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각지대(dead zone)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사각지대를 스스로 ?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인 것은 자신이 잘 볼수 없는 이 사각지대가 , 때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비교적 잘 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이 부분을 ?아내 보완하거나 제거 할 의지만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을 들추어 내게하고 얼마든지 수정이나 보완을 통하여 개선하거나 보다 완벽하게 만들수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자신의 사각지대가 다른 사람에 의해 들추어지는 경우,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전보다 더 강하게 부인하는등 더 깊이 감추고자 하는 우를 범하고 있을뿐 아니라 , 보완하거나 수정할 기회까지 놓쳐버리고 결국은 추락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보아 오고 있습니다 . 특히 자신의 사각지대를 수정이나 보완하기를 외면하거나 거부한 체, 자신의 삶을 제아무리 착한 마음으로 포장을 하고 생활을 한다 할찌라도, 우리의 영적인 사각지대가 점점 더 넓어 가는것을 막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거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 등의 영적으로 시급한 과제를 이야기 하려면,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무려 10억명이 넘는 이들이 그 심한 빈곤 상태에서 생활하다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매일 매일 약 2만6천명의 아이들이 굶주림과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숨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성경은 그 어디서도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뿐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토대가 된다고 증거하고 있을뿐 입니다. 다시말하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고, 돌보아야 구원을 받는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것이 대속의 전제 조건은 아닐지라도, 재물의 사용과 구원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고, 돌보는 것이 구원을 받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기때문입니다. 죄에서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은 우리의 영적인 내면의 변화를 불러오고, 그것은 다시 외적인 열매로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행동은,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며 주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른바 풍요롭고, 잘사는 나라에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의 사각지대는 바로 "물질주의 와 이기주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자나 재물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돈과 재물은 거룩한 자녀들이 받아 누리며, 주님의 영광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하나님이 친히 내려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우리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사각지대(dead zone)를 보여주고 계신것 입니다. 신앙인으로써, 주일 날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공부하며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헐벗고,굶주리고 있는 이웃을 모른체하는 자들은 이미 주님의 백성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모습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거나, 보여 주신 모습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할 삶의 모습도 당연히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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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날마다 기막힌 새벽 원문보기 글쓴이: 날기새
첫댓글 예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장소에 있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