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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이 나타나 역사하셔야 합니다.”
+ 본 문 : 요한복음 14장 20절 - 24절 (신약 p.173)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아멘!
+ 서로 인사들 나눠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 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부인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그렇다 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성경 찬송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며, 직분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계신가?’ 하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구체적으로 주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우리와도 함께 계시며,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축복하고 계시며,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성경과 기독교 2천년 역사속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시고, 여전히 축복하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계시며, 축복해 주시고,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축복하시며, 기도응답 주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히 11:6)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지 못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와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는 빛 되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들어 우리들의 영안을 어둡게 하고,
우리들을 죄라고 하는 어두움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맙니다.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 있으면,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두운 죄 가운데 살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롬 3:10 이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그 죄로 인하여 영적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찾아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지않고, 불신하게 된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가 없듯이, 빛 되신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셔야만,
영안이 밝아져 하나님을 알게 되고, 신령한 세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썩어 질 세상 것과 육신을 탐욕스럽게 만드는 욕심이 생기면 영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도 나의 욕심을 채울 대상으로 바라보며,
나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방해가 되면 언제라도 배신하게 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반드시 찾고, 믿어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무관심은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사랑은 관심이며, 내가 누군가의 형편과 처지, 감정과 건강 상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지 못하도록,
우리의 영안을 어둡게 하는, 죄와 욕심과 무관심이라는 아주 나쁜 것들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밝은 빛으로 몰아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안이 밝아져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타나 생명으로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깨달은 만큼 성숙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49:20)
세상적으로 볼 때, 가문 좋고, 학력 좋고, 지위가 좋아 존경받는 위치에 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속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없는 짐승이 죽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이 나야 사람이 됩니다.
즉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사람이 되고, 사람 구실해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람은 깨달음이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 구실을 합니다.
사람들 중에 하나님 없이, 제멋대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뒤늦게 가정이 깨졌다든지,
사업이 실패했다든지, 아니면 죽을 병에 걸려서야 비로서 깨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리고, 건강할 때 깨닫고 예수 잘 믿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이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야 깨닫고 후회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 망한 후에야 ‘내가 돈이 있을 때, 하나님께나 팍팍 드리고나 망할 걸’
하는 분들이 있는데, 돈이 있을 때 하나님께 팍팍 드린 사람은 이미 깨달은 사람이요,
그래서 더 큰 축복을 받지, 절대로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문제는 자기 존재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바르게 사는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에 망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깨달음은 고난을 통해서 온다.’ 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19편에 보면,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절) /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되니,
너무 너무 감사해서 고난당하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신앙고백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반드시 징계하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매를 때리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의 징계를 하십니다. 고난의 징계를 받을 때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고난의 징계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해서 받는 고난의 징계는 물론, 우리의 잘못이 없는데도,
받게 되는 고난의 징계일지라도, 고난의 징계는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고난의 징계를 통해 죄를 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고난의 징계를 통해 주님께 매어 달려 기도하므로 응답을 받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고난의 징계를 통해 다른 사람의 고난을 위로하는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는 고난의 징계는 우리로 큰 일꾼으로 만들어 줍니다.
옛날에는 놋그릇을 사용했는데, 진흙으로 만든 기왓장을 깨서 만든 가루를,
볏짚에 묻혀서 계속 문지르고 닦아서 광택을 낸 다음에 사용을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쓰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연단과 시련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호화로운 궁궐에서 쫒겨나 광야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연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 모두가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먼저 깨닫고,
선생님이 되어 먼저 깨달은 바를 가르치기도 하고, 지도자가 이끌어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깨닫지 못하면, 가르칠 수도 없고, 이끌어가는 일꾼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가르칠 수도 있고, 이끌어가는 일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알았고,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깨닫게,
해달라고, 얼마나 많이 간구했는지 모릅니다.(시 119:27, 34, 73, 125, 144, 16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를 귀 기울여 듣고,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갖는 기도시간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읽고, 들음으로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달은 것을 고백하고, 고백한 깨달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깨닫기만 하고,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아니하면 그 깨달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발견했어도, 그것을 옥토에 심는 결단과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좋은 씨앗은 한 알 그대로 있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을 결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좋은 씨를 옥토에 심는 것과 같고,
마침내 100배, 60배, 30배의 많은 축복의 결실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담고 있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이 언약의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를 위시한 모든 선지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언약의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언약이라는 축복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여, 내가 이렇게 살기 위해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이 그릇 위에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언약의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약의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며, 큰 그릇으로 여러분을 들어 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인 신명기 28장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고, 모든 복을 주신다.” 고 약속하셨습니다.(신 28:3-7 / 요 14:21,23)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바치기로 결심한 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축복의 문을 활짝 여시고, 쌓을 곳이 모자라도록 부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성결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그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승리의 기쁨과 넘치는 큰 은혜와 축복을 안겨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깊은 대로 가서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대로 가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는 순종이 있으면,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역사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칭찬하다.’ 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하나님을 많이 칭찬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지,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왕은 ‘자신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심이요, 자신이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드리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요, 나라가 부강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라.’ 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때, 하나님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났던 것을 봅니다.
늘 감사한 것은, 기도실에서 눈물로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제게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려운 때라고 생각하는 경제적 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와 같고, 모든 삶의 막막함은 홍해가 앞을 가로막는 것과 같은데,
염려 말고 모세처럼 손을 들고 기도하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저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기도응답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깨닫고, 주님께 합당한 삶의 태도를 결심하여,
결단을 내리고,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며, 이루어지는 모든 일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역사가 우리 모두의 삶속에,
나타나는 체험적인 삶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