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둥근 문, 사막 위에 열리다
두바이 ‘미래박물관’ 개관어두컴컴한 공간 내부엔 2400개에 달하는 거대한 유리 원통이 줄지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마치 표본병이 늘어선 거대한 표본실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대형 원통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밝게 빛나는 물체가 들어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과 균류 등 2400종의 생물을 3차원 이미지로 전환한 ‘디지털 생물 표본’이었다. 손바닥 크기의 디지털 기기를 한 원통 가까이에 대자 기기 화면에 원통 속 생물의 이름과 특성이 바로 나타났다.
옆 공간에는 대형 화면에 나무 한 그루만 우뚝 서 있는 영상이 재생됐다. 앞으로 다가서자 소지한 대형 화면에 새로운 생물체들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생태계가 바뀌고 울창한 숲으로 외관이 변하기 시작했다. 외부 자극에 자연 공간이 어떻게 바뀌는지 담아낸 장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 1024개 패널로 만든 옥반지 모양의 박물관… “인류의 미래 담았다”
이곳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22일(현지 시간) 문을 연 ‘미래박물관’이다. 일반적인 박물관이 과거를 전시한다면 이 박물관은 인류의 진보를 위한 첨단 과학기술과 인류의 미래를 접목한 곳이다. 23일 박물관에서 만난 사라 알 아미리 UAE 첨단과학기술부 장관 겸 우주청장은 “UAE가 개발하고 있는 과학기술과 예술 등 모든 것을 총망라했다”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금융지구에 건설된 미래박물관의 개관 행사가 22일(현지 시간) 열렸다. 1024개 스테인리스 패널로 조립된 외관에는 알막툼 UAE 부통령 겸 두바이 국왕의 세 가지 미래비전이 아랍어로 새겨졌다. 두바이=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미래박물관은 개관 전부터 독특한 외관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지 면적 3만 m², 높이 77m의 미래박물관은 기둥 없이 가운데가 뻥 뚫린 타원 구조로 설계됐다. 마치 두툼한 거대한 옥반지가 땅에 내려앉은 듯했다. 7층으로 이뤄진 건물 외부는 1024개의 패널을 곡선으로 이어 붙였다. 정보 단위인 1024바이트(1킬로바이트)를 뜻한다. 은백색 외벽에는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국왕의 세 가지 미래비전을 아랍어 캘리그래피로 새겨 넣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2013년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했지만 실제 건설을 시작하기까지 2년이 소요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햇빛 반사가 심하고 가운데 뚫린 공간으로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문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오마르 알 올라마 UAE 인공지능(AI) 및 재택근무부 장관은 “외관에 푹 파인 곳을 만들어 빛 반사량을 줄였고, AI 기술을 이용해 캘리그래피를 포함한 외관 구조를 안정화시킬 방법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미래박물관 프로젝트를 주도한 두바이미래재단은 “박물관의 구조는 인류를 상징하며, 지구를 상징하는 녹색 언덕 위에 있다”며 “건물 중심부의 비어 있는 공간은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미래를 상징하며 동시에 미래로 나아가는 관문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 50년 뒤 우주정거장에선 어떻게 생활할까… 체험으로 채워진 전시관
2017년 우주정거장 내부를 구현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미래박물관 내 전시. 미래 우주정거장의 임무와 우주인들의 생활을 상호작용 전시품을 통해 체험해볼 수 있다. 두바이=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관람객을 위한 전시공간은 전시품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체험형 전시로 모두 채워져 있다. 대표적인 게 ‘OSS 희망’이라는 이름의 전시다. 2071년의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우주 생활과 다양한 임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해 2월 화성 탐사선 ‘아말’을 화성 궤도에 안착시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UAE의 우주개발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전시관이다.
유전공학을 접목한 시뮬레이션으로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과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치유연구소’, 디지털 시대 인간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관람객 스스로 작은 움직임을 느끼고 내면에 집중하도록 하는 체험형 전시물 ‘알 와하’ 등도 눈길을 끈다.
과학 꿈나무인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도 빼놓지 않았다. 체험형 놀이 공간인 ‘미래의 영웅들’, 폐기물관리·환경·식량안보·농업과 관개·도시계획 등 5개 분야의 50여 개 전시품으로 구성된 ‘내일 오늘’에서도 과학기술과 교감할 수 있다. 아미리 장관은 “많은 사람이 직접 참여할수록 과학기술의 가치는 배가된다”며 “박물관도 관람객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 새로운 먹을거리 찾는 아이디어 논의의 장
꼭대기 층인 7층에는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홀이 있었다. 345개 좌석의 강의실과 여러 실험실도 갖춰 과학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과학자들과 리더, 기업가들이 미래지향적 담론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아미리 장관은 “과학자와 기업인이 공존하는 모습을 UAE의 젊은 세대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이곳에서 과학기술의 비즈니스 가능성도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UAE는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최근 들어 첨단 과학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화성탐사선 아말이 화성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은 큰 분기점이 됐다. 올라마 장관은 “우주항공 분야 연구로 부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면서 UAE의 새로운 먹을거리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개발 외에도 생물공학, 대체에너지, 양자컴퓨터 등 첨단기술을 통해 국가의 부흥을 이끌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미래박물관은 이 같은 UAE의 의지를 대내외에 보여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 위한 건축물이다. 무함마드 알 게르가위 UAE 내각부 장관은 “미래박물관은 과학기술자, 혁신가, 대중이 함께 미래 세계를 정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논의하도록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두바이=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