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워낭소리
고진하
아버지보다 휠씬 오래 산 나는
봄이면
똥장군을 메고
산밭으로 낑낑대며 올라가시던
겨울이면
우마차 끌고 십리도 더 되는
깊은 산에 들어 땔나무를 해 오시던
아버지의 야성이 왜 그리워질까
이십여 년 전귀농을한 뒤
가파른 산밭을 자주 오르내리며
그 야성의 DNA를
내 안에서 확인하고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유랑과 순환의 철학을 익히고 있긴 하지만
오늘 산책 중에 아버지 생각이
괜히 간절해져
백여 마리 소를 키우는
친구 우사에 들러
아버지 눈을 닮은 송아지들과 눈 맞추다 왔지
똥범벅이 된 부룩송아지들 엉덩이에선
봄기운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어
아버지 눈엔 저 부룩송아지들처럼
여전히 철부지로 보일
나 ,
문득 스쳐가는 환(幻 )
아버지는, 부룩송아지들 곁에 서서
껄껄껄 웃으시며
나를 향해
그래 그래, 같이 봄마중하자꾸나
딸랑딸랑 워낭소리를 내고 계셨어
고진하
영월출생. 1987년《세계의문학》등단.
시집『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얼음수도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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