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가 녹아있게 마련입니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누구나 한 나라 한 사회속에 한 구성원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든 없든 모든 분야의 영향을 받고 삽니다. 그러므로 나는 전혀 상관없다 하더라도 나라의 정치 형태에 묶여 있고 그 경제 스타일에 그대로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혹시 나라가 전쟁의 상황으로 들어가면 좋든 싫든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가든지 피난을 가든지 해야 합니다. 개인의 기호와 상관없습니다.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도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많은 피난민들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각자가 좋아서 하는 일이겠습니까?
비록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그 모든 분야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때문에 적응을 해야 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먼저는 살아남아야 하고 자기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합니다. 때로는 삶의 터전을 떠나고 바꾸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요. 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목숨을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나중에라도 돌아올 꿈을 가지고 당장은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과 변화들이 개인의 삶과 인생을 꾸려가는데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 속에서 자기 가치관도 만들어지고 의식도 새롭게 형성되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는 적응해가는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은 세계 역사를 뒤흔든 사건입니다. 그 시절 가장 큰 고난의 때를 지난 민족이 있다면 유대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럽에 거주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고 가진 것 빼앗기고 목숨까지 강제 탈취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오랜 시간 지켜오던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나치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한 것입니다. 다시금 살 곳을 찾아가야 했고 또 새롭게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도 많이 왔을 것입니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쉴 곳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먼저 와서 자리잡은 친지라도 있다면 조금은 수월했습니다. 물론 한계가 있습니다.
‘라즐로 토스’는 한 때 헝가리에서 유명한 건축가였습니다. 유대인인 그는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미국으로 피난하였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자리 잡은 후 아내와 조카를 불러들이려고 하였습니다. 마침 가구점을 하고 있던 사촌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자신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 빌미가 되어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고 있는 중 중년 신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잡지에 소개된 실패했다는 자신의 집 서재의 모습이 유명잡지에 실린 것을 가지고 그 설계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비로소 유명 건축가임을 알아본 곳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일해줄 것을 제의합니다.
그렇게 만난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의 도움으로 아내와 조카도 미국으로 불러들입니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아내도 내노라하는 대학까지 나와서 기자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전쟁을 겪으며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조카 ‘조제핀’의 도움을 받으며 흴체어로 움직였습니다. 그래도 기사 쓰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지냅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문화에 젖어듭니다. 그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더구나 유대인의 정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인간의 기본 욕망은 지니고 있게 마련입니다. 굴복하느냐 이기며 사느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오랜 시간 그리웠던 아내입니다. 그런데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였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놀랐을 것입니다. 위기 속에 살아남으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해줍니다. 아내가 고생한 것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살아와준 것만도 감사하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 실생활로 들어서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래도 부부의 성생활도 옛날 같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이 원하듯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욕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오랜 동안 보고 싶고 그리웠던 남편의 품이 얼마나 좋습니까. 따뜻하게 품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건 아니지요.
건축가도 일면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거대한 건축물은 곧 자신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꿈과 이상이 담깁니다. 그런데 옆에서 자꾸 참견하면 무시당한 듯 분노하고 짜증이 납니다. 건축물은 다른 예술작품과 크게 다른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는 것이지요. 건축을 부탁한 사업가는 돈을 따지지 않을 수 없고 건물이 들어설 공간의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저러한 조건들과도 어울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술가 개인의 취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자기 자금으로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축가가 있을까요? 영화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를 보았습니다. 3시간 반이나 되는 장편, 그래도 지루함은 없습니다. 대단!!
첫댓글 저도한번보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