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애들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좀 웃기긴 하지만 곧 애들 얘기 할 것도 없어질 날이 오겠죠.
그때는 키우는 화분 얘기 뜨고 있는 망토 얘기나 하게 될런지.
해빈이는 캔버라로 가겠다는 결심이 단호해요. 외교 공부를 하려고 하지만 만약 성적이 모자라서 안되면 다른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과라도 진학해서 떠나려고 하네요.
지난번엔 저랑 태권도 같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제가 언제 국제관계학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냐고 하니까 자기가 11학년 때 베트남에 수학여행갔을 때라고 하더군요. 빨간 베트남 국기만 보다가 호주대사관엘 갔는데 파란 호주 국기가 그렇게 반가왔다고. 그리고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보니까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였대요.그 다음부터 국제 관계를 공부해서 이렇게 호주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네요. 그래도 자기 안에 비슷한 게 공무원 자질이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겠죠.
해빈이는 지금 HSC (호주의 수학능력 시험같은 거) 스터디 캠프에 6박 7일 동안 가 있습니다. 기독교 계통의 단체가 주최하는 건데
12학년 애들과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같이 있고 자기가 자기 방식대로 공부도 하고 상담이나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룹 모임도 있고 질의응답도 하고 그런 데래요. 저도 소개 받고 너 가볼래 했더니 선선히 가보겠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쯤 한국 음식도 먹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겠죠.
얼마 전에 중요한 시험이 끝나고 1박으로 아빠와 단 둘이 캔버라로 운전하면서 갔다 왔어요. 호주국립대학 구경하고 그랬다고 하네요. 자기가 시드니를 떠나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고 뚜렷이 생각하고 있더래요. 준하도 서진이도 그러니까 그게 별일은 아닌데 호주에서는 좀 별일이예요. 시드니에서는 한인 자녀들은 대개들 그냥 시드니에 있는 대학 가고 과외하고 돈벌고 놀고 그러거든요.
시험 끝나고 유럽을 가게 된 것도 좀 재미 있어요. 해빈이는 박물관 같은데를 가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은 아시아쪽 놀러가는 계획을 많이 잡더래요. 일본 가는 남자애들 그룹에 낄까했는데 박물관은 안 가냐는 해빈이 말에 무슨 박물관이냐는 식으로 쳐다보고 고려하지 않더래요. 그래서 일본은 안되겠다 싶었고. 이모랑 한번 가보기도 했고.
젤 가보고 싶은데는 역시 유럽인데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어떡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죠. 그래서 제가 너 그동안 저축한 게 얼마나 있냐고 했더니 $2000 (한국돈으로 170만원 정도) 이 있대요. 그 돈은 비행기 티켓 끊으면 끝날 돈이긴 하죠. 그렇지만 10학년 때부터 최저 시급에 못미치는 급여를 받으면서 동네 구몬학원에서 시간당 $13 받으면서 일한거 하나도 안 쓰고 다 모은 거예요. 이 구두쇠가.
저는 걔가 그 정도로 모았을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서 어차피 대학 갈 때 주려고 아이들 통장 만들어서 모아 놓은 돈 삼백만원을 이번에 그냥 줄테니 유럽에 갈래? 그랬더니 가겠다고 하더군요. 혼자 아니면 뜻이 맞는 한인 친구 둘이 간다고.
그래서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 들러 유럽 가고 돌아 올때 다시 한국에 머물게. 그 한인 친구도 그렇게 한다구요. 그 나이에는 유레일 패스 끊어서 밤 기차타고 자고 유스호스텔 백팩커에서 자고 문닫는 슈퍼마켓 가서 떨이로 샌드위치 사먹어도 괜찮을 때잖아요.진짜 유럽은 그렇게 가야지 나중에 호텔 돌면서 가려면 돈이 너무나 든단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2014년 이후로 한국에 못가본 미루 포함해서 전 가족이 출동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되도록 적어도 2년에 한번씩은 엄마 아빠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그러나 비행기표만 끊어놓고 체류비가 없어서 어떡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ㅋㅋㅋ 그동안 알바를 해야 되나..
미루는 바이올린 레슨을 그만 두었고 스트링 앙상블 다니던 것도 그만 나오겠다는 결심을 전달했습니다. 친한친구인 안나가 그 앙상블 지휘 목사님 딸이고 그 집에 놀러가고 바이올린 연습도 어쩔 수 없이 하곤 했는데 이젠 끝이예요.
사실 끝낼 생각은 그 전부터 했는데 그 스트링 앙상블이 안나와 미루 때문에 처음 생긴 거나 마찬가지고 해서 의리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어요. 가장 힘든 것은 자기가 자기 바이올린 소리를 듣기 싫다고 해요. 소리가 안좋대. 나는 모르겠는데.
바이올린은 자기가 음을 찾아서 만들어가며 연주해야 하는 거라 절대음감이 아닌 애들은 확실히 좀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취미로 살리려면 얘가 이 정도로만 싫어할 때 그만 두게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완전 질려서 악기도 팔아버리면 어떡하네 싶었네요.
9학년부터는 영어 수학 과학 등 필수 교과목을 제외하고 한 과목을 선택해 심화 과정을 할 수가 있는데 일본어를 하겠다고 해요. 1학기에 일본어를 만점 받았다고.
근데 저는 왜그런지 그렇게 기껍지가 않아요. 한자문화권에 살면서 똑같은 한자를 보고 미루가, 한국어 발음도 아니고 중국어 발음도 아니고 일본어 발음으로 제일 먼저 배울 거라고 생각하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미루 한국어와 한자 실력이 해빈이만큼만 되어도 반가워 하면서 일본어 하라고 밀어 주었을 텐데.
그래서 일단 집에 있는 기초 한자책을 같이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중국어는 왜 학교에 없는 걸까요. 훨씬 쓸모가 많을텐데. 일본애들이 로비를 많이 해놔서 호주 하이스쿨은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가 일본어예요. 쯧쯧. 불어도 있지만 아시아 애들은 일본어가 배우기 쉬우니까 많이 선택하는 듯. 선택과목이 프랑스어, 라틴어, 일본어밖에 없으니..
영일씨는 이번주 일요일에 한국에 가서 2주일 있을 예정입니다. 일산에 조그맣고 낡은 아파트가 한 채 있는데 손봐서 팔든지 부모님이 그리로 이사를 가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래요. 가서 수리 좀 조직한다고.
2016년에 갔으니 3년만에 가는 건가 그렇네요. 12월에는 마일리지로 또 가구요. 그때는 신림동 가족은 난생 처음 전부 한국에 모이는 거라 가족 사진이라도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첫댓글 캔버라의 해빈이
콘서트에서 한국민요를 연주하는 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