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히였습니다.(27)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29)
'예언자들의 말씀'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는 '로고스'(logos)가 아니라 '목소리'를
뜻하는 '포네'(phone)의 복수형 '포나스'(phonas)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 대해 예언한 구약의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외우는 그 입을 통해서 현장감있게 생생하게 들려온다는 뉘앙스를 전달해 준다.
즉 사도 바오로가 '로고스'를 쓰지 않고 '포네'를 쓴 것은 유대인들이 구약의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현재 듣고 있는 것처럼 암송하면서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안식일마다 봉독되는'에서 '봉독되는'으로 번역된 '아나기노스코메나스'
(anaginoskomenas)는 '암기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큰소리로 읽다', '낭독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나기노스코'(anaginosko; 루카4,16; 사도8,28)의
현재 수동태 분사형이다.
따라서 계속과 반복의 의미를 살려서 '읽혀지고 있는'이라고 번역하는게 좋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글을 큰소리로 낭독했다.
'이루어지게 했습니다'로 번역된 '에플레로산'(eplerosan)는 '플레로오'(pleroo)의
부정(不定; indefinite) 과거 3인칭 복수형이므로, '그들은 이루었다'
(they have fulfilled)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의미상의 목적어는 예언자들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그리스도에 관해 기록된 예언자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알지 못하며, 그들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를 단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오히려 그 예언자들의 말씀을 성취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찌기 예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받게 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이사53,5.12).
유대인들이 생명의 주님을 죽인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다. 사도 베드로도
사도행전 3장 17절에서 그렇게 말하였고, 사도 바오로도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거에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학대자였던 것을 그가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1티모1,13).
이처럼 무지는 진리를 죽이고, 진리에 대하여 훼방하고 대항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이 무지가 죄은 죄에 대한 면죄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다 이행한 뒤'에서 '성경에 기록된'으로
번역된 '게그람메나'(gegrammena)는 '기록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그라포'
(grapho)의 완료 분사형으로서 '기록된'(was written)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한 죽음에 대한 예언을
말한다(시편22편; 이사53,3~12).
무죄한 예수님을 죽인 일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는 수단이 되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예언의 말씀이 인간의 자발적인 사악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성취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자기들의 사악한 의지와 자발적인 동기로 행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나무'에 해당하는 '크쉴루'(ksilu)는 뿌리와 잎이 있는 살아있는 수목이 아니라 잘려서
가공된 목재를 뜻한다.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께서 달린 것을 십자가라고 하지 않고 나무라고 한 것은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라는 신명기 21장 23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었기 떄문일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나무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음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갈라3,13; 사도5,30; 10,39참조).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33)
사도 바오로는 시편 2장 7절의 말씀을 메시아의 부활에 관한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시편 저자가 시편 2장 7절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육화(강생)를 염두에 두고 기록했다고
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 사도 바오로가 인용할 때는 문맥으로 보면,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심으로써 원수 사탄에 대하여 완전히 승리하고, 인류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으며, 그의 부활은 그의
두번째 탄생이었던 것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에 해당하는 '에고 세메론 게겐네카 세'(ego semeron
gegenneka se)에서 '낳았다'에 해당하는 '게겐네카'(gegenneka)란 동사에 이미
인칭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1인칭 단수 대명사 '에고'(ego; 내가)가 없어도
된다. 그럼에도 '에고'가 쓰인 것은, 낳으신 주체 '하느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오늘'로 번역된 '세메론'(semeron)이라는 단어는 희랍어 구약 번역본인
70인역(LXX)에는 '오늘날'로 번역되어 있지만, 본문의 단어와 동일하다.
여기에서 '오늘'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켜 부활하게 하신
때를 의미한다.
이것을 굳이 '오늘'로 표현한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느님께
있어서는 모든 시간이 '오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