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요실금/ 김선우
은하수 추천 0 조회 63 15.06.22 18: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요실금/ 김선우



일찍이 오줌을 지리는 병을 얻은 엄마는
네 번째 나를 낳았을 때 또 여자아이라서
쏟아진 양수와 핏덩이 흥건한 이부자리를 걷어
내처 개울로 빨래 가셨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요실금을 앓는 여자의 아랫도리처럼
얼음 사이로 소리 죽여 흘렀을 개울물,
결빙의 기억이 저를 다 가두지 못하도록
개울의 뿌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뜨거운 수액을 조금씩 흘려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한의 겨울에도 동네마다
얼어붙지 않은 개울이 한두 개쯤 있었고
나는 종종 보곤 했던 것입니다
한겨울 비루해진 개울이 뜨거운 제 살 속에서
흰 눈을 폭포처럼 퍼올리는 것을

먼길을 걸어온 女子들이
흰눈을 뭉쳐 조금씩 녹여 먹으며
겨울나무 줄기에 귀를 대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오줌 한 번 시원하게 눠봤으면 좋겠다던
엄마의 문이 눈밭 위에서 활짝 열리곤 하였습니다

-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년)

.............................................................

 

 요실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변이 흘러나와 팬티를 적시는 매우 당혹스러운 증상이다. 남성의 전립선 장애에 해당되며, 주로 출산으로 인한 골반근육과 괄약근이 약해져 나타나는 방광조절능력 저하현상으로 우리나라 여성의 약 4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전문 진료는 비뇨기과 소관이지만 부인과에서도 환자를 받는다. 오히려 여성들의 비뇨기과 기피 심리로 인해 부인과를 찾는 경향이 짙다. 이 시는 억압받고 감춰져온 여성성을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시의 질료로 끌어들이곤 했던 김선우 시인의 '요실금'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해찰이다. 

 

 시인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주술적 언어로 그 난맥상을 풀어놓았는데, '죽기 전에 오줌 한 번 시원하게 눠봤으면'하는 바람은 그저 희망사항으로만 그쳤던 것 같다. 예전엔 이의 적극적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여성은 거의 없었고 지금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부끄러워서라도 감히 병원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의학적 판단으로 수술을 요하는 경우는 전체 환자의 10% 미만이며, 나머지는 약물치료와 골반근육운동으로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케겔’ 이란 괄약근 강화운동도 증상완화에 도움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년 전 요실금 수술이 급증하여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었다. 요실금 증상이 심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도 생식기성형수술(속칭 예쁜이수술)을 묶어 수술 받도록 하는가 하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예쁜이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요실금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보험금을 챙긴 의사 등이 무더기로 적발된 일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요실금 치료를 위장한 예쁜이수술의 대유행으로 당시 의보재정이 크게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여성시대보험'이란 상품을 판매한 삼성생명도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이 보험을 기획한 책임자는 회사로부터 큰 책임추궁을 받았다.

 

 그 여파로 현재 민간건강보험(실손보험) 보장대상에 치질은 포함된 반면, 요실금은 빠져 있다. 치질은 보험금 때문에 부러 수술을 받는 환자가 별로 없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요실금 수술은 달리 인식했다. 이 같은 사정임에도 지금은 시인의 어머니처럼 '먼길을 걸어온 女子들이 흰눈을 뭉쳐 조금씩 녹여 먹으며 겨울나무 줄기에 귀를 대'곤 하던 때와는 판이한 세상이다. 비록 보험을 이용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얍삽한 수술은 불가능해졌지만 맥없이 오줌을 지리는 여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수치심과 우울증을 숙명으로 감내했던 어머니 시대의 여인도, '죽기 전에 오줌 한 번 시원하게 눠봤으면 좋겠다던' 소심한 소망도 다 사라졌다.       

 

 

권순진

 

Somewhere In My Heart - George Davidson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