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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리아 사랑넷 - 신앙생활
1)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년 나해 주님 세례 축일
<세례 받은 사람은 아침을 이런 기분으로 시작한다>
복음: 마르코 1,7-11
1946년 정월 초하루, 경북 금릉군 조마면에서 제사를 준비하던 김씨 문중 사람들은 종손 며느리의 출산 진통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제사도 늦추며 기다린 아이는 종갓집 첫 딸이 되었습니다.
“내 눈물을 채우자면 한강도 넘칠 거예요. 항상 ‘너는 안 돼’ 라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정월 초하루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누나를 지키려다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런 환경을 도저히 견딜 수 없던 그녀는 무작정 미국으로 떠나왔습니다.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조그만 동양 여자아이를 누가 좋아했겠어요? ‘내 이름은 김태연입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고 쓴 종이를 들고 100군데 넘는 집을 돌아다녔어요. 딱 세 군데에서 문을 열어 주더라고요. 끊임없이 두드린 결과,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주었어요.”
미국인과 결혼 후에는 시댁 식구들에게 “역시 미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은 별수 없다니까” 라며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두 번의 유산, 그리고 오래가지 못한 결혼생활... 이후 살아남기 위해 청소부, 웨이트리스, 주유소 직원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와중에 자궁암 진단을 받았고 커다란 교통사고까지 당해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태권도를 할 줄 알았는데 그 덕분으로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게 되었고 그 덕분으로 아이들을 아홉이나 입양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그녀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었습니다.
창업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청소 일을 할 때였습니다. 자주 보이는 곰팡이를 보며 ‘저 곰팡이를 모두 없앨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양아들 둘과 함께 이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설립한 ‘라이트하우스’는 반도체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미세 먼지 측정, 화학적 오염 등을 만들고 정화하는 시스템으로 미국 100대 우량 기업으로 동종 업계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그녀의 구호는 이것입니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못하겠습니까?)
그녀가 인터뷰한 곳 뒤에는 성모님의 사진이 있고 십자가 목걸이를 하는 것을 즐깁니다. 아마 천주교 신자일 것 같습니다. 동생의 죽음도 분명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 목숨보다 누나의 목숨을 지켜 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도 분명 한 몫 하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를 받은 이의 하루는 어떨까요? 김태연 회장은 152cm의 작은 키이지만, 한국이 낳은 여자 삼손으로 불리며 천재들이 몰려있는 1,000여 명에 이르는 자기 회사 직원들을 호령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일을 힘들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너무나 저를 반짝 반짝하게 해주고 제 가슴을 설레게 하고, 또 무슨 연애를 하는 것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또 신부가 된 것처럼 그냥 이렇게 마음이 막 들뜨기도 하는 거죠. ”
이것이 세례를 받은 이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물론 자녀로서의 일도 해야 하지만, 그러한 일을 할 능력도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신을 증명해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설레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운동선수들에게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들이 묻습니다.
“지금 긴장되지 않나요?”
그러면 선수들은 말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흥분됩니다.”
이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기분입니다. 그만큼 이길 자신이 있는 것이고 믿는 대로 됩니다.
한 직원은 김태연 회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알아요? 그녀는 세상을 볼 때 엄청난 장애물을 보지 않아요. 그녀는 허들을 보죠. 모든 사람이 넘을 수 있는 그런 허들을요.”
그녀도 맞받아칩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 당신 꿈을 다른 사람이 훔쳐 가게 두지 말아요. 그 꿈은 당신 거예요. 오직 당신 거죠.”
아기들은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할 때부터 이미 부모처럼 뛰어다닐 수 있음에 가슴 설렙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게 될 그 목표를 위해 오늘 할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이 세례 받은 이가 아침을 시작하는 마음입니다.
2)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주님,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렸으며 갈구해왔던 주님과의 은혜로운 만남을 체험합니다. 그런데 첫 만남의 순간 예수님의 파격적인 모습에 깜짝 놀라는 동시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아마도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의 만남의 순간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꿈꾸어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나? 그분을 만나면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그분께서 나를 보시고 과연 어떤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처신하실까? 혹시라도 선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질책하시지는 않을까?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나를 당신 품에 꼭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시면서 잘했다고 칭찬하실까?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만나자 마다 다른 죄인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으려고 무릎을 털썩 꿇습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던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면서, 강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종인 제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마땅한데,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무릎을 꿇고 묵묵히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기다리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마굿간 탄생부터 시작된 일관된 겸손의 덕을 계속 유지하셨습니다.
주인이시지만 종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하느님이시지만 한 인간 앞에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이토록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에 하늘 아버지께서도 깊은 감동을 받으신 나머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세례자 요한 역시 이러한 예수님의 한없는 겸손 앞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예수님의 모습에서 온몸으로 배웁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가시도록, 그분의 빛이 떠오르는 강렬한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도록 자리를 마련해드리는 것, 그리고 자신은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조용히 사라지는 석양처럼 조용히 물러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은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의 겸손한 모습, 우리의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 생활, 내 삶의 모습을 통해 회개의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까?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묵상
3)이병우 루카 신부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세례의 의미!'
오늘 복음(마르1,7-11)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성령께서 예수님 위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주님 세례의 의미!'
'주님의 세례'는 인성(사람)과 신성(하느님)을 두루 갖추신 예수님의 신원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의 모범이며,
이 모범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성(人性)'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로 선포되심으로써,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드러났습니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동방 박사들을 통해 주님의 탄생이 세상에 공현(公現)되었다면, '주님의 세례'는 세상 구원을 위한 그분의 활동인 공생활의 본격적인 시작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우리 세례의 의미!'
'세례(洗禮)'는 씻김의 행위입니다. 더러움(죄)을 씻어내고 깨끗해지는 행위, 새로남의 행위, 새로운 창조의 행위입니다.
이러한 세례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또한 나의 자비 기도를 통해서 계속 행해지고 있고, 또한 행해져야 합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기 위함이다."(이사42,6-7)
'주님세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세례, 나의 세례를 다시금 기억하고, 날마다 깨끗해지기 위해, 새로나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4)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노년기는 행복한 시기일까요? 아니면 불행한 시기일까요? 사실 노년기야말로 인간에 가장 행복한 시기여야 합니다. 많은 경험과 지혜의 축적으로 좋은 것을 극대화하고, 나쁜 것을 최소화하는 데 능숙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소한 일이 잘못되더라도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으며, 어떤 일이 중요한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알게 됩니다. 감정으로 더 현명해지고, 그 지혜는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이 노년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남들의 도움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늙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 곁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으로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늙음보다는 당연히 젊음이 좋다고 말합니다. 노년기의 장점이 그렇게 많은데도 말이지요.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시각을 줄여 나가고, 대신 긍정적으로 지금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관계가 소중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의 미래를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관계를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너무나 중요합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관계 개선을 그분과 하지 못한다면 더 큰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웃에게 한 행동 하나하나를 하느님께 한 것으로 하겠다는 하느님의 큰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웃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십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떤 것 같습니까?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 가장 좋은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 즉 자신을 가장 낮춘 상태, 어떤 이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태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께서 굳이 받을 필요도 없는 세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관계를 맺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직접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관계가 아닌 긍정의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좋은 동반자와 함께하면 먼 길도 가깝다(튀르기에 속담).
첫댓글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출처 : 매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