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동물원

"바다든 하늘이든 힘차게 돌진하는 동물들이 마음에 들어.“ 돌고래와 독수리를 좋아한다는 에루이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아주머니는 동물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바나 동물원’은 어느 누구한테 들어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다. 외국동물원 나들이는 처음이다.   “안또니오 쏠로히꼬(Zoologico,동물원)에 가면 사자가 말을 걸 거야.” “네? 사자가 말을 걸다니요?”   사라아주머니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기를 기다렸다. 아바나 여정 첫날부터 유쾌한 농담을 걸어, 키 작은 동양청년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곤했다.   “Leona que hambre(레오나 께 암브레, 암사자는 배가 너무 고파요.)” 사라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굶주린 사자 표정을 지었다. 양쪽 입꼬리에 힘을 줘 아래로 끌어내리고 검지손가락으로 눈꼬리까지 꾸부렸다. 사라의 밝은 갈색 곱슬머리 때문에 정말 배고픈 사자처럼 보였다. 사라아주머니는 물라따(Mulata)다. 에스뺘냐계 백인과 카리브 흑인사이의 혼혈인. 함께 살고 있는 사라의 어머니 로라할머니가 백인이니 아버지가 흑인이다. 자신이 물라따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이유는 두 개 인종의 장점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남편 라사로 아저씨는 백인이다. 부부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들 에루이스는 백인, 쌍둥이 형제 중 올란도는 물라또, 얏셀은 흑인이다. 다인종 가족이다.   동물원 사자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기력이 없어 내내 잠만 자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다며 실망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라아주머니는 사자 흉내를 멈추고 말을 이었다. “동물원 사자나 우리들이나 크게 다를 게 없어.” 양손을 펼치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게 뭐람. 사라아주머니가 설명하지 않았어도 아바나의 삶이 척박하다는 건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사라는 우리끼리 동물원에 다녀오라며 등을 밀었다. 에루이스와 에루이스의 딸 따띠아나, 루비세이다의 아들형제 오스마니와 까를로스와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원은 쎄로마을에서 멀지 않았다. 아바나 시민들이 자주 타는 까메요(Camello, 낙타모양 대중버스)를 타고 열정거장 거리. 현대적인 옴니부스(Omni Bus)보다 낡았지만, 가격이 반값인데다 낙타 등이랑 꼭 닮은 차체가 근사했다. 낙타를 타고 동물원에 가다니. 서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동물원은 아담했다. 배고픈 사자. 사라아주머니의 설명과 다르지 않았는데 상상한 것보다 더 야위었다. 배고픈 호랑이와 재규어도 있다. 이들도 마찬가지. 본디 동물원은 자체로 쓸쓸하다. 도시에 사는 동물. 허기에 지친 아바나동물원은 더욱 적막했다. 동물원 방문 기념으로 따띠아나에게 멜로꼬똔(Melocoton, 복숭아) 주스를 사줬다. 루비세이다 형제는 그들이 세상에서 사장 좋아한다는 m&m초콜릿을 얻었다. 아이들은 원숭이보다 신이 나서 떠들었다. 에루이스는 난간에 기대어 물뱀이 수면으로 떠오르길 기다렸다.   “에루이스. 지금 아바나 동물원에 필요한 건 뭘까?” “글쎄. 동물이겠지. 여기는 동물원이니까.”   싱겁기는. “내일 우리 말레꼰으로 낚시가기로 했잖아. 내가 오징어, 아주 큰 오징어를 잡아서 동물원에 기증할게. 괜찮은 생각이지?“   에루이스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물뱀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