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
#01. Testify
#02. Guerrilla Radio*
#03. Calm Like a Bomb
#04. Mic Check
#05. Sleep Now in the Fire*
#06. Born of a Broken Man
#07. Born as Ghosts
#08. Maria
#09. Voice of the Voiceless
#10. New Millenium Homes
#11. Ashes in the Fall
#12. War Within a Breath
체 게바라와 지미 헨드릭스가 90년대에 만나 록밴드를 만들었다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되지 않았을까. <더 배틀 오브 LA>란 시사적인 제목의 3집 음반으로, 3년만에 돌아온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극단적인 사회비판을 '하드코어 랩'이란 첨단 장르로 풀어내는 독특한 성향의 밴드다. 밴드 이름부터, '기계'로 대변되는 사회체제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들은 93년 데뷔음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커버에 월남전 당시 분신하는 승려의 사진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레이지 게인스트 더 머신은 펑크, 랩, 메틀, 힙합,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면서 소리의 한계를 돌파하는 하드코어 중에서도 특히 흑인음악의 랩과 탄력있는 그루브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켜 '하드코어 랩'이란 장르의 첫장을 열었다. 또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확고한 좌파사상으로 무장하고 있다. 97년 발표한 2집 <이블 엠파이어>의 속지에서, 음반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르트르, 헨리 밀러, 체 게바라, 말콤 X, 마르크스, 그람시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을 정도다. 잭 드 라 로차가 쓰는 노래가사는 자본가의 착취에 저항하고, 경찰의 폭력에 맞서고,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라고 직접적으로 '선동'한다. 직접 행동으로도 보여준다.
검열에 대항해 라이브에 나체로 선 적도 있고, 인디언 인권운동가 레너드 펠티에가 부당하게 체포된 사건의 정황을 <프리덤> 뮤직 비디오에 담기도 했다. 티벳의 독립을 위한 자선공연도 열었다.
요즘엔 더 적극적이다. 미국의 양심수를 위한 집회를 열고 노래를 불렀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게스 등 대기업 제품 불매운동에도 앞장섰다.
흥미로운 것은,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성을 드러내면서도 <더 배틀 오브 LA>의 음악은 더욱 유연해지고 때론 서정성까지 드러낸다는 점이다. 어깨가 들썩이는 그루브감이 음반 전체에 고루 넘쳐 귀에 착 달라붙는다. 직선적으로 파고드는 충격과 분노의 사운드를 들려줬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이제 분출하는 감정을 조절하고 원숙하게 풀어내는 단계에 도달했다.
음악적으로도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었다. 지미 헨드릭스 이후 가장 혁신적인 기타리스트로 평가되는 톰 모렐로는 요즘 테크노곡에서 DJ가 조합하는 인공음과 자연음까지 오로지 기타 하나로 만들어낸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에게 가해지는 가장 흔한 비판은 왜 상업적인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했느냐는 점이다. 사회비판을 하지만 결국 상업적인 결탁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톰 모렐로는 거침없이 말한다.
“우리의 음반이 타워에서 팔리는 것은 체 게바라의 책이 아마존에서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인디 레이블과 계약해서 음반을 냈다면, 지금처럼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전략은 분명하다. 더욱 많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확고한 주장을 담은 노래를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더 배틀 오브 LA>에는 <게릴라 라디오> <믹 첵크> 등 대중이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하드코어 랩의 진수 12곡이 담겨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사상적인 내용과 음악적 형식 모두 후배 하드코어 랩 밴드인 콘, 림프 비즈킷, 데프톤스 등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점에 올랐다.
역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다운 타이틀을 달고 11월 발표된 3집 [The Battle Of Los Angeles]는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핫샷 데뷔했다. 리더인 톰 모렐로(Tom Morrello)의 기기묘묘한 기타 연주와 부른다기보다 내뱉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잭 델라로차(Zack De La Rocha)의 샤우트 래핑, 뛰어난 쵸핑 테크닉을 구사하는 티미 C.(Timmy Commerford;매 앨범마다 다른 이름을 사용. 2집에서는 Tim Bob, 3집에서는 Y Tim K)의 베이스와 브래드 윌크(Brad Wilk)의 드럼 루핑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송곳처럼 날카롭게 비판정신을 표출하는 이들의 음악은 이번 신보를 통해 한단계 진보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형성으로 굳어가던 잭 델라로차가 보다 변화무쌍한 랩핑을 펼치고 있다는 점과 90년대 가장 주목할 만한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톰 모렐로의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이다. 덧붙여 티미 커머포드와 브래드 윌크의 연주도 좀더 응집력있게 발전해 앨범 전체에 걸쳐 물결치는 그루브감을 형성시켰다. 이들이 첫 싱글로 내놓은 곡은 두 번째 트랙의 'Guerrilla Radio'. 각종 사회운동에 팔 걷어부치고 나서기로 유명한 RATM이 현재 최고의 이슈로 삼고 있는 머미아 아부 자말(Mumia Abu-Jamal)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부 자말은 81년에 필라델피아 경관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중인 인물이다. RATM은 그의 재판에 인종차별이 개입됐다고 주장하는 것. 한편 이에 맞서 최근 경찰조합인 FOP( Fraternal Order of Police)는 RATM이 공공연하게 경찰을 비판하고 머미아 아부 자말의 석방지지 발언을 한 쇼프로그램을 NBC가 내보내자 공식적으로 NBC를 보이코트하겠다고 밝히는 등 RATM의 3집은 '로스앤젤레스의 전투'에서 '경찰과의 전투'로 비화될 조짐이다.
전작들이 질주감 넘치는 파워와 에너지로 앞만 보고 달려나갔다면 3집은 밴드 고유의 강력한 파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순간순간 강약의 호흡을 조절하면서 한결 능수능란하고 유연한 사운드메이킹을 실현시키고 있다. 또한 직설적이던 델라로차의 노랫말도 보다 다듬어져서 호소력이 배가됐다.
펑키(Funky)하고 파괴적인 'Guerrilla Radio' 뿐만 아니라 마이너 키로 진행되며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을 가진 'Mic Check', 전형적인 RATM 스타일이자 총체적인 사회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는 'Calm Like A Bomb', 내성적인 가사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강약이 인상적인 'Born Of Broken Man', 착취당하는 공장 노동자의 실상을 3인칭 시점으로 전개시키는 'Maria'등 12개의 트랙 중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완성도를 보여준다. 1번부터 12번 트랙까지 모두 추천곡으로 꼽은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신의 테크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톰 모렐로의 기타 사운드는 언제 들어도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The Battle Of Los Angeles]에서 펼친 그의 실험적인 플레이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 신디사이저 소리로 착각할 만한 'Calm Like A Bomb', 'Born As Ghosts'에서 들리는 드릴같은 소리와 뭉뚝한 기계음들, 부저소리처럼 신경을 자극하는 묘한 음향과 장중한 플레이가 스릴감 넘치는 'Maria나 'Voice Of The Voiceless'의 키보드같은 기타음 등 모든 곡에서 뭐라 형언하기 힘든 음향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온다. 'Ashes In The Fall'의 실험적인 우주사운드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연주와도 맞닿아 있다. 1, 2집으로 이미 충분히 탄성을 내지르게 만들었지만 이번 앨범에서야말로 톰 모렐로는 기타 사운드의 한계를 찾아 나서고 있는 듯하다(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RATM은 신디사이저, 키보드, 샘플링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밴드 최고의 앨범'이라는 멤버들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시속 2백킬로로 질주하는 자동차같던 RATM은 새앨범을 제작하며 브레이크도 필요함을 깨달은 것 같다. 데뷔 앨범의 파괴력이 너무나 굉장해서 RATM의 밑천은 1집에서 다 드러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번 신보를 기점으로 이들은 더 이상 디딜 데가 없을 것 같던 도약의 계단을 밟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