는 것이죠.
가지들끼리 붙어 있는 것이 아니죠. 다 떨어져 있죠.
모두 줄기를 중심으로 붙어 있어요.
교우와 교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분을 받아서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같이 나누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교우들끼리는 근본적으로 서로 믿는 대상이 아닙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신뢰하는 대상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입니다. 아멘
모임이 있죠?
돈을 중심으로 모이는 집단. 정치적인 견해를 갖고 모이는 집단, 또 취미로 모이는 동호회 등.
그런데 이런 집단들은 특징이 있어요.
첫 번째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맞습니까?
두 번째 재미는 있지만 평화와 기쁨은 없다.
‘나 오늘 계 모임에 갔더니 성체 영할 때보다 더 평화로웠어.’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 병원에 가야 해요.
재미는 있지만 평화와 기쁨은 없어요.
세 번째 특징 항상 기득권 싸움이 있어요.
그것도 무슨 감투라고, 거기서 더 잘나야 하고, 내가 더 돋보여야 하고 똑똑해야 하고,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고, 존경받아야 하고.
이러한 기득권 싸움이 있고 세력 다툼이 있어서 파가 갈라지기 시작하죠.
이런 것들이 바로 세상 집단의 특징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가지인 우리, 예수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의 신앙 공동체는,
첫 번째 세상 공동체와 다르게 절대 깨지지 않아요.
두 번째 재미로 만나서도 안 돼요.
세 번째 어떤 일이 있어도 높고 낮음없고, 잘난 사람 없고, 세력 다툼이 있어서도 안 돼요.
첫 번째 뭐예요? 절대 깨어져서 안 된다.
두 번째 재미로 만나서도 안 된다.
세 번째 세력 다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인간 사회인데, 성당에서 좋은 형님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비슷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 만나지 말라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뭔가 힘을 기르려는 세력들이 있어요.
그래서 신부를 성토하고 교구청에 탄원서 넣고 투서 넣고.
내 이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저 아래쪽 어느 본당은 본당 신부님으로 가기만 하면 레지오 터줏대감에게 상처받아.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이 공공연히 그런대요. 새로 오는 신부가 가르쳐야 한다.
말도 안 되죠. 그것이 마귀집단이죠.
성모님 이름으로 모여 회합은 30분이면 끝나는데 술은 몇 시간 모여 마시며 신부님 험담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우리 신앙 공동체도 까딱 잘못하면 마귀의 밥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정신 차려야 합니다.
물론 사제에게 상처받는 신자들도 있지만, 사제들도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요.
요즘은 신학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요.
왜? 신부님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이고, 우리 아버지 집에만 오면 신부님 흉보거든.
그것을 지켜보는 고등학교 다니는 복사서는 아이가 신학교 가고 싶겠어요?
피정 지도하러 다니다 보면 역사가 오래된 성당에서 사목하는 신부님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 어려움 중의 하나가 뭐냐?
토박이 신자들이 다른 곳에서 오는 신자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것을 고치려 해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새로 전입해 온 사람이 능력 있고 열심히 해도 타지에서 왔다는 것 때문에 좋게 봐주지 않고.
이런 토박이들의 유세가 오래된 성당일수록 심하죠.
감곡 매괴성당, 지금은 한 130년 되었겠네요.
예전에는 청주교구에서 신부님들이 제일 가지 싫어하던 성당이었죠.
어떤 신부님은 6개월을 못 지내고 쫓겨났어요.
나도 신학생 때 두 방학을 거기서 지냈는데, 회장이 신부님과 싸우는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때 외국 신부님들이 계시다가 한국 신부님이 처음 오셨죠.
그 신부님이 여자를 처음으로 독서대에 올리셨죠.
그런데 그날 밤에 회장이 술이 꼭지가 되도록 먹고 와서 당신이 뭔데
이 역사 깊은 성당에 감히 여자가 어떻게 제대 위로 올라가냐, 어떻게 독서를 할 수 있냐 따졌죠.
그 신부님도 지지 않고 바티칸 공의회 문헌 펼치면서 ‘봐요. 여자도 인간이야.’
저도 감곡에 문제가 터져서 가지 않았습니까?
부임하고 첫 주일에 그랬어요.
감곡 성당은 나무로 따지면 고목이다, 고목에 꽃이 피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어머 고목에 꽃이 피었네’ 하면서 이뻐하지만,
고목에 꽃이 안 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도끼 맞는다, 불쏘시개밖에 안 된다.
나는 감곡에 꽃 피우러 왔으니 내 말에 100% 따라달라 했어요.
그렇게 가자마자 8개월 만에 30억 빚을 갚고, 성지 선포가 되었죠.
그리고 5년 동안 정말 감곡 신자들의 영성을 위해서, 이름만 오래된 성당이 아니라 이름만 기적 있는 성당이 아니라,
당신들 가지들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내가 떠날 즈음 교구 신부님들이 감곡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죠.
가장 가고 싶은 성당이 1번 감곡 매괴 성모 성지로 바뀌었어요.
지금도 신자들이 얼마나 순례자들에게 열심히 겸손하게 봉사하시죠.
그 체계를,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끔, 오래된 고목에 붙어 있는 꽃이 피게끔, 내가 만들어 놓고 떠난 겁니다.
우리들은 받아들이는 교회 겸손한 교회로 살 때 그것이 끊임없이 포도송이를 만드는 비법임을,
그리고 그것이 전통적인 방법임을 깨닫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가지는 절대로 줄기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겸손이라는 접착제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2024년 부활 제5주일 (4/28)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첫댓글 신부님도 신자들에게 상처를 받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