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내용
156p “실제로 인간의 법칙은 모두 보상과 징벌에 기초를 두고 있으므로, (보상과 징벌이라는) 이 두 동기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선한 행동을 낳고 악한 행동을 방지하는 기초적 원리로 가정되는 것은 틀림없다. ~ 신을 입법자로 간주하고, 신이 인간을 그 법에 복종시키기 위한 의도로 징벌을 가하고 보상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한, 이 추론은 신의 법칙에 적용해도 역시 확실하다. ~ 인간의 행동에 필연적 연관이 없다면 정의와 도덕적 형평에 맞게 징벌을 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징벌을 가하는 것을 이성적 존재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 행동이 선하다고 해서 그에게 명예를 줄 수 없고, 그 행동이 악하다고 해서 그에게 불명예를 줄 수 없다. ~ 즉 행동이 도덕성과 종교 따위의 규칙과 상반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람은 그 행동에 대해 책임 질 수 없다. ~ 따라서 사람이 징벌과 보복의 대상일 수는 없다.”
158p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이성은 의지의 방향을 결정할 때 결코 정념과 상반 될 수 없다.
의견
인간의 이성과 행동이 직접적 연관성이 없고, 행동의 책임을 인간에게 물을 수 없다면, 그 행동의 원인은 무엇이며? 또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존재는 어떤 것인가?
서술
?창세기 2장 17절 : 신의 명령.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 3절 : 명령을 지키려는 인간.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장 4절 ~ 5절 :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 인간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장 16절 ~ 17절 : 신의 징벌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남편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첫 번째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하 신)께서 인간들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이다. 즉 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 신은 입법자이고, 인간은 그 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 명시된다. 두 번째 말씀에서는 신의 말씀을 거역해도 된다는 뱀의 첫 번째 유혹을 거절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 유혹을 거절하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그렇게 하도록 명령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물론이거니와 모두가 ‘이성’이라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흄은 다르게 말 하고 있다.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성 말고 다른 어떤 촉매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원인으로 작용을 해야만 행위가 나타나는 결과를 만들에 낸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성 +X = 행위. X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X 없이 이성만으로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흄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유발 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이 이성이라는 직능은 의욕을 막거나 어떤 정념 또는 정서를 선택하려고 싸울 역량이 없다.” 이 부분을 보면, 아예 이성은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주장 하고 있다. 그럼 이성 말고 대체 무엇이 우리의 행동의 기준이 되고 선택의 기준이 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흄의 생각이다.
‘이성 :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진위(眞僞)·선악(善惡), 또는 미추(美醜)를 식별하는 능력.’
위의 것은 이성의 사전적 의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임마누엘 칸트’는 본능이나 감성적 욕망에 기인하는 행동에 대하여, 의무 혹은 당위 의식에 의하여 결정된 행위가 이성적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겐 자율적으로 자기의 의지를 결정하는 이성적 능력이 있어서, 그것에 의하여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흄의 의견은 약간 삐뚤어져 있으며, 그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의 기준, 선택의 기준은 이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3번째 성경 말씀을 보면 유혹을 뿌리치는 인간에게 악의 근원으로 표현되는 뱀이 끝없는 유혹을 가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결국 인간은 악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신의 법칙을 어기게 된다. 4번째 말씀에서는 그 인간의 위법 행위에 대한 벌을 내리고 있는 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린도 후서 5장 10절에 보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 나와 있고, 누가복음 6장 35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후략)”라고 나와 있다. 이 두 말씀과 앞서 말한 창세기의 말씀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면,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권선징악’을 신께서 인간에게 실천 하겠다는 말이다. 흄은 인간의 법칙은 모두 보상과 징벌에 기초를 두고 있고, 신을 입법자로 간주하고 인간을 그 법에 복종시키기 위한 의도로 징벌을 가하고 보상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 신의 법칙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인간의 행동에 필연적 연관이 없다면 징벌을 가할 수 없고, 징벌을 가하는 행위는 이성적 존재가 생각 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징벌을 가하는 신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인간보다 상위 개념(?)의 존재인 신이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말한 흄의 의견은 다 지나칠 수 있다 치더라도, “사람은 그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라는 말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사람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다음에도 마치 태어난 첫 순간처럼 순진무구하며, 사람의 성격은 자신의 행동과 전혀 무관하다.”라고 표현하고, 이 것의 근거로 “모르고 한 행동의 원인은 순간적이며, 그냥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둘다가 실수로 악한 행동을 했을 때, 심사숙고 하여 악을 저질렀을 때보다는 가벼운 비난을 받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흄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죄의 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증명을 죄의 값을 받는 장면으로 해 버린 것이다. 악한 행동을 한 이후 그것이 실수에 의한 것이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가벼운 비난(=약한 형벌)을 받는다고 표현한 것이 흄의 실수이다. 흄의 의견과 근거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로 맺어져 있기에 흄의 의견에는 신빙성이 없고 나는 따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자. 그렇다면 흄의 말대로 행동의 책임을 사람에게 물을 수 없다면 대체 무엇에게 죄의 값을 치르게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일까? 흄은 정확히 답을 해 놓지 않고, 얼렁뚱땅 다른 주제로 넘겨 버리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전혀 존중하지 않은 흄의 태도에 비난의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스스로는 인간, 또는 인간의 이성 말고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흄은 궁금증만을 남겨놓았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 보고 스스로 알아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이다.
인간의 원죄설부터 시작하여, 죄인에 대한 법정재판까지 이 세상은 ‘권성징악’을 숭배하다 시피 하며 지금까지 달려왔고, 또 달리고 있다. 지금에 와서 이것을 바꿔야 하고, 책임을 물을 존재가 없다하여, 죄를 묵인 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불 보듯 뻔한 이야기다. 흄이 대표적인 이상주의 철학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는 있지만, 현실을 무시한 채로 이상만을 추구하는 점은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루지 못할 꿈은 이상이 아니라 망상이다.” 라는 말처럼 흄의 생각은 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른다.
총 1029 단어
참고자료 : <정념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
<서양 철학사> 스털링 렘프레히트
<창세기> <고린도후서> <누가복음> 성경
‘이성’ 에관한 인터넷 검색
주요내용
156p “실제로 인간의 법칙은 모두 보상과 징벌에 기초를 두고 있으므로, (보상과 징벌이라는) 이 두 동기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선한 행동을 낳고 악한 행동을 방지하는 기초적 원리로 가정되는 것은 틀림없다. ~ 신을 입법자로 간주하고, 신이 인간을 그 법에 복종시키기 위한 의도로 징벌을 가하고 보상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한, 이 추론은 신의 법칙에 적용해도 역시 확실하다. ~ 인간의 행동에 필연적 연관이 없다면 정의와 도덕적 형평에 맞게 징벌을 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징벌을 가하는 것을 이성적 존재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156p “그 행동이 선하다고 해서 그에게 명예를 줄 수 없고, 그 행동이 악하다고 해서 그에게 불명예를 줄 수 없다. ~ 즉 행동이 도덕성과 종교 따위의 규칙과 상반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람은 그 행동에 대해 책임 질 수 없다. ~ 따라서 사람이 징벌과 보복의 대상일 수는 없다.”
157p “사람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다음에도 마치 태어난 첫 순간처럼 순진무구하며, 사람의 성격은 자신의 행동과 전혀 무관하다.”
157p “모르고 한 행동의 원인은 순간적이며, 그냥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둘다가 실수로 악한 행동을 했을 때, 심사숙고 하여 악을 저질렀을 때보다는 가벼운 비난을 받는다.”
158p “이성적 존재는 이성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158p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이성은 의지의 방향을 결정할 때 결코 정념과 상반 될 수 없다.
160p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유발 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추정으로는 바로 이 직능은 의욕을 막거나 어떤 정념 또는 정서를 선택하려고 싸울 역량이 없다.”
161p “어떤 정념이 작용할 때 우리가 의도한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는 수단을 선택하여, 원인과 결과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경우이다.”
161p "어떤 정념이 거짓 가정에 기초를 두거나 또는 의도적 목적에 불충분한 수단을 선택했을 때가 아니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정념을 결코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성과 정념은 결코 상반될 수 없으며 의미와 행동을 지배하기 위해 싸울 수도 없다.“
165p “선이나 악이 욕구나 혐오 따위의 정념뿐만 아니라 그 밖의 어떤 특정 정서를 유발할 상황에 있다면, 욕구나 혐오는 새로운 힘과 격렬함을 획득할 수 밖에 없다.”
167p “영혼이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수행하거나 대상을 파악하는 데 몰두할 때 그 직능에 어떤 완강함이 있으며, 기운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168p “습관은 어떤 행동이 완전히 거북하지 않다면 그 행동을 수행하는 데 수월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의향이나 경향을 부여한다.“
178p “정념을 뒷받침하며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호의적이며, 이와 반대로 정념을 약화시켜 힘을 빼앗는 것은 우리에게 언짢다.“
182p “ 념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고통과 쾌락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감정을 산출하는 데에는 어떤 선이나 악이 제시되기만 하면 된다.“
188p “겨우 가능적이라고 생각되는 악이, 특히 그 악이 매우 증대할 때에는 때때로 두려움을 산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191p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어떤 동요 또는 정념들의 혼합을 어느 정도 언짢게 유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언제나 두려움을 낳든가, 또는 적어도 두려움과 거의 구별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한 정념을 낳는 다는 점이다.“
192p “의지와 직접 정념이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은 그곳이 유일한 존재이고, 인간 존재와 같은 원인에 의해 동물에게도 발생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명백하기 때문이다.”
194p “결코 상상력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욕구와 의향이 있다는 점인데, 이런 욕구나 의향은 실제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념들의 희미한 그림자 또는 그 심상일 뿐이다.”
196p “어떤 경기에서 우리가 갖는 흥미는 우리의 주의를 끌며, 이 흥미가 없으면 우리는 어떤 활동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196p “신념의 영향력이 상상력의 관념에 생기를 불어넣거나 관념을 상상력에 끼워 넣고 그 관념에 대한 동요와 불확실성을 모두 막는 것이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증명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