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우리가 힘써 시작해야 할 일들”
+ 본 문 : 빌립보서 1장 3절 - 11절 (신약 p.318)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멘!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우리가 힘써 시작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교제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로 5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아멘!
이 말씀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교제가 어떤 교제였는가를 말씀해주는 내용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교제는 복음의 정신과 그 뜻을 가지고 하는 교제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교제는 처음부터 나중까지 교제가 계속되었습니다.
교제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교제가 있고, 돈 때문에 만나는,
경제적인 교제가 있으며, 공감하는 지식을 토론하고 연구하는 학문적 교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연이나, 혈연, 학연과 같은 이유로 만나는 교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제는 결국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교제이기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복음정신과 그 사랑으로 얽힌 교제라야 영원한 참 교제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정말로 나를 위로해 주고, 진실로 나와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나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에, 그레서 정말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에,
진심으로 나와 함께 고민하고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성도의 교제란, 기쁨과 슬픔, 위로와 평안을 함께 나누는 복음안에서의 교제를 말합니다.
복음 안에서 나누는 교제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고, 상대를 도와주어야 하며,
언제나 내가 먼저 손해를 본다는 자세로, 영원히 계속하는 교제를 말합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는 말한마디를 해도 신중하게,
성별해서 해야 하며, 행동 하나에도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빌립보교회와 바울이 바로 이 복음 안에서의 교제를 나누었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로 이 복음 안에서의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관계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복음 안에서의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힘에는 권력이라는 힘, 돈의 힘, 지식의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앨빈 토풀러)
권력이라는 힘, 돈의 힘, 지식의 힘, 이 세 가지의 힘은 우리 인간의 환경이나,
생활 조건을 편리하고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힘들은 우리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을 새롭게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우리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믿음의 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고,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착한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힘도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의 힘으로 우리가 착한 일을 하고자 할 때에, 마음에 감동이 올 때에,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시작하여 주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 주십니다.
이런 분은 분명, 모든 삶을 마쳤을 때에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노라.” 아멘!
이 고백의 주인공이 되도록 착한 일에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셋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에 참예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아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위한 일에도 적극적이었고, 매우 헌신적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바울 편을 들었고,
사도 바울이 반대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사도 바울의 편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괴로워 할 때에 함께 괴로워하였고, 어려울 때에는,
물질로 도와주었으며, 도와 줄 사람을 보내서 뒷바라지까지 해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은혜에 참예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느 목사님이 하신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갔는데, 그 조문객들의 위로의 말이 가지각색이더랍니다.
‘목사님, 뭐라고 드릴 말이 없습니다.’ ‘많은 위로 받으시지요.’ ‘기도하겠습니다.’
‘불효자식이네요,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먼저 가다니...’
그런데 한 조문객은 와서 아무 말 없이 주룩 주룩 눈물만 흘리고 가더랍니다.
그 목사님에게 그 어떤 말보다도, 그가 흘리고 간 눈물이 가장 큰 위로가 되더랍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기쁨으로 헌신하는 것이며,
주님의 고난에 나도 기꺼이 십자가를 질 각오로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 고 고백했습니다.
내 심장이 아니라, 온 인류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놓을 수 있었던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에 참예하는 일에 힘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 넷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아멘!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지극히 선한 것” 은 ‘최선과 지선’ 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악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선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나쁜 사람도 많고, 나쁜 일도 많이 있지만, 좋은 사람과 좋은 일도 많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일도 많지만, 긍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일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내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어느 쪽의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서,
내 기분과 감정이 달라집니다. 결국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의 심성이나 습관은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소리를 듣고,
좋은 말을 하기보다는 나쁜 것 보고, 나쁜 소리 듣고, 나쁜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좋은 것이나 긍정적인 면을 보기보다 나쁜 면, 부정적인 면을 보는데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은 기분이 좋고, 감정이 밝은 순간보다도, 기분이 나쁘고,
감정이 상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 는 데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악한 것을 찾지 말고 선한 것을 찾으라는 의미요,
둘째는, 악을 힘쓰지 말고 선을 힘쓰라는 의미요, 셋째는, 선과 악을 분별하라는 의미요.
넷째는, 지고의 선 - 끝이 없는 최고의 선이신 주님을 찾고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선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지고의 선이신 예수님을 찾아야 하고,
우리가 영원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다섯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열매를 맺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란 글로 말하면 결론이요, 작품으로 말하면 마지막장입니다.
모든 과일나무의 진면목은 그 열매로 평가됩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열매를 맺는 가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라는 예수님에게 우리는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가지인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지켜져야 합니다.
첫째는, 포도나무는 포도열매를 맺고, 사과나무는 사과열매를 맺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열매는 제철에 맺어야 제 맛을 내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이 불러 일하기를 원하시는 때, 아멘으로 순종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셋째는, 열매는 풍성하게 맺혀야 하듯이, 우리도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넷째는, 열매는 맛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도 맛을 주는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로서, 성도로서 열매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겐 주님이 일하기를 원하시는 때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열매가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신 여러분에겐 풍성한 열매가 맺혀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겐 맛이 있는 열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제구실을 잘 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교제를 힘써야 하고, 착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은혜에 참예하는 일에 힘써야 하며,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의의 열매를 맺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과 덕을 끼치고,
자신에게는 한없는 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