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은 북방지역과 러시아 쪽에서 키탄 또는 키타이로 발음하고 있다.
이 말이 변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거란으로 칭한다.
홍콩에 가면 캐세이퍼시픽이란 대형 항공사가 있다.
이 캐세이가 키타이에서 나온 말이다.
거란족의 근거지가 遼河(요하)지역이다.
중국의 고대국가는 서역지역인 함양이나 장안에 수도를 오래 두었었다.
長安(장안)은 西安(서안, 중국 발음으로 시안)으로도 부른다.
함양이나 장안에서 요하를 보았을 때 매우 먼 지역이라고 멀 遼(료)를 붙였고, 그 지역이 늪지대나 물구덩이 지역이 많아서 물 河(하)를 붙였던 것이다.
요하 지역이 중국의 동쪽에 있으니 遼東(요동)이라고 부른다.
요동 지역을 흐르는 강이 요하강(랴오허강)이다.
요하 지역에 주 터전을 닦은 나라가 거란족의 요나라다.
요나라는 고려 초기에 3번의 한반도를 침략하였다.
1차에는 서희 장군과 적장 소손녕의 담판으로 강동6주를 할양하고 순순히 물러났으며
2차에는 강조, 양규 장군이 크게 활약하였고
3차에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 유명하다.
2,3차 침략은 적장이 소배압이다.
거란의 蕭氏(소씨)와 우리나라의 蘇氏(소씨)는 뿌리가 다르다.
소손녕과 소배압은 친형제로 소배압이 형이다.
그런데 소손녕은 요나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
소배압과 소손녕의 고모가 거란 성종 야율융서의 어머니 승천태후다.
승천태후는 자기의 두 딸을 각 각 친정 조카들인 소배압 형제에게 시집보냈다.
이렇게 되니 승천태후는 소배압 형제의 고모이자 장모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거란 성종은 소배압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들여 매부인 성종의 장인이 되었다.
소배압은 귀주대첩에서 참패하여 귀국하였으나 거란 성종과는 친척이자 인척이 되어 처벌받지 않았다.
소손녕은 승천태후의 딸인 부인이 병에 걸려서 태후가 부인을 간호하라고 보낸 시녀와 간통을 저질러 발각되어 고모이자 장모인 태후에게 사형을 당하였다.
승천태후는 남편인 경종이 죽고 성종이 즉위하였으나 거란은 황제가 죽으면 황후와 후궁들을 모두 순장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태후는 바른 말을 잘하고 눈엣가시인 충신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대는 선황의 충신으로 총애를 받았으니 순장을 당해야 되지 않느냐” 고 말을 하니 이 대신이
“선황의 총애를 받은 분은 저보다 태후가 아니십니까. 태후께서 먼저 순장을 당하면 저도 바로 순장을 당하지요.” 라고 말을 하니 태후는 이 대신을 죽이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 대신들은 태후의 순장을 계속 요청하여 태후는 자신의 한 쪽 팔을 잘라서 선황의 무덤에 묻고 어린 성종의 수렴청정을 하였다.
그 후로 승천태후를 팔이 잘린 황후라는 뜻의 단완(斷腕)황후로 부르기도 하였다.
성종은 요나라 최고의 중흥 군주이자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으나 사후 함량미달의 군주가 즉위하고 여진이 세운 금나라가 강성하여 나라가 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