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8월, 센다이.
소재부문 연구의 메카인 도호꾸東北 대학이 도꾜 북쪽 200km인 이곳에 있다.
동수는 안내원으로 징발당해 센다이 행 신칸센으로 이동 중이다.
이 소장과 기술부장, 그리고 김 청자... 만만한 사람이라고는 없는 팀 안내를 맡긴 극동연구소가 원망스럽다.
`실수만 없으면 되겠지... 쩝`
술만 들어가면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키는 자신을 아는 동수였다.
하지만 수준급 주당인 이 소장과 김 청자를 보니 그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얘가 관광 안내라도 하지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김 청자의 핀잔
`예,예, 곧 나갑니다.`
설레발치는 중국집 표정으로 아양스럽게 웃는 동수.
"징그럽게 웃기는. 기생 관광단이냐?
속사포처럼 몰아세우자 이 소장과 기술부장이 껄껄 웃는다.
"소장님, 혹시 마쯔리 행사 아십니까?
"아, 칠석제 말이지. 들어보긴 했지만 본 적은 없어.
"지금이 동북지방 마쯔리 철이라 운 좋으면 구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리에 걸린 큰 문어 모양을 보실텐데 그게 마쯔리 장식입니다.
시시하게 만들면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나요.
그래서 저마다 정성들인 장식을 내 걸지요.
"더운 철에 이동하는 보너스구먼.
기술 부장이 중얼거렸다.
"도호꾸는 예로부터 쟁쟁한 무인들의 고장이고 토속문화가 잘 보존돼 있답니다.
마사무네正宗 라는 일본도는 알아주는 명품인데 바로 이 지방 번주의 이름에서 유래된 거지요. 아마 박물관도 있을 겁니다.
"흠, 마사무네는 술 아냐 ? 그게 칼 이름도 되는구먼.
"그렇습니다.소장님.
또 인기 특산품으로 목각인형이 있지요. 머리하고 몸통만 있는 일본 전통인형.
여러 대에 걸쳐 그걸 만들어온 장인가문이 많다는 게 센다이의 자랑이죠.
붓으로 그려 넣는 옷 무늬와 표정이 가문마다 특징이 있답니다.
고급품 무늬는 나뭇결까지 이용해 디자인 한다는데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
"그렇게 잘 하면서 왜 소죽은 귀신 흉내를 내고 앉아 청승 떨었어.
그저 기압을 넣어야 제대로 한다니까.
겨우 기분이 풀린 김 청자.
기차가 도착하자 이 소장이 시계를 본다.
"시속 200km가 맞기는 맞는 모양이구먼.
"예, 진동도 적은 편인데요.
시가지로 나오니 마쯔리 장식들이 건물마다 빽빽이 걸려있다.
초파일 연등 같다. 대나무 뼈대에 종이를 발라 만든 머리에 연 꼬리처럼 썬
종이다발을 길게 늘어뜨린 게 정말 문어처럼 생겼다.
"축제 기분이 나십니까?
동수가 기술 부장에게 말을 건넸다.
"성황당 같구먼.
국수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촌평에 김 청자가 씩 웃었다.
호텔까지는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동수는 방에 오자마자 침대에 벌러덩 자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위기를 잘 연출할 궁리가 터지지 않는다.
`에라`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뚝 멈추었다.
칼을 두 개씩 찬 사무라이들이 화면을 잔뜩 채운다.
일본의 인기사극, 츄신꾸라 忠臣藏
번쩍 오는 게 있다.
내일 회의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걸 보니 Idea가 생긴다.
고지식한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이들이 Pride로 여기는 것을 존중하고 나아가 함께 즐긴다... OK
이 소장이나 기술부장 모두 일본을 겪은 세대이니 일본적 센스는 있으리라.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동수,
매일 아침 마시던 습관이라 커피가 당긴다.
하지만 커피숍조차 열지 않은 이른 아침이고 호텔 로비에 커피 자판기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하며 호텔을 나서 마쯔리 장식이 즐비한 센다이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인기척이 드문 거리에 우롱차, 녹차, 캔 맥주 자판기는 널려있었지만 희한하게도 커피 자판기는 없다.
문득 가게 열 준비로 부산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지켜보는 코를 커피 향이 간지른다.
‘아, 저 친구 커피 마시잖아!’
일단 식탐이 동하면 뻔뻔해진다.
염체불구 밀고 들어갔다.
“스미마셍, 오하요 고자이마쓰.”
“오하요 고자이마쓰네--?”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가게로 이방인이 밀고 들어오자
당황한 주인이 머뭇거린다. 틈을 주지 않고 달라붙었다.
“Can you speak English?"
“스꼬시 데스.”
“벤딩머신 for coffee. You know?"
"아--, 고오히 머신!“
대화는 보디랭귀지와 눈치로 척척 이어진다.
영어가 더 대접받는 것을 아는 동수는 우정 일본어를 쓰지 않고 있었다.
근처에 커피 자판기는 없단다.
그러면서 마침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니 한잔 하겠느냐 묻는다.
‘하모하모. 그래야지.’
염체 좋게 퍼질러 앉은 동수는 그제서야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화과자 중에서 모나카 종류만 파는 작디작은 가게.
커피를 얻어 마시고 흐뭇해진 동수는 진열장을 둘러보다
모나카 두 팩을 주문했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주인장.
상당히 고차원의 보디랭귀지를 동원해 소통한 내용인즉슨,
커피 대접받은 답례라면 사지 말라는 요지였다.
뭐 그런 뜻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차피 작은 선물쯤은 필요하니 괜히 사는 건 아니다.
난처한 표정으로 우물쭈물 하던 주인장은 마지못한 듯 포장해준다.
포장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일행의 아침 후식으로 뜯은 과자상자에는 한 겹씩이라야 할 모나카가
꾹꾹 눌러 두 겹씩 담겨져 있었다.
“이런 이런...!
동수는 포장에 시간이 유난히 오래 걸렸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커피 대접을 핑계로 모나카 파는 인간이 되기 싫었던 주인장이
가격의 두 배를 담아준 것이다.
주인장이 상자에 꾹꾹 눌러 담은 것은 모나카가 아니라 도호쿠 사람다운 순박함이었다. 묵묵히 상자를 바라보던 동수는 일행에게 사연을 들려주었다.
이런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고장 센다이와
오래오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듣고 난 김 청자는 간단명료한 한 마디로 소감을 피력했다.
“간바레!! 도호쿠! 頑張れ! 東北!
도호꾸 대학 소재 공학부,
우람한 고목들 가운데 있는 낡은 벽돌건물.
공학부장실에는 학부장 소노 교수와 두 사람의 교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번주 앞에 나선 시동처럼 절도 있는 동작으로 녹차를 내오는 조교.
도제식 전통이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학부장실.
인사에 이어 이 소장이 마쯔리 축제를 칭찬하자 희색이 만면해지는 소노 교수. 오늘 저녁, 축제행렬이 있다는 설명에 아이처럼 기뻐하는 이 소장.
일본인들은 그런 질그릇 같은 소박함을 소중히 여긴다.
극동연구소가 도호꾸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배경을 설명하는 이 소장. 한국에도 소재연구소를 준비 중인바, 한국 유학생을 받아주면 고맙겠다는 요지.
사전접촉으로 이미 양해된 사항이라 매끄럽게 진행된다.
소위 내마우쉬, 즉 사전조율 후 이루어지는 전형적 일본식 회의였다.
따라서 이 회의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비중이 있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노심초사한 동수였다.
안건이 마무리되고 한담을 나눌 무렵 문득 나선 김 청자.
"전통 있는 도호꾸 마쯔리를 보게 되어 기쁩니다.
오후에 마사무네 박물관도 보려는데 소경 단청구경 꼴이 될까 걱정입니다.
빈번한 스킨 쉽 그리고 이들의 긍지를 존중하는 태도가 좋다는 동수의 제안.
청자는 자기 몫을 하고 있었다. 소노가 동료 교수를 보았다.
"우리고장의 자랑거리를 보신다는 데 모른 체 할 수 없지 않겠어요?
"마침 오늘 강의가 비니까 제가 모시기로 하겠습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남형의 와다나베 교수가 나선다.
흡족한 표정의 소노 교수.
"그래, 와다나베 군은 이곳 토박이니까 좋겠지.
준비해 온 합죽선을 선물로 내놓는 동수.
일본인 특유의 깝신대는 인사가 한참 이어졌다.
동수는 승용차를 이틀 간 렌트했다.
술자리에 대비해 심야 기사도 예약해 두었다.
렌트카를 끌고 나타나자 뜻밖이라는 표정의 와다나베.
일본도와 옛 갑옷을 보는 일행.
전시물은 에도 막부 이전까지 거슬러간 것들이다.
박물관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던 와다나베는 마쯔리 행진에 대해 신이 나 설명했다.
결국 같이 보기로 했다. 여기부터는 이 소장의 몫이다.
푸른 면도자국이 어울리는 와다나베,
알고 보니 제법 호주가라 이 소장과 죽이 맞는다.
운전 때문에 술을 사양한 동수.
부러운 눈치로 술병을 본다.
반주로 마신 술이 거나해진 이 소장은 이윽고 마쯔리 행렬에 끼어 오도리 춤을 추는 데까지 발전했다.
오도리 행렬이 지나간 후에도 흥이 삭지 않은 이 소장은 2차를 외치며
술집을 안내하라 호령한다.
술을 살 입장이 못 되는 와다나베는 비교적 싼 집으로 안내했다.
`PUB` 간판이 붙은 클럽형 술집.
한 쪽에는 손님들이 노래할 마이크도 있다.
"와다나베 상, 한국에 3합이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궁합이 맞는 제육, 김치, 홍어회 3종 세트인데 인기 메뉴지요.
오늘 저녁에 얼핏 보니까 센다이에도 3합이 보입니다.
시선이 그녀에게 모아진다.
"빠찡꼬 옆에 마작집, 그 옆에 PUB 이렇게 반복되던데...
이거 3합 아닌가요?
와다나베는 웃었다.
"관찰력이 남 다르십니다.
정말 그 세 가지가 요즘 늘어났어요.
이 소장이 스테이지에 나가 마담상과 쑥덕인다.
이윽고 나오는 반주. 지긋한 연배에게 익숙한 부루라이트 요꼬하마.
외국인이 마이크를 잡자 호기심 섞어 지켜보던 사람들은 귀에 익은 곡조가
흘러나오자 탄성을 토하며 좋아했다.
“요코하마--, 부루라이트 요코--하마,
이윽고 몇 명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와다나베도 이내 합세 했다.
신나는 센다이의 밤이었다.
결국 동수까지 취해 수배해두었던 기사를 불러야 했다.
그렇게 도호꾸 대학과 제휴한 극동 연구소는 2년 후 소재연구소를 설립한다.
매년 4- 5명씩의 대학원생들이 유학을 떠났는데 이들이 훗날,
자기부상열차 개발팀의 주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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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약 20년 전에 대전 EXPO에서 현대정공이 처음 자기부상열차를 선 보인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