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마음의 원점
4. 세포, 물질에도 생명의 활동이
대 자연계(大自然界)를 지배하고 있는 대의식(大意識)은,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라고 하는 신불(神佛),
그 자체의 마음이며,
대우주체(大宇宙體)는, 그 마음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자연계는, 그대로 신불(神佛)의 몸(體)이며,
마음도, 아무것도 아닌 단지 물질이라고 보아온,
우리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불(佛)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부처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신(神)의 마음과 표리일체(表裏一體)가 된 마음의 소유자를 일컬어,
'부처'라고 한다.
별명으로 빛의 대지도령(大指導靈)이라고도 말하며
신으로부터 일체의 권한(權限)을 위임받은 책임자라고 하겠다.
지난날의 석가(釋迦)는 부처가 되었다.
그래서 대우주를 관통하는 신의 의사(意思:意志)를 중생(衆生)에게 설법하였다.
부처가 왜 신과 동체(同體)인가 하면,
신의 의식인 대우주체로, 그 마음이 확대되어,
거기서 위대한 신의 영위(營爲)를 발견하고,
인간의 마음도, 그 영위를 알고, 대행하여 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또한 그러했다.
예수도 신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설교했다.
이 지구와, 지구를 둘러싼 저 세상,
실재계(實在界)(주;비물질의 세계, 영혼의 세계)의 인류는,
이와 같은 부처의 지도하(指導下)에서, 나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지구를 지도하고 있는 대지도령은,
아가샤계(界)의 그룹으로서, 신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있다.
이 짜임새에 대해서는 뒤에서 기술하겠으나,
아무튼, 정도(正道)를 깨닫고,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경지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또 한사람의 자기’는,
자꾸 커져서, 대불(大佛)처럼 변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더욱 조화됨에 따라서,
마치 비행기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크게 부풀어 간다.
나중에는 지구가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것과 같이 되며,
그 위에 더욱 의식이 조화되면, 대우주 전체에까지 확대되어,
“우주는 곧 자기”
라고 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결국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자는 자기이고,
태양도, 지구도, 화성도, 금성도,
자기 마음의 한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경지에 이른다.
(후광의 모양.-그림참조)
이 경지에 도달하게 되려면은, 오랜 전 생 윤 회 (轉生輪廻).
바꿔 말하면, 인간의 혼은,
이 세상(現象界)과 저 세상(實在界)을 순환하면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며,
그 과정에서, 쌓아올린 조화된 마음이,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대우주에서 본 지구는, 먼지나 티끌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작은 세포같은 지구일지라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
석가가 크게 깨달아 우주크기 (宇宙大)로 된 뒤,
다시 작은 오체(五體)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도,
자기의 의식은 변하지 않은 것과 같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의식은 존재하고 있으며,
신의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태양계(太陽系)는,
대우주의 눈으로 보면, 현미경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극미(極微)한 일점(一點)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속하는 은하계에는,
약 천억 개의 항성( 恒星)과, 그것에 딸린 혹성(惑星)이 존재한다.
지구는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은하계를 하나의 섬 우주로 보면,
그러한 별들을 끌고 있는 섬 우주, 성운군(星雲群)은, 또한 약 천 억 개에 이른다.
이 엄청난 별들이 소위 대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대우주에서 본 지구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 세포체(細胞體)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체의 세포는 약 60 조(兆)이며, 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원자(原子)의 구조와 같다.
그런데 인간은, 인체인 세포와,
그것을 움직이고 있는 에너지, 의식,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꼭, 대우주의 구성과, 마찬가지의 틀로 짜여 져 있다.
다만 대우주가,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데에 비해서
인간은, 그 대우주를, 지상을,
보다 좋게 조화시키기 위해서 신불(神佛)과 마찬가지로,
그 의사(意思)와 자유(自由)가 부여되어, 사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불(神佛)의 마음으로 지상에서의 생활을 보낸다면,
지상의 조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의사(意思)와 창조(創造)와 자유(自由)의 전개는, 무한하게 확대되어
인간으로서의 기쁨,
불교에서 말하는 법열(法悅)의 경지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지구에 낮과 밤이 있는 것과 같이, 암흑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어서
재해(災害), 조사(早死), 천변지이(天變地異) 따위의
사람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재앙(災殃)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이 있는 곳의 모든 환경은,
인간의 의사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악(惡)의 의사(意思)가 작용하면 악(惡)의 결과가,
선(善)의 의사(意思)가 작용하면 선(善)의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대우주는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지상의 인간계도, 그 테두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의사와 자유성은, 그 대우주의 법을 잘 운용하여
보다 나은 조화를 구현해 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화를 벗어난 악(惡)의 의사(意思)와 행위가 있으면,
자기 자신의 육체의 부조화를 가져오고,
그 부조화가 집단적(集團的)으로 되면,
인간이 사는 환경은, 인간의 의사(意思)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물질세계에도 부조화를 가져와, 재해(災害)를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상념은, 사물을 낳고,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신이 하늘과 땅을, 그 의사(意思)와 위대한 능력으로 창조한 것과 같이,
신의 자식인 인간에게도, 그 의사와 창조와 자유성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은,
대자연의 법칙인 전생윤회(轉生輪廻)라고 하는 순환의 법을,
올바르게 살려 가는 것에 의해서만이,
“기쁨과 자유”
라고 하는 마음의 해방이 있는 것이다.
상념에도 순환의 법이 엄연히 존재하여,
악(惡)에는 악(惡),
선(善)에는 선(善)이 돌아온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대우주에서 본 지구는,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세포 자체도, 소우주를 형성하여, 생명과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1 그램의 물질을 에너지로 바꾸면,
1 마력(馬力:746 와트)의 모타를, 약 3,800년 동안 회전 시킬 수 있다.
태양을 부수어 지구를 만든다고 하면, 33만 3천개가 나온다.
이와 같이, 세포, 물질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으며,
우리네 인간은,
그러한 에너지라는, 생명의 큰 바다 가운데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인간 자체도,
그러한 에너지에 의해서 살려지고 있음을
인식해 주기 바란다.
마음의 원점.-다카하시 신지-
(주;
선(善)의 의사(意思)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동차 운전을 예로 들어서,
길 위에서의 안전 주행의 원칙을
선(善)의 의사로 생각합니다.
(바로 자연의 운행의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운행하다가 설 때는 무리없이 서고,
가야할 때는 부드럽게 가고,
곡선 길에서 속도를 줄여야 할 때는 ,,
무리없이 속도를 줄여서,
부드럽게 돌아 (부딪치는 것 없이...)가겠지요.
하지만,
악(惡)의 의사는,
급하게 운행하여.
설 때는 급브레이크.
곡선 길에서는,
길 옆에 부딪치고,
차도 만신창이,
길도 만신창이,
수행은, 안전운행의 %를 높이는 공부.
인연있는 이여,
선(善)의 의사를 1% 씩 올리도록 합시다.
저는 창피한 말이지만,
한 밤의 반성 참선을 하기 싫을 정도로,
올리기가 힘들답니다.
이렇게 다카하시 신지님의 글을 올리는 것도 주제넘은 짓이지요.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리소서.
^_^
첫댓글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