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여래란?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金剛經』 威儀寂靜分
「여래는 오기도 하고」는 성도하러 오는 것, 「가기도 하며」는 입멸하여 떠나는 것, 「앉기도 하고」는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설법하는 때, 「눕기도 한다」는 멸상을 말하는 것이다. 화신은 去來坐臥가 있지만 법신은 없다. 때문에 ‘여래는 오는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어 여래라 이름한다.’
비유하면 하늘의 달 모습이 물에 비치는 것과 같다. 물이 맑고 고요하면 달이 나타나지만, 물이 흐리면 달 모습이 숨어버린다. 달의 본체는 본래 오고 가는 것이 없지만 물을 말미암아 생멸이 있다. 마찬가지로 법신의 본체는 湛寂하지만 마음을 말미암아 가고 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법신은 본래 오고 가는 것이 없다」 중생이 부처님을 향하기 때문에 오는 모습을 방편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는 바가 없이 오는 것이다.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 소경제겁수(所經諸劫數) 무량백천만無量百千萬) 억재아승지(億載阿僧祗)」 『법화경』 「여래수량품」
내가 부처가 된 이후로 지내온 많은 세월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로다.
여래가 석가족의 궁전을 나와서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얻었다고 하지만. 사실 여래가 성불한 지는 진점겁(塵點劫)보다도 오래된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겁에 성불했다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성불이다, 부처 되는 것이라고 한다.
깨쳤다는 것은 본래부처(本來是佛)라는 것을 깨쳤다는 말이지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된 것이 아니다. 그전에는 자기가 늘 중생인 줄로 알았는데 깨치고 보니 억천만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로 성불해 있더라는 것이다.
실로 일체중생은 완벽한 존재이다. 일체중생이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같은 것이다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화엄경』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바로 깨쳐서 본래 자기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다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다.
본래 부처인 줄 확실히 알면 그만이지 누구를 제도하고 구원하겠는가.
이대로 제도 되어있고 이대로 구원되어 있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이 이미 제도 되어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바꾸어 극락정토를 만들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이미 그대로가 정토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오신 것이다. (娑婆卽 寂光土)
於如來寺 聽音山房 慧麟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