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영세를 했습니다.
아니 개신교 신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改宗)을 했습니다.
겨우 10대 소년 시절에 주일날 예배당엘 다니다가
성당으로 옮긴 것을 두고 ‘개종’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ㆍ4 후퇴 때, 동네 작은
예배당의 동정녀 집사 한 분이
오갈 데 없던 어머니와 어린 우리 4남매를 거두어 함께
피란길에 나서면서
자동적으로 개신교 신자가 된 이후
저는 나이답지 않게 꽤 깊이 신앙생활에 몰입했습니다.
함께 피란 간 신자들끼리의 단체 생활이어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저는 중학교 때 이미 신구약 성경을 다 읽었고,
사흘 동안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
단식기도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혼자 서울로 올라와
입주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비슷했습니다.
특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갈 때는 도중에 있는
예배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매일 눈물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던 저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은
사실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저 스스로 개종을 했다기보다 순전히 어머니께서
먼저 개종하시는 것을 보고 가톨릭으로 가는 것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정한 것이기 때문에,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문화 충격 같은 것도 느낀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몇 달간 교리공부를 거쳐
영세했지만 영세 이후에도
가톨릭은 저에게 한동안 낯설기만 했습니다.
개신교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종교라면 가톨릭은
‘스스로 다가가야’ 하는 종교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개신교가 됐든 가톨릭이 됐든 저에게 신앙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우선
저는 새로 선택한 가톨릭 신앙에 대한 그런 ‘낯설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제가 개신교
신자 단체 생활을 했을 때처럼
종교적 분위기에서 사는 것이겠지요.
주변에 몇 대에 걸쳐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집안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보기에 건성건성인 것 같아도 아주 깊은
신앙심이 있습니다.
항상 가톨릭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묘하게도 제가 영세를 준비하던 때가 마침 대학을 선택하는
시기였고 따라서 저는 주저 없이 가톨릭의과
대학으로 진학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는 이 선택을 제 일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저절로 제 신앙심이
깊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 때고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경당이 있고,
방마다 벽에 걸려 있는 조그만 십자고상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것만도 제가 가톨릭 신앙에 대한 낯설기를 극복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 모교에서 40년을 지내고
정년까지 했으니 이런 제 소원은 충분히 이루어진 셈입니다.
문제는 개종 이후 제 신앙생활이 하느님 마음에 드셨는지
여부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분께
맡겨야 할 일이겠지요.
저는 그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살 뿐입니다.
첫댓글 뿌리깊은 나무는 세월이 흘러도 제몫을 다하고 떠난다는 사실이 ....... 전 요즘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알게 해주셔서.... 그래서 어쩜 더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서할수 있는 지혜도 녹슬지 안고 저를 지켜주지 안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