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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
16세의 나이로 프로무대에 뛰어들다. U-16 대표팀을 통해 본격적인 활약을 펼쳤던 2004년. 이청용에게는 또 다른 의미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도봉중을 중퇴하고 곧바로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던 것. 지금은 선수 본인을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교육(고등학교)은 마쳐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룸에 따라 주춤하고 있지만, 그 무렵에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프로무대로 뛰어드는 선수들이 제법 많았다. “학교를 포기하고 가는 거잖아요. 고민이 많았죠. 그래도 어차피 축구선수는 마지막에 프로에 가야하니까 하루 빨리 가서 형들하고 부딪쳐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에 가는 것보다 좋은 시설에서 좋은 선수들과 운동해서 빨리 프로에 적응하고 싶었죠.” 프로 클럽의 좋은 시설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것은 이청용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성장하는데 있어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뛰어든 프로무대는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정글이었고, 아직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던 이청용에게는 큰 벽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것. “계속 2군에만 있으니까...그리고 저와 똑같은 길을 걸어온 형들 중에 좌절하는 것도 지켜보게 되니까 두려움도 생기더라고요. 그 형들에게서 제 미래를 볼 수 있는 거니까요. 1-2살 위의 형들이 1군에 올라가지 못하고 2군에 계속 있는 걸 보면서 ‘언젠가 1군에서 게임을 뛰겠지’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많았어요.” “더군다나 매년 새로운 선수들이 영입되잖아요. 그걸 보면서 우리 자리는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 때는 그런 고민을 선배나 코치님에게 말도 못하고 친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같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입단한 (배)해민이나 (고)요한이, 우리보다 1년 먼저 중퇴하고 입단한 (고)명진이 형, (송)진형이 형 등과 많이 이야기했죠. 축구 뿐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 같아요.” 함께 중학교 중퇴를 경험한 팀 동료들 외에 룸메이트인 정조국 역시 이청용이 냉혹한 프로세계를 견뎌나가는데 큰 힘이 됐다. 이청용이 입단한 이래 지금까지 룸메이트로 같이 생활하고 있는 정조국은 한 발 먼저 프로를 경험하고 좌절도 맛봤기에 어린 후배에게 여러 가지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 “계속 조국이 형이랑 룸메이트였는데, 정말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축구화도 많이 얻었고..(웃음) 조국이 형도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조언도 많이 해줬죠. 또 제가 후보명단에는 오르면서도 경기에 못나갔던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도 제 마음이 상할까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배려해줬죠. 너무 고마운 형이에요.” |
일본 SBS컵에서 이청용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
포지션 변경을 꾀하다. U-16 대표팀 시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친 이청용이지만, 프로 무대에 들어선 이후 윙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꾀하게 됐다. 공격수 포지션이 과포화 상태였던 서울이었기에 재능이 많은 이청용을 오른쪽 윙백으로 돌린 것. “예전에 네덜란드에 전지훈련을 갔는데, 그 때 측면 볼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김귀화 코치님께서 저보고 윙백을 한번 보라고 그러셨는데, 괜찮게 보셨나 봐요.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는 스트라이커로 올려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속 윙백을 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공격수가 주목받는 자리이고, 윙백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니까 아쉬운 마음이 있었죠. 아마 제 생각으로는 신체조건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고, 수비수와 많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조금 약하다는 판단을 내리신 것 같아요. 그런 점을 좀 더 보완했더라면 공격수를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은 갖고 있어요.” 서울에서 윙백으로 보직을 변경한 이청용은 U-19 대표팀에 합류해서는 더욱 다양하게 포지션을 바꿨다. 아직 선수들을 점검하는 시기였기에 조동현 감독은 이청용을 중앙 미드필더와 윙백, 심지어 3백 수비라인의 중앙으로도 기용했던 것. 축구센스가 남다른 이청용은 처음 맡아보는 포지션까지도 큰 어려움 없이 소화해내며, 조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를 만족시켰다. “스위퍼 같은 경우는 정말 처음 보는 자리였어요. 개인적으로는 저와는 잘 맞지 않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수비는 일단 신중하고 침착해야 하는데, 저는 공격적인 성향이 많거든요. 플레이 스타일상 공격적이고 모험을 하는 편이기 때문에 맞지 않았죠.” “중앙 미드필더는 잘 맞았어요. 3백의 윙백은 일단 체력이 많이 필요한데 비해 중앙 미드필더는 윙백보다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조금 적은 편이거든요. 거기에다가 중앙에서 연결해주고, 직접 침투하고..이런 플레이들이 재미있어요. 대표팀에서는 이제 중앙 미드필더로 계속 뛰게 될 것 같아 기분 좋아요.(웃음)” |
U-19 대표팀 모습. 위쪽 오른쪽에서 2번째가 이청용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
드디어 프로 1군 무대에 데뷔 2004년과 2005년, 두 시즌 동안 2군 리그에서만 뛰어야 했던 이청용은 2006 시즌에 들어와 드디어 1군 무대에 데뷔하게 됐다. 그것도 3월 12일 열렸던 수원과의 K리그 개막전이 데뷔 무대였다. 비중이 엄청났던 경기에서의 깜짝 출장이었다.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사이프러스에서 전지훈련을 했었는데, 그 때 게임도 잘 뛰고 몸도 좋았어요. 전지훈련 끝날 무렵에 감독님께서 불러서 수원 개막전에서 뛸 수도 있으니까 준비 잘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 듣고 잠도 못 잤어요.(웃음) 긴장도 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그랬죠.(웃음)” “제가 몸이 좋아서 깜짝 기용을 하신 건데, 팀으로서는 큰 모험이었어요. 감독님도 수원전인데다가 개막전이라 준비도 많이 하시고, 긴장도 하시는 모습이었고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어요. 게임 자체는 연습게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관중이 많으니까 긴장이 되더라고요.” “사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올지는 몰랐어요. 워낙 좋은 형들이 많아서 저는 내년쯤이나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죠.” 그러나 기쁨도 잠시. 초반 2경기를 선발 출장한 뒤 이청용은 오랜 기간 1군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훈련 도중 발등 부상을 당해 2개월 정도 쉬었고, 그로 인해 몸 상태도 상당히 좋지 않았었던 것. 경기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선수층이 두터운 서울에서 출장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후 이청용은 7월 22일과 29일 열렸던 삼성 하우젠컵 2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꾸준히 뛰는 것이 아니라 드물게 경기를 나가게 되니까 감각이 잘 살아나지 않았어요. 꾸준히 1군 무대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지만 우리 팀이 워낙 선수층이 두텁잖아요. 1경기 못하면 다른 선수로 교체될 수 있고, 다른 선수가 1경기 못하면 내가 들어갈 수도 있는 거라 항상 긴장하고 준비해야 하죠.” U-19 대표팀 미드필드의 중심으로 소속팀 서울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 구성된 U-19 대표팀에서 이청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U-19 대표팀의 코칭스태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차출 문제로 인해 2005년 말과 2006년 초에 있었던 U-20 아시아선수권 예선과 카타르 8개국 초청대회 등에는 참가하지 못했던 이청용은 올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대표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청용은 대표팀 합류 초기에는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 윙백, 심지어 스위퍼까지 보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놀랍게도 모든 포지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결국 현 대표팀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해 이청용은 중앙 미드필더로 최종 낙점 받았다. “대부분 프로에 있는 형들이라 개인기량들이 대단해요. 소속팀에서는 나이차가 많은 형들이 많아서 부담스럽기도 한데, 여기는 비슷한 연령대 선수들이기 때문에 같이 운동장에 서면 편하고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요. 형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대표팀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데, 개인적으로 편해요. 일단 항상 쉽게 볼을 차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에게도 그런 주문을 많이 받는데, 쉽게 차고, 미리 주위를 파악해서 연결해나가는, 그런 플레이를 하려고 애쓰고 있죠.” |
부산컵에서의 이청용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
부산컵 통해 U-19 대표팀에 융화되다. 6월 합숙훈련과 8월 일본 SBS컵 참가로 U-19 대표팀 동료들과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이청용은 9월 초 있었던 부산컵을 통해 팀에 완전히 융화되었다. 특히 세계적인 강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이청용에게 값진 경험이 되었고, 오른쪽에서 주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신광훈(포항)과의 콤비네이션도 위력적이었다. 또한 순간적으로 상대의 빈 공간을 향해 침투해 들어가는 이청용의 돌파 역시 빛을 발했고, 이것은 팀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정말 수준이 높은 팀이었어요. 평소에도 그런 세계적인 팀과 한번 해봤으면 싶었는데, 이뤄졌죠. 주전이 꽤 빠졌다고 들었는데도 대단한 팀이었어요. 수비에서의 압박이나 조직적인 플레이는 우리가 조금 나은 것 같았지만, 개개인의 기술적인 능력은 역시 아르헨티나가 좋더라고요. 좋은 경험이었죠.” “대표팀에서는 광훈이 형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중앙 미드필더이긴 하지만 주로 오른쪽에서 많이 활동하는데, 광훈이 형이 오른쪽 윙백이거든요. 제가 공을 잡았을 때 광훈이 형의 움직임이 굉장히 좋아서 제 패스하고 잘 맞아요. 좋은 위치로 움직여주니까요. 또 광훈이 형이 오버래핑 올라가면 제가 밑에서 커버하기도 하고요. 경기장에서 잘 맞다 보니까 밖에서도 친해졌어요.(웃음)” “역습 상황 등에서는 상대 수비가 별로 없잖아요. 그럴 때는 과감하게 침투하면 좋은 찬스를 만들 수 있어요. 2선에서 침투하는 것이 상대 입장에서는 더 위협적이거든요. 제가 원래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보니까 상황을 보고 직접 침투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세계를 향해 이제 이청용에게 닥친 1차 과제는 10월 29일부터 인도에서 벌어지는 U-19 아시아선수권이다. A조에 속한 한국은 개최국 인도, 요르단, 키르키즈스탄과 예선을 치르게 됐다. 그리고 8강에서는 B조에 속한 중국이나 호주, 또는 UAE, 태국 중 한 팀과 맞붙게 된다. 예선통과는 무난하겠지만, 8강이 고비다. 2007년 캐나다 U-20 세계선수권에 나가기 위해서는 4강안에 들어야 하기 때문. “쉽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우리 팀 선수들의 기량이 정말 좋아요. 저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뒤에서 받쳐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고 싶어요. 일단 4강안에 들어서 세계대회에 나가야죠.”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은 젊은 선수들의 공통된 꿈. 이청용 역시도 반드시 세계대회에 진출,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 통하는지를 시험하고, 또한 그 무대를 통해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2004년, U-16 대표팀 시절 아시아선수권 8강에서 실족하며 고대하던 세계무대 출전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열망은 더욱 크다. “지난번과 같은 실수는 하기 싫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세계로 나갈 거예요. 세계대회 나가서는 8강을 목표로 할 거고요. 그래야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폴 스콜스나 김두현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반 니스텔루이였지만, 지금은 미드필더니까요.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미드필드에서 중추 역할을 해주는 선수들이잖아요. 중거리슛도 좋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청용 본인이 좀 더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감탄하고 있는 축구센스를 갖고 있지만, 축구는 그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의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피지컬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강인함을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물론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부족한 점의 보완이다. “몸싸움이라든지, 투쟁심에서 조금 처지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런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제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점이 보이지 않게 말이죠. 물론 약점은 보완하기 위해 따로 노력해야죠.” “조국이 형이 항상 제게 말하는 게 있어요. 큰 선수가 되려면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요. 제가 조금 내성적이라 낯도 가리고 플레이에서도 그런 면이 보이거든요. 저도 그런 점을 공감해요. 성격이 쉽게 바뀌지는 않지만,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또 한 가지는 소속팀에서도 될 수 있는 한 많은 경기를 뛰도록 해야죠. 아직 주전은 힘들다고 해도 게임마다 리저브라도 따라다니면서 출장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대표팀과 소속팀 모두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더 노력해야죠.(웃음)” |
출처 : K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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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독 휴게실'에서 옮겨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