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 9 월 26 일 월요일 맑음
오늘도 즐거운 일놀이를 열심히 시작하려는 풀천지에게
눈부신 가을날의 서정에 퐁당 빠져버린 풀향기 아내가
" 놀러나 갑시다 ~ " 하며 느닷없이 투정을 부린다.
" 그으래 ~ 그럼 낚시나 갈까 ? " 반색을 하였더니
" 아잉 아잉 ~ 바닷가 바아다아까아 ~ " 젊었을땐 투정 한번 안하더니
나이들어 가서야 온몸까지 흔들어 보채며
못다한 투정을 부려본다 ~
그래서 작업복 차림 그대로
갑자기 떠나게 된 풀천지 가족의 가을 여행이었다.
" 어디로 갈까 ? " 무어라 대답할지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면
" 당신이 알아서 해요 ~ " 30 여년 가까이 한결같은 대답이다.
딱 하나 풀천지와 재홍이가 좋아하는
낚시 가는것만 빼고 ~
산을 타고 넘어가는 길 내내
계속 산을 파헤치는 도로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한가로운 가을 여행의 기분은 여지없이 사라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긴 불영계곡을 넘어가는 길 내내
기를 쓰고 투쟁하듯 걸려있는 4 차선 도로 건설을 요구하는
울진 군민들의 염원을 담은 플랜카드의 내용들이
풀천지의 가슴을 잔혹하게 후벼놓는다.
< 4 차선 도로 건설을 하지 않으려면 원자력 발전을 당장 중지하라 >
< 모두가 싫어하는 원자력 발전을 유치해놓고 2 차선 도로가 웬말이냐 >
< 우리도 길을 넓혀 울진군민 좀 잘살아 보자 >
< 36 번 국도 4 차선 도로 건설만이 울진 군민들의 살길이다 >
< 국내 최다 원전 도시에 2 차선 도로가 웬말이냐 >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울진군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한 지역에 가장 많은 원전을 유치해놓은
자랑스러운 세계 최고의 원자력 발전 밀집 도시이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문이라도
원자력 발전의 끔찍한 위험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본의 유혹을 뿌리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개발만이 살길이라 목숨을 걸고
어떤 사람은 무자비한 개발에 온 가슴이 미어져간다.
원자력 발전의 보상금으로 잘 치장된 울진 바닷가에 도착하니
갑자기 후쿠시마에 밀어닥쳤던 쓰나미의 공포가
한순간에 밀려온다.
사람들은 얼마나 편리한 짐승들인가 ?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그리고 후쿠시마의 거대한 방사능 재앙 앞에서도
언제 그랬냐는듯 이토록 깨끗하게 잊을수 있다니
과연 정치와 언론으로 조작된 경제 개발의 속임수는 위대하기만 하다.
우리는 언제쯤 제정신을 차릴수 있을 것인가 ?
그런 날이 오기전에 우리는 끝없이 절망할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우린 이미 편리의 함정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것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애들이 기타치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를 노래하는데 가슴에 파고든다.
<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 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죽변항에 도착하여
생선부터 알아보았다.
예전에는 두 세달에 한번씩은 생선사러 왔던 곳인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 2 년여만에 처음 들린것 같다.
일단 매운탕용 삼식이부터 한상자 사고 나니
늦은 오후인데도 생선 경매가 한창이다.
경매를 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흥미롭기만 하다.
먼 바다에서 시달린 어부들의 고통들이
감추어 써 내미는 한순간의 결정으로 희비가 교차한다.
친구로 사귀어둔 멋쟁이 생선장수 아주머니를
오랫만에 만나
바로 경매가 끝난 생선들을 원짝 그대로
수수료만 붙여 구입하였다.;
바닷가까지 나가서 생선을 사게되는 경우가 있을때엔
되도록이면 경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노력을 하는게 좋다.
첫번째는 엄청나게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어서 좋고
두번째는 싱싱한 생선을 바로 살수 있어서 좋은데
세번째는 가까운 바다에서 아무렇게나 잡아온 생선들은
생선의 질이 아주 좋지 않으므로 조심하여야 되고
네번째는 먼 바다에서 제대로 잡아온 싱싱한 생선들 경매를
잘 가려서 살수 있어야 되는데
그럴려면 경매에 직접 참여하는 전문가 한사람쯤은
잘 사귀어두는게 좋다.
풀천지는 멋쟁이 생선 아줌마들을 사귀어 놓았는데
근 2 년여만에 다시 만났어도 서로 오래된 연인처럼 반가워하며
마음껏 원하는 생선을 무척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바다가 오염되어 있는줄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생선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수 있겠는가 ?
엄청난 양의 생선을
엄청나게 싸게 구입하여
엄청나게 오랫동안 반찬 걱정없이
엄청나게 흥겨운 마음이 되어
풀천지와 함께 늙어가는 고물 봉고차에 실어놓고
모처럼 가을 여행 삼아 바닷가에 놀러왔으니
풀천지만 보면 연인처럼 반가워해주는
횟집 아주머니에게
즐거운 기분으로 회를 구입하였다.
찬바람이 불면서 맛이 들어가는 방어와
쫄깃하고 고소한 아나고와
산오징어까지 푸짐하게 구입하였는데도
3 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3 만원이 적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 횟집에서 폼잡고 앉아 이정도 양을 먹으려면
어림잡아도 7 만원 이상은 주어야 할것이다.
아나고 회 껍질도 기계로 벗겨내고
잘게 써는 기계도 신통하고 편리하기만 하다.
수십년동안 생선회 장사를 하며 칼질을 많이 하다보니
어깨뼈가 무너져 내리는 직업병을 앓고 있다 한다.
만약 이런저런 편리한 기계들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더이상 생선 장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거라 한다.
후포에도 가족처럼 지내는 생선장수 할머니가 한분 계시는데
평생동안 사계절 모진 해풍을 맞으며 하루종일 칼질만 해대다 보니
요즘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가끔 전화가 온다.
춘양에 있는 방앗간 아주머니들도
아프지 않고 멀쩡한 사람이 없다.
툭하면 가게를 비워놓고 병원을 다니곤 한다.
젊었을때 고생하여 어느정도 먹고 살만 해지면
자기 몸을 돌볼 생각을 하여야 하는데
온 몸이 부서질때까지 돈을 벌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에
청춘이 가고 세월이 가고 행복이 간다.
각종 쓰레기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가는 바다에
갈매기들의 운명도 가련한 인간들과 다를바 없다.
몇십년 후가 되면 바다에 물고기들이 사라진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온갖 쓰레기들을 악착같이 바다에 버려야 하고
인간의 편리한 행복을 위하여
원자력 발전으로 인한 방사능의 끔찍한 폐해를
절대 그만둘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버릴수 없는 헛된 욕심으로 인하여
희망 대신 절망을 선택하고 미래를 돌보지 않으면서
사람인척 하고 살아갈 뿐인 것이다.
철 지난 해수욕장에 자리를 잡고
바닷가 여행 기분을 내어보기로 하였다.
한적한 산골의 정취도 좋지만
드넓은 바다의 운치도 좋기만 하다.
춘양 산골 송이로 모양을 낸
값비싼 송이 생선회가 푸짐하게 마련되었다 ~
쌀과 김치만 가져오니
3 만원을 들여 장만한 푸짐한 회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만찬이 마련되었다.
밥을 직접 해먹으면 훨씬 맛있는데
편리함에 길들여진 요즘 여인네들은
그 작은 수고로 얻어지는 작은 행복마저도 즐기기 싫어한다.
식당에서 비싼돈 주고 편리하게 사먹으면
송이와 복분자주등이 어우러지는
어찌 이런 충족되고 흡족한 기분을 느낄수 있으랴 ?
여인은 밥이 잘 되는것만으로
온전한 행복을 느낄수 있어야 한다.
해질녘 어스름이 밀려온다.
재홍이에게 기타 연주를 청해보았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기타가 유행인 모양인데
기타 소리를 통해서 울려퍼지는
각자의 꿈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
산골에 울려퍼졌던 재홍이의 기타소리가
외로운 바다에 아스라이 묻혀져간다.
풀천지가 생전 처음 해본 사랑의 몸짓이다 ~
우려했던 것보다 참고 봐줄만 한것 같다.
들떠있는 풀향기 아내의 요청으로 장단을 맞춰주면서
속으로 사진이 잘못 나오면 올리지 않으리라 작정했는데
풀천지의 기분도 꽤 좋았던 모양이다 ~
모처럼 바닷가로 떠난 풀천지 가족의 가을 여행은
생선 장만 여행으로 끝이 나고
이제 밤을 새워 엄청난 그 많은 생선들을
전부 손질하여야 한다.
매운탕을 끓이면 개운한 삼식이와
조림이나 구이등 무얼해도 맛있는 가자미와
두말이 필요없는 새우와 도루묵등
골고루 장만해 두어야지
'
밤새워 손질할때는 무척 힘들지만
그때 그때 식성에 맞추어 다양하게 즐길수 있고
언제 어느 때든 손님들이 찾아오더라도
전혀 시장을 가지 않고도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밥상을 대접할수 있게 된다.
이제 몇달동안은 전혀 시장을 가지 않고도
풀천지 된장 고추장 간장 식초 효소 각종 장아찌
그리고 건강하고 깨끗한 풀천지 농산물들 만으로
최고의 밥상을 차려낼수 있게 되었다.
싱싱한 새우는 소금구이가 제격이다.
밤을 꼬박 새운 생선손질에 새벽이 가까워 오지만
밀려오는 피로보다
가족의 일체감이 이루어낸 충일감으로 빚어지는
넉넉한 행복감이 포근하게 안겨온다.
어제 꼬박 밤을 샌 피로가 풀리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었던
풀천지 가족의 가을 여행을
즐거이 소개해 본다.
첫댓글 보기 좋네요 ^__^
고맙습니다.
원전만 없다면 정말 아름다운 바닷가인데 그렇게 개발을 하고도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네요~~
저도 오늘 천매암 사러 보성간 길에 전어회 먹고 왔는데, 산골에 있다 간만에 바다를 보니
마음이 다 시원해지더군요. 전어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구요~~ ㅎㅎ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나 봅니다.
우리 모두의 돌이킬수 없는 책임이겠지요.
가을 전어의 맛은 환상이지요 ~
지난 7월에 일본 지진해일피해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엄청난 상황을 어찌 말과 글로??
인간이 겸손해져야 하겠다는 생긱뿐이더군요..
가끔씩 쓰나미가 몰려오는 끔찍함을
되새겨보곤 한답니다.
직접 가서 보신 참상이야 기가 막히겠지요 ?
언제쯤 죽음의 개발을 멈출수 있을지
아득할 따름입니다.
너무 멋진 가을여행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한 여름의 바닷가보다...
가을의 한적한 바닷가가 조용하면서도 운치가 있더군요...^^
매일 보는 바다가 아닌
좀 떨어진 바다에서 놀다 오고싶어집니다....
언제쯤 풀천지 가족들이
대부도에 들러 잘 가꾸어진 고요님의 정원도 구경하고
집앞 바닷가에 함께 놀러가
정겨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꿈꿔 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