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한다. 교도소와 노숙인 쉼터, 미혼모 복지시설, 지역 자활센터, 공공도서관 등이 주된 활동무대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결핍을 마주하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인생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한 학자가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이다. 강연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리운 어머니, 지금?여기 우리네 삶의 풍경들,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책과 영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단상과 비평 등이 엮인 글타래에는 우리가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 세상의 내면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 저자 소개
최준영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됐다. 2005년부터 노숙인, 미혼모, 재소자, 여성 가장, 자활 참여자 등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삶의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덕분에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프란시스대학(최초 노숙인 인문학 과정) 교수를 거쳐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전국을 떠돌고 있다. 2019년부터 경기도 수원시 장안문 근처에서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꾸려 운영 중이다. 2004년부터 경기방송, SBS라디오, MBC, 국악방송 등에서 다양한 책소개 코너를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최준영의 책고집』과 『결핍을 즐겨라』,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동사의 삶』, 『동사의 길』 등이 있다.
📜 목차
프롤로그
1.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휴먼카인드/ 여기선 묻지 않아요/ 굿바이, 전태일/ 결핍의 힘/ 금언과 그 밖의 생각들/ 귀 기울이면 비로소 들리는 것들/ 사람아 아, 사람아!/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태도에 대하여/ 어매/ 살리는 일/ 꽃구경/ 단풍과 어머니의 주름/ 그 많던 누나들은 어디로 갔을까/ 학교, 불편을 배우는 곳/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2. 표피 너머 심연을 성찰할 것
삶이란 내면의 결핍과 마주하는 일/ 시민이란 무엇인가/ 앎의 속박, 삶의 여유/ 표피 너머 심연을 성찰할 것/ 별의 순간/ 전문가주의와 아마추어리즘/ 오디세이 성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 아빠, 또 놀러 오세요/ 어떻게 지내십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바보’ 리더십/ 코로나 시대의 사랑/ 구름, 예술적 영감의 원천/ 생명이란 무엇인가?/ 역사 지식의 역설/ 발리의 사제는 그저 가끔씩만 오리를 가리킨다/ 자신의 문장을 갖는다는 것/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 기업은행 이대형 대리, 칭찬합니다
3. 래디칼하되 익스트림하지 않게
‘지금, 여기’ 우리네 삶의 풍경들/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경언유착’이라는 악취/ 민족정서 ‘흥’과 평창올림픽/ 대통령의 ‘혼밥’/ 주사와 사무관/ ‘백벤처’와 다선 심판론/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 래디칼하되 익스트림하지 않게/ 다시, 인문주의를 생각함/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의 실험과 도전/ 대한민국에는 국가(國歌)가 없다/ 블랙리스트, 그때나 지금이나 옳지 않다/ 언어의 한계는 나의 한계이다/
모국어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 ‘소금꽃’과 민들레 연대
이 책에서 소개한 책, 영화, 노래
📖 책 속으로
노동현장을 전전할 때였다. 주로 모래와 시멘트를 섞는 일을 했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느림의 힘을 알게 됐다. 몇 삽 크게 푸고 허리 펴기를 반복했더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암묵지를 알려주셨다. “욕심내서 한 삽 크게 뜬다고 일이 빨라지는 게 아니야. 조금씩 떠서 천천히 해봐. 그럼 거짓말처럼 힘도 덜 들고 일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거야.”
--- p.14,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중에서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가 하필이면 장사익이 부르는 〈꽃구경〉(시인 김형영의 시에 곡을 붙였다)이었다. 노랫말 후미의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라는 대목에서 심장이 멎는 듯한 흉통에 몸서리쳤던 기억이다. 이따금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도리 없이 그 노랫말이 뒤미처 떠오른다.
--- p.62, 「꽃구경」 중에서
다시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묻는다는 건 진실을 알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이며, 정당한 문제제기이고 엄정한 비판이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리 없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기자는 사실을 근거로 끝없이 의심하고 묻고 비판하고, 다시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묻기를 멈추고 듣기만 하는 기자라면 그는 더는 기자가 아니다.
--- p.159,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중에서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권력이 이동됐다고 보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권력과 언론권력은 여전히 그대로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국정개혁에 애를 먹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을 개편하고, 장차관을 바꿔봐야 일선 공직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개혁은 물 건너가기 일쑤다.
--- p.192, 「주사와 사무관」 중에서
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본인과 험담의 대상자, 그 험담을 듣는 사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거늘 왜들 그리 서로를 죽이려 하는가.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라고 받아둔 선물이 산더미를 이룬다. 밝고 빛나는 삶을 살라고 불을 선물받았고, 둥지를 짓고 살라고 지구라는 아름다운 터전에 왔다. 소통하고 공감하라고 수도 없는 생각을 말과 글로 벼려왔다. 그 모든 고귀한 선물을 왜들 그리 엉망으로 탕진하는가. 왜들 그리 증오와 환멸의 삶을 살려고 하는가.
--- p.224, 「언어의 한계는 나의 한계이다」 중에서
🖋 출판사 서평
기획의도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 결핍이 있다. 결핍은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 결핍에 시달린다. 부자라고 해서 결핍이 없을 리 없다. 돈에 대한 집착이 그 외의 삶의 가치를 압도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결핍 역시 심각한 결핍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 재산의 상속 권한도 없이 자라났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결핍은 되레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 역시 서자라는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또한 그런 경우였다. 인간의 역사는 저마다의 결핍을 극복해온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 역시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다. 결국 삶이란 끝없이 자기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결핍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이 책의 지은이는 자신의 삶이 한마디로 결핍의 삶이라고, 그러나 결핍에 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되레 결핍의 힘으로 살아내어 더러는 타인의 결핍도 들여다보며 어루만지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렇게 느리지만 치열하게 버텨온 삶의 여정에서 길어 올린 사유의 묶음이다. 이 글들을 통해 독자들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가지며 비로소 삶에 대한 무비판적인 비관과 부정을 걷어내고 세상을 ‘레디컬하되 익스트림하지 않게’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하는 ‘거리의 인문학자’
자기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법,
그리고 결핍에 지지 않는 인생을 이야기하다
최준영은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이름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을 한다. 교도소와 노숙인 쉼터, 미혼모 복지시설, 지역 자활센터, 공공도서관 등이 주된 활동무대다. 길 위에서의 삶, 동사(動詞)로서의 삶이다. 힘겨운 길이면서 동시에 행복한 인생 공부의 길이다. 이 책은 그 길에서 떠올리고 닦은 삶에 관한 사유들을 엮었다.
결핍에 지지 않는 삶
이 책을 이루는 한 바탕은 지은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으며, 가난은 기본이었다. 십대 시절부터 노동현장을 전전하며 야학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는 그 시절의 청년들과 함께 불의에 맞서 거리에 나섰고, 지금까지도 거리의 삶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은이의 글에서는 결핍되었던 삶의 여정과 그것에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낸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애정이 어려 있다. 생면부지인 어느 출소자에게서 온 편지에 덥석 생활비를 부쳐준 이야기, 두어 달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수강자에 관한 에피소드, 예순 넘어 한글을 배우셨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 등 자기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인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 책을 이루는 또 하나의 바탕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자의 눈이다. 지은이는 인문학이란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책과 영화를 읽고 세상에 대해, 사회와 정치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유롭게 비평한다. 그래서 이 책의 글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리뷰와 비평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넘나들고, 생각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책과 영화, 신문과 텔레비전은 인문학적인 사유를 꿰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스스로 ‘부박한 사유’라고 폄하지만, 때때로 격하고 단호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지은이의 글에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세상을 이해하고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를 바라는 인문학자의 소망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이렇게 이 책은 결핍의 힘으로 자신과 세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한 인문학자이자 개인이 나와 세상의 부족함으로 고심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건네는 응원이다. 지은이의 바람처럼, 이 책이 누군가의 결핍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