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듯 작품도
한번 읽어서는 올바로 그 진가를 알 수 없다.
부족한 제 의견보다는
한겨레 신문 문화부 기자이신
최재봉님의 서평이 있어서
그것을 그대로 옮겨드립니다.
이민주님 책읽기에 도움이 되셨으면 해요.
작품을 읽기 전에 그녀가 살아온 환경이나 가족사를
먼저 알게 되면 작품 이해에 많이 도움이 되실꺼예요.
가족시네마는 유미리 자신의 자전적 체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니까요.
올 여름 좋은 책 많이 만나십시요.
가족 시네마 서평
최 재 봉(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
유미리(柳美里)는 90년대 후반 일본 문단의
새로운 유망주다.
본래 희곡으로 출발한 그는
94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95, 96년 거푸 아꾸따가와(芥川)상 후보에 오르는 등
역량을 인정받다가 마침내 제116회(97년 상반기)
아꾸따가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가족 시네마」이며,
이에 앞서 중편 「풀하우스」로
이즈미 쿄오까(泉鏡花)상과
노마(野間) 문예 신인상을 받았다.
유미리의 소설들은 와해 상태의 가족을 등장시켜
현대사회의 위기상을 그리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에는 재일동포인
작가 자신의 가족사가 짙게 반영되어 있는데,
이 점에서는 「가족 시네마」와 「풀하우스」도
마찬가지다.
「풀하우스」에서는 붕괴된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들의 재결합을 꿈꾸며 새집을 지어 들어간다.
집(house)이라는 형식에 가정(home)이라는 내용물을
채워넣는다는 것인데,
가족 구성원 전원의 이름이 들어 있는
문패로써 상징되는 아버지의 그 꿈은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초청에 응했던 두 딸 중
포르노 영화배우인 작은딸은 일찌감치 도망쳐버리고,
초점화자인 큰딸만이 남아
그들의 집에 다른 가족이 들어와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가족 시네마」는 가족의 붕괴를 다룬 유미리 소설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이 소설에서
비로소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며,
가족의 붕괴라는 주제를 가장 완성도 높게
그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소설의 제목은 흩어졌던 가족들이 20년 만에
다시 만나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화를 찍는다는 설정에서
연유한다.
빠찡꼬 지배인인 아버지와 술집 호스티스인 어머니,
포르노 배우인 여동생, 스물여덟 나이에도
어린아이 같은 남동생, 그리고 화자로 이루어진
가족의 면면은 유미리 자신의 가족 구성과 흡사하다.
이 작품에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의 재결합을 꿈꾸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 노력은 흐린 날의 가족야유회에서
몸을 담그고 있지 못할 정도로 미지근한
노천 온천에 들어가서는
“가즈키, 물이 아주 좋아”라고 말하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무너지려는 텐트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의 노력과 안간힘은
그에 합당한 호응을 낳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야말로 폭력과 도박으로
가족 붕괴에 일차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호스티스로서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린 어머니에게도
책임의 일단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화자와 작가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특별히 비난하고자 하지 않는다.
소설은 가족 붕괴의 원인을 추궁하기보다는
구성원들 사이의 쌍방향 내지는 다방향적인
반감과 증오를 현상대로 그리는 데 주력한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가족들을 둘러보며
화자는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다섯 명 모두 서로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증오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점에서 이 일가는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의 가족을 닮았다.
그렇다는 것은 증오로써 표출되는 가족관계의 기저에
미미하나마 가족애가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애정과 증오가 착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라고
할 터인데, 이 붕괴된 일가를
연민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에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 화자이자 주인공인 가즈키는
아버지·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줄곧 강조하지만,
그 부모를 포함한 모두는 오히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가해와 피해의 구분이 불분명하며 상통한다는 테마는
번역 작품집 『가족 시네마』에 함께 실린
그림자 없는 풍경」에 잘 그려져 있다.
사회문제화한 학교 이지메(집단 따돌리기 및 폭력)를
다룬 이 소설에서 특징적인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실은 동일인이라는 인식이다.
이지메의 대상이 될 신참이 들어오면
그동안 피해자였던 성원은 곧바로
가해자의 무리에 합류한다.
그리고 분풀이라도 하듯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한편, 가해집단의 핵심을 이루는 마유미나
그의 하수인 격인 가오리도
처음부터 신참인 리나를 괴롭혀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버린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 역시 리나 못지않은
상처와 고통에 시달린다.
「가족 시네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림자 없는 풍경」의 이 악동들은
그들 나름대로 상처 입은 짐승인 셈이다.
유미리는 『가족 시네마』의 출간에 맞춰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했다.
우연히도 그의 방한 기간중
풀하우스』와 『가족 시네마』의 출판사인 고려원이
부도사태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그를 맞는 한국 쪽의 접대는 ‘융숭’한 편이었다.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시켰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를 대하는 한국 언론과 독자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는 말이다.
방한 다음날 열린 합동 기자회견장에는
여성 월간지를 포함해 1백여 명의 기자가 몰렸으며,
독자 상대 싸인회와 강연회도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같은 반응의 일부는
유미리와 그의 문학에 대한 오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첫번째 오해는 아꾸따가와상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 상이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상은 문학적 성취의 절정에 있는 작가가 아니라 유망한 신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1년에 두 차례, 상·하반기로 나뉘어 시상되며
공동수상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1935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물경 115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재일동포 작가 중에는
이회성(李恢成, 1951)과 이양지(李良枝, 1988)가
유미리에 앞서 이 상의 주인이 되었다.
아꾸따가와상과 그 수상자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작가로서 유미리는 아직 형성중인 상태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두번째의 좀더 심각한 오해는
유미리 문학을 민족주의적 프리즘을 통해 보려는 데서
비롯한다.
기자회견에서나 독자와의 만남에서나
사람들의 관심은 토오꾜오에서 예정되었던
유미리의 싸인회가 극우파를 자처하는
한 사내의 협박으로 취소된 사건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단지 재일동포 가족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유미리 문학에 민족주의라는 꼬리표를 달려는 것은
극우파 사내와 마찬가지의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된다.
유미리 문학의 주제는
현대사회에서의 가족의 해체라는 보편적인 주제인 것이며 단지 서술의 편의를 위해
재일동포가 동원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미리의 민족의식 결여를 탓하는 것 역시 온당하지 못하다.
한사람의 작가로서 유미리는
자신의 체험적 진실에 충실한 것이며,
그것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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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요즘 일본 문학이 재밌어서
: 빌려다 읽었거든요. 근데.... 이해가 안되네요.
: 무슨말인지. 원래 책을 읽으면, 내맘대로 해석하고 갖다붙이길 잘하는데 이번은 전체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 이 책이 나타내고자 하는게 뭔지, 그리고 왜 이 책이 상까지 받게 되었는지..... 아마 이 책의 의미를 알게 되면 상받은 이유도 알게 되겠지요?
: 가족시네마를 읽은 분들, 좀 알려 주실래요? 유미리를 좋아하시는 분이나...... 이해 하고파요.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