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x.com/pal9999/status/2110005677376799094?s=20
프랑스만 너무 주목받고 있지만 영국도 상황이 심각하니 유럽이 왜 이런 상태가 됐는지, 그 역사적 경과를 정리해볼게
영국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쉬워
시작은 대체로 나폴레옹 전쟁 후 1821년 무렵부터야
이 시기 대영제국은 전쟁으로 GDP 대비 260% 라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고 있었어.
하지만 대영제국은 이걸 재정 흑자로 다 갚았어
GDP 대비 3~5%의 90년간 재정 흑자.
이걸 뒷받침한 게 아동 노동(주 48~60시간)·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거의 제로·대영제국의 식민지로부터의 공납금이었어
이 엄청난 부채를 재정 흑자 한 방에 다 갚아버린 게 대영제국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부여했어.
영국 신사들은 뭐든 계약서 없이 물건을 맡아갈 수 있을 정도였고 2.5% 정도의 대출금리로 얼마든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어.
대영제국과 영국 신사들의 빚은 무조건 갚는다 는 신뢰는 이 시기에 생겼어.
공장에서 일하던 건 아이들이었지만
제2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치뤄진 후야.
1차 대전 후 GDP 대비 130%의 부채를 안은 대영제국은 1821년형 재연을 노려, 금본위제 복귀를 위한 디플레이션 정책 + 거액 재정 흑자(GDP 대비 5-7%가 지속, 세계사급 긴축)를 실행했어
결과는 실패. 부채 비율은 오히려 180%로 상승. 거리엔 실업자들이 넘쳐났지.
이유는 디플레이션으로 명목 성장이 죽어버렸기 때문이야.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은 빚을 눈덩이처럼 불려버렸을 뿐이었어. 이게 바로 소위 디플레이션의 함정이야.
이 X같은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일어난 게 영국 노동당으로, 1924년엔 최초의 노동당 정권이 탄생하게 돼.
노동자들은 더 이상 조용히 착취당할 기분이 아니었어.
제3기는 1948년~1973년 전후야. 즉 두 번의 양차 대전 후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영제국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어.
GDP 대비 240%의 부채. 그리고 전쟁 중 제국은 인도에 대해 연간 GDP의 약 13%를 빚진 채무국으로 전락했지
여기서 제국은 금기의 손을 써.
즉 빚을 떼어먹는 거야. 제1차 세계대전 후 부채 처리로 디플레이션에 빠진 제국은 다른 방법을 시도한 거지
먼저 파운드화 평가절하로 인도의 부채를 태워버리고, 국내 부채는 인플레이션과 성장으로 지워버렸어
1946→1975년 기간에 부채 비율은 240%→50%로 줄이는데 성공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어.
전에 그리스 얘기할 때 했지만 채권을 태우는 쪽에 시장은 영속 프리미엄을 부여한다는 함정.
1949년 파운드화 평가절하로 영국의 시장금리는 30.5%까지 급등.
여기서부터 영속 프리미엄의 함정에 영국은 빠져들게 돼.
이후 파운드는 상시적인 매도 압력 아래 놓였고, 1955, 61, 64, 67의 연속 위기, 통화 방어를 위한 고금리를 강요받았어.
이 시기 명목 길트 추가 금리의 누적액이 약 100억 파운드 규모. 인도의 빚을 떼어먹은 만큼을 훨씬 초과하는 액수가 이미 여기서 부과됐지.
이 시기 영국은 재정 흑자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1967년엔 경상 적자가 재발해 다시 평가절하로 내몰리게 된다.
당연히 영속 프리미엄도 폭등. 재정 흑자를 유지했는데 평가절하?라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영국은 전후에 경상 적자를 자주 기록하게 됐어.
영국은 원래 무역 적자국이었고, 이 자체는 기축통화에 필요하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경상 수지는 흑자였어.
기축통화 특권으로 싸게 빌려서, 그걸 투자에 돌려 채권 회수(안 갚는 놈에겐 해군 보내서 뜯어냄).
이게 대영제국의 기본 사이클이야.
이것도 1967년 수에즈 모멘트로 끝이나버려 더 이상 너한테 채권 회수할 힘도 없고, 싸게 빌릴 힘도 없어. 사실상 사형선고가 여기서 내려진 거야
종착지가 1974-76년으로, 물가 상승률 25% 아래에서 매수자 파업이 발생.
영국은 마침내 IMF라는 채권자 감옥에 처박히게 돼. 대영제국 사이클의 종료 순간이 바로 여기였지
참고로 현재 IMF에 처박힌 G7 국가는 영국뿐이고 IMF 송환은 '자국 통화 표시 국채조차 소화 못 하는 선진국'이라는 범죄 자백과 다름없었어.
이후 영속 프리미엄은 풀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붙어 있어. 인플레이션 연동 채권 같은 족쇄까지 채워지게 돼.
여기서 추가 정리.
디플레이션의 함정과 영속 프리미엄은 사실 같은 하나의 함정의 양면이고, 정체는 '과거에 발행한 종이의 총량이 미래의 실체가 갚을 수 있는 양을 초과한다'는 단순한 초과분이야.
그 초과분은 반드시 누군가가 흡수해.
디플레이션을 선택하면 지금의 노동자와 채무자가, 영속 프리미엄(채권 소각)을 선택하면 채권자와 미래의 납세자가, 재정 흑자를 선택하면 지금의 지출 수혜자와 현재 납세자가.
사실 정책 선택이란 지우느냐 지우지 않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언제·어떤 항목으로 청구할지를 선택하는 것뿐이야.
1815-40, 청구서의 수신인에게는 거부력이 없었어. 공장의 아이들, 선거권이 없는 노동자들, 식민지의 인도인.
1918,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졌을 때의 수신인은 노동자의 실업과 채무자의 파산.
1949-76, 영국은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으로 부채를 지웠지만, 빚을 떼어먹힌 인도는 자본 부족에 빠져, 그 후 식량 위기, 기근으로 대량의 사망자를 냈어.
그리고 영속 프리미엄. 영국을 괴롭히는 복리의 함정은 지금도 멈추지 않아. 수신인은 미래 세대로 향해.
즉 초과분 처리에 '영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 건 청구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계층뿐이었어.
그리고 그 재고가 바닥난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현재의 영국과 프랑스가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 중인거지
첫댓글 "하지만 대영제국은 이걸 재정 흑자로 다 갚았어
GDP 대비 3~5%의 90년간 재정 흑자.
이걸 뒷받침한 게 아동 노동(주 48~60시간)·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거의 제로·대영제국의 식민지로부터의 공납금이었어"
위의 3줄만 보고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참 교묘하다. 교묘해.
1. "재정 흑자로 다 갚았다"는 사실이 아니야. 1815년 약 8.4억 파운드였던 부채는 1914년에도 약 6.5억 파운드였어. 흑자는 주로 이자로 나갔고, 부채 비율이 25%로 떨어진 건 부채가 그대로 인 사이 경제가 커졌기 때문이야. 3~5%는 이자를 뺀 기초재정수지 기준이고, 그것도 1830~40년대만 5% 안팎, 1900년대엔 1.3%야. 실제 예산은 거의 균형.
2. 아동 노동은 국고에 돈이 들어오는 경로가 아니야.
3. 인도의 Home Charges는 인도 세입에서 나간 돈이라 영국 재정 흑자의 재원이 될 수 없어. 실제 재원은 관세·소비세였어. 1850년대 초 세입의 70% 이상이었고, 소득세는 1913년에도 약 24%였어.
결론 : 영국 재정 흑자의 원인은 로동자들의 부담과 식민지 착취때문이 아니였다.
초창기 산업혁명때의 노동인권 찐빠 및 노숙은 기본적으로 대영제국의 지도층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니깐 그런거고 애초에 산업혁명당시 영국 지도층은 그리스-로마 및 스페인제국을 비롯한 제국들의 통치경험에서 영감을 얻어내었고 산업혁명이후 바뀐 자신들의 제국조차도 낯선 존재에 불과할 뿐이죠. 나폴레옹전쟁당시의 상이군인들과 가족들 보호할라고 왕실궁전까지 개조해서 그대로 상이군인들에게 준 나라인대요. 현대의 무책임한 지도층들과 달리 그들은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데 전념한 이들인데 왜 동일시하는지 의문 그것도 시간 지나면서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에 의해서 개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