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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
제 1 장 마음의 원점
7. 윤회(輪廻)를 계속하는 물질계
우리들 인간을 비롯하여 동물, 식물, 광물의 생명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윤회를 계속하고 있다.
윤회란,
이 세상에서 생을 누리던 것이, 다시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 세상으로 돌아간 영(靈:意識.魂)은,
다시 이 현상계에 태어나는, 그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 전생윤회(轉生輪廻)의 과정을 통하여,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자신의 혼의 조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의 낙원(유토피아. 佛國土)을 만드는 것.
그것이다.
이 지구위에 내려온 인류는,
험난한 환경. 즉 공룡(恐龍)이나 다른 동물들에 의해서 황폐된 지상에,
만생만물(萬生萬物)의 조화를 목적으로 한,
이상향을 세우는 데 힘써 왔다.
처음에는,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험난한 환경 속에서,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해 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싸움도 전쟁도 없이, 규율 바른 평화로운 사회였다.
따라서 문명도 발달했다.
마침내 공룡들도 모습을 감추었고,
작은 동물들이 살게 되어, 인간의 벗이 되었다.
개나 고양이를 비롯하여 어류, 조개류, 양서류, 파충류등이 출현했다.
뱀등은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래 되어,
그 성격이 간악하여서, 그 생명력과 교활함은,
다른 짐승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둡고 습기 찬 곳을 좋아하며, 소리도 없이 다가가서는 먹이를 덮친다.
인류의 조상들은 이 뱀에게 심히 괴로움을 당하였다.
신은 뱀을 만들어, 인류에게 경고를 주었던 것이다.
업상념(業想念)에 사로잡혀, 오관육근(五官六根)의 포로가 되면
이윽고 자기 자신이 뱀처럼 된다고 ......
당시의 인류는 저 세상을 알았고,
이 현상계의 목적도 알고 있었으며,
뱀의 존재이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일깨워가면서, 불국토(佛國土)의 건설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자손이 다시 자손을 낳게 되고,
지상의 생활에 젖어감에 따라, 저 세상을 잊게 되었고,
종족 우선, 자기 보존의 욕망의 상념이 강하게,
그 마음을 지배하도록 되어 가서,
그 때문에 평화로운 지상은,
싸움의 저자거리로 바뀌어 간 것이다.
종족은 영토문제, 경계(境界)문제 등으로
다른 종족과 반목하여 분쟁을 일으켜,
급기야는 힘이 센 자가 전쟁. 약탈로 이겨,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생기고,
독재자가 명령을 하도록 되어 갔던 것이다.
지상계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자들 중에는,
인생에서의 목적을 잃어, 부조화한 어두운 상념을, 자신의 마음에 만들어,
지옥계에 떨어져 가는 자가, 많아져 갔다.
지상계를 연(緣)으로 한, 모든 집착심이,
영위기를 흐리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지옥계가 출현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몇 번이나 인류는 마음을 상실하고,
어두운 상념으로 신의 빛을 차단하여, 큰 천변지이를 체험한 것이었다.
대우주체(大宇宙體)의 한 개 세포(=지구)의 부조화가
어두운 영위기(靈圍氣)를 형성하여,
신의 빛을 가로막아 버렸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지역도 있다.
대지진에 의하여 부조화한 부분이 제거되어 간 것이다.
노아의 방주적 현상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흙 속으로, 혹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러미지아 대륙, 무우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도,
이렇게 하여 바다 밑의 싸늘한 부스러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마음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인간들이,
많은 빛의 천사(신의 사자)를,
사형(死刑)시킨 것이 원인이었다.
나의 지도령(指導靈),
‘원투우스리’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 세상은, 조화하도록 되어있으며
인간의 육체도, 정신도, 신의 모습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으므로,
조화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으면,
그것에 비례하는 반작용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뿌리지 않은 씨앗은 나지 않는다.
뿌린 씨앗은 거두어들여야 하는 것,
이것은 신의 섭리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불(神佛)의 사자(使者)에 대해서 위해(危害)를 가했을 경우에는,
그 몇 배인가의 시련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둘.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
인간의 생각, 염력(念力)이라는 것은,
온 세계에 파문으로 되어 퍼져나가게 되며,
그것에 연관되는 사람들을 해침과 동시에,
그 염파(念波)는 결국은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조화되어, 광명에 싸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조화한 염파가 보내어져도,
반작용으로 되어, 그것을 발신한 자들에게 되돌아 가버리는 것이다.
원망, 시샘, 미움, 노여움의 상념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신의 사자를 해치거나 죽인 경우는,
지구라고 하는 대신전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것이므로,
그 파괴 행위에 가담한 자는, 모두 천벌을 받게 된다.
천벌이란,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것처럼,
스스로 지은 죄업을 스스로 받는 결과를 말한다.
현대는 물질문명의 세상이다.
사람은 저 세상을 잊고, 한 치 앞은 암흑이라고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리무중(五里霧中).
목적도 알지 못한 채, 마라톤 경주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 현상계에 태어나 버리면,
동시에 저 세상의 기억을 잊어서,
기억하고 있는 의식(意識)은 100% 잠재되어 버린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 양친의 교육, 사상 등에 의해서
점점 성장하여 감에 따라,
표면에 나오는 의식이 10% 정도까지는 성장하여 간다.
잠재되어 있는 90%의 의식 속에는,
전생윤회(轉生輪廻)의 일체가 기억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저 세상, 실재계(實在界)에서는,
(잠재의식의) 90%가 표면의식(表面意識)으로 나오고,
잠재의식(潛在意識)은 10% 정도로 되어 있다.
잠재의식이 줄어드는 것은, 성장인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
잠재의식이 표면화하는 정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으로, 타인과 자유롭게 의지가 통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수호령(守護靈) 포와이 신 포와이 신포오는,
“혼의 진화에 따라서, 광명(光明)으로 충만해지고,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 서서히 표면으로 나온다.”
라고 말한다.
그것은 신의 마음과 조화하는 정도에 따라,
생활하는 환경의 영위기(靈圍氣)가,
정묘하게 변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2 억 년 전에,
다른 조화된 천체로부터,
이 지상계를 조화시키기 위해 이동해 왔던 것이다.”
또 다른 지도령인 아가샤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는, 평화로운 불국토(佛國土), 낙원이었는데.
현대인의 과거세도 , 그 체험을 하고 있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눈먼 인생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하고,
보다 넉넉한 혼을, 스스로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만들어내고,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하는’
자애에 찬 사회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전생윤회(轉生輪廻)에서 만들어 왔던 나쁜 성격,
부조화한 업(業)을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신의 자식으로서,
이 지상계의 동물, 식물, 광물로 하여금,
지상의 조화에 역할을 다하도록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진화론에 대해서 말해보자,
인간은 아메바로부터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설도 있다.
북경원인(北京原人),
남방 여러 섬에서 발굴 된 두개골을 보고
인간의 진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아메바설에 대해서 말하면
아메바, 그 자체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아메바를 만드는 데에는 아메바의 원(元)이 있어야 한다.
수소(水素)나 헬륨 등, 100여 종의 원소에 대해서,
그러면 왜 원소는 존재하는가,
하는 점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의 자연과학은, 하나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그 벽이란 물질의 원(元)인 원자(原子), 소립자(素粒子)에 관한 상태는 설명가능해도,
그 상태를 낳고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 그 자체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양식있는 과학자는, 그 에너지를,
신불(神佛)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자는 빛의 입자로 구성되고,
빛의 입자는 영자(靈子)로 만들어져 있다.
고 하여도. 이것은 아직 객관적으로는 증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영자(靈子)와 그 존재에 대해서 설명해 가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북경원인(北京原人)과
고대인(古代人)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만약 인간이 원숭이의 진화라고 한다면
진화 도상의 유인원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도상의 유인원은, 현재는 없다.
북경원인이나 남방제도(南方諸島) 원시인의 두개골의 대부분은,
인간과는 다른 유인원이다.
인간의 두개골, 골격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이 없다.
백 만 년 전도,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고,
장래는 원숭이의 진화가 아니라는 것이 한층 더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진화론이 옳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 앞에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변해 가는 과정의 인간이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문명과 문화의 진화의 과정을 들어,
인류에 있어서도 진화의 과정이 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여도 할 수 없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의 이집트의 문명이나,
잉카의 문명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잉카의 경우,
고양이과 동물을 모티브로 한 상(像)이나,
힘 찬 토기, 금, 은, 동 등의 장신구,
웅대한 석조 신전, 대규모의 관개공사, 계단식 밭의 조성,
이같은 기술과 경제의 발전은 지방적이기는 하나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도, 그 신비가 풀리지 않는 1,300미터에 걸친 사크사와 만의 방벽,
접착제를 쓰지 않고,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석축(石築)은 지금도 끄떡없다.
돌과 돌의 접착부분은, 얇은 면도칼의 칼날조차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밀착돼 있어서
몇 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이집트의 문명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특히 회화(繪畵)에 있어서는, 일상생활의 모든 정경이 살아 있는 듯 그려져,
몇 천 년의 세월의 흐름도 잊게 할 만큼 신선한 매력에 차 있다.
당시의 이집트 사람은, 정신적으로 매우 뛰어났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첫째로 인간에게는 내세가 있으며,
그래서 다시 현세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저 거대한 피라밋은,
인간이 죽었다가 현세로 다시 태어났을 때,
그것을 사용해서, 이집트 문명을 보다 번영시키기 위해,
필요한 재보(財寶), 자료를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다.
4,000년 이상이나 지난 기제의 쿠프왕의 피라밋은,
밑변의 한 변이 230미터, 높이가 146.5미터나 된다.
석회석의 무게는 평균 2.5톤, 개수로는 230만개에 이른다.
2.5톤이나 되는 절석(切石)을, 100미터 넘는 높이까지 운반해 올린 방법은,
지금도 불명이라고 말하여진 정도로.
당시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는지 알만한 일이다.
쿠프왕의 피라밋은 일설로는,
2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35년이 걸렸다고 한다.
석회석은 주로, 지중해 연안, 그것도 유럽대륙에서 실어온 것도 상당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당시는 해양기술(海洋技術)도 발달해 있었고,
건축, 토목, 회화, 조각에 있어서도, 잉카문화와 더불어 발달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옛되다거나 새롭다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현대인의 생활을 보고,
과거의 인류는 원숭이나 아메바였다고 하는 진화론은,
성급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것은,
과거세, 현세, 내세의 삼세에 걸쳐,
영구히 불변인 것이다.
태양의 주위를, 지구가 원운동을 하는 것도,
인간이 이 세상을 마치면, 저 세상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두가 생명의 흐름,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지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죽음은 생명체에는 주어져 있지 않다.
우주가 영원한 활동을 정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 에너지도 정지함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동물, 식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은 선택의 자유, 창조의 자유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인간만큼 고락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진보도 늦는 것이다.
마음의 원점-다카하시신지-
(주 ;
윤회를 비유하자면,
두꺼운 책을 비유로 들 수 있겠다.
모두가 배우는 페이지가 다르다.
새로 배우는 페이지도 있을 수 있고,
복습하는 페이지도 있을 수 있고,
....
세상일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이 평온한 것을,
‘복 받았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스스로 한 것이지만,)
영혼이 윤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몸이 편안한 것을 복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육신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고로...
^_^
사람은 근로를 ....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인연있는 이여,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
부자가 되어 살아보는 페이지.
ㅎ ㅎ ㅎ
이제 막 시작하여,
전심전력,,
집착하는 영혼.
그 집착의 정도=100%
그리고 졸업단계에서 집착이 없는 영혼,
그 집착의 정도=1%
그다음은 가난하게 살아서,
정말로 부자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나 실험하는 단계.
입문단계.......졸업단계..
어떻습니까..
재미있는 상상이지요?
^_^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감사합니다.
성불하소서
_()_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성불하소서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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