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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를 한편 묵상해 봅니다.
시편 62편은 다윗의 단심가,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노래한 시입니다.
가장 혹독한 배반과 시련의 골짜기에서
그는 절망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노래를 부릅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사람이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그의 마음이, 그의 영혼의 시선이 주님께 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사 26:3, 킹흠정)
사탄 마귀는 이방원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우리의 마땅한 답변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뿐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다윗의 단심가가 시편 62편입니다.
본문 1, 2, 4, 5, 6, 9절에는 모두 ‘아크’라는 불변사로 시작이 됩니다. 그 뜻은 ‘오직’, ‘진실로’, ‘확실히’ 등의 뜻입니다.
1절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2절 오직 그만이
4절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5절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6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9절 [오직] 사람은 입김일 뿐
시편 62편의 표제어에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두둔은 아삽과 헤만과 함께 다윗왕의 시대에 악장(music director)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62편은 다윗이 지은 시를 악장 여두둔이 붙인 곡으로, 인도자를 따라서 회중이 부른 찬양입니다. 여두둔이 만든 곡조에 따라서 부른 시편은 세 편이 있는데 39편과 오늘 본문 62편, 그리고 77편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도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을 다닐 때의 참담했던 상황을 노래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늘 본문 1, 2, 4, 5, 6, 9절에는 모두 ‘아크’라는 불변사로 시작이 됩니다. 그 뜻은 ‘오직’, ‘진실로’, ‘확실히’ 등의 뜻입니다. 그래서 2절과 6절에는 ‘오직’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1절 전반부도 ‘오직’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오직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봅니다”라고 하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집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어성경으로 1절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문의 느낌 그대로 다시 번역하면, “오직, 하나님, 잠잠히, 나의 영혼, 그로부터, 나의 구원”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라봄과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배가 많이 고프거나, 목이 많이 마를 때, 동사 없이 말을 합니다. “엄마! 맘마!”, “엄마! 물!”이 표현의 전부이지만, 메시지는 아주 강렬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니,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또렷하게 확신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너무 분주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하심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밤이든, 이른 아침이든 우리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역사가 아주 또렷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특별히 ‘잠잠(히)’는 ‘침묵’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입을 닫아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침묵으로 기도를 드려보세요. 하나님의 음성이 드립니다.
다윗의 고백은 계속 이어집니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1절과 같이 ‘오직(아크)’으로 시작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반석으로’, ‘구원으로’, ‘요새로’ 다가와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반석’은 ‘바위’라는 뜻도 있지만, ‘절벽’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암벽등반가가 높은 절벽을 가는 모습을 영화나 TV에서 가끔 볼 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이 오를 수 없는 높은 절벽과 같은 분이시고, 다윗을 그 절벽위에 올려놓으셔서, 안전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새’도 ‘아주 높은 곳’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요새가 아무리 높은 곳에 있어도, 공군력이 발달해 높은 곳에 있는 요새가 무용지물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높은 곳에 있는 진지(陣地)는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진지, 요새와 같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반석(절벽)과 요새(높은 진지)와 같다는 고백 사이에 ‘나의 구원’을 넣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반석되심과 요새되심으로 인해서 구원을 누릴 수 있고, 또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1인칭’입니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 나와 상관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지만, 현실의 삶이 쉬웠던 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대적들은 언제나 다윗을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3-4)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해석하는 대는 2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의 어려운 처지와 형편을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오히려 다윗을 대적하는 자들의 실상을 말한다고 적용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인간은 다 기울어지는 담과 같이 연약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과 상황은 기울어지고 있는 담과 같고, 무너지는 울타리와 같이 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대적자들은 그 때를 다윗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동사들을 보면 ‘죽이려 하다’, ‘공격하다’, ‘떨어뜨리려 하다’는 모두 잔인한 장면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특히 4절 앞에도 ‘오직’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적들은 오직 다윗을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의 높은 자리’는 틀림없이 ‘다윗의 왕위’를 의미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목에 칼을 겨누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높은데서 떨어져야, 비로소 자신이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권력욕을 비롯한 욕망은 끝이 없이 없습니다. 자신의 왕이 되겠다고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악함을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과거에는 소위 ‘패륜(悖倫)’이라는 범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소식이 신문지상이나 뉴스를 통해서 보고 듣게 되면, 많이 놀라기도 하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렇지만 20여 년 전부터는 점점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런 소식을 보고 들어도, 우리의 양심이 무디어져서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이 더욱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 외에는 인생을, 사회를 새롭게 해 주실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을 강조(5-8절)
대적들이 다윗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다윗은 다시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 하나님만 바라본다고 고백합니다.
(5-6)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1-2절과 거의 흡사합니다. 다만 1절에서는 “나의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했고, 5절에서는 “나의 소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나의 소망’이라는 단어는 ‘기다리다’를 뜻하는 ‘카봐(카와)’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카봐’ 동사는 이사야 40:31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에서 ‘앙망하다’가 바로 ‘카봐’입니다. 그런데 ‘카봐’ 동사의 문자적인 뜻은 ‘줄로 묶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묶여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줄을 당겨주심으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또한 5절의 말씀은 1절과 동일하게 동사가 없습니다. 다윗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구원은 물론 소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혹 삶이 고통스럽고 좌절스럽더라도, 입을 다물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이 올라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져 인생이 난파선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끊어지지 않는 줄로 우리를 묶고 계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이 구절은 문장의 구조가 아주 강한 메시지를 줍니다. 이 문장의 처음과 마지막에 ‘하나님께 있습니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구원과 영광’,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가 있습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과 ‘내 힘이 반석과 피난처’를 ‘하나님’이 감싸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누리는 구원, 영광, 반석, 피난처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도 1절과 5절과 마찬가지로 동사가 없습니다. 다윗이 그만큼 깊이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백성들을 권면합니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2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시시로 의지하라’입니다. ‘시시로’의 의미는 ‘항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의뢰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항상 의뢰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의뢰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왜 항상 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시시로 라고 했을까요?
바로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순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에나 기쁠때에도 바라보아야할 소중한 분이십니다.
둘째는 마음을 토하라입니다. 역시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지 못할 큰 일도 없고, 아뢰지 않아도 될 작은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과 다른 하나님(9-12절)
또 다윗은 하나님이 없는 삶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도 잘 알려줍니다.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사람이 입김과 같고, 인생이 속임수와 같아서 입김보다 가볍다고 합니다. 겨울에 유리창 입김을 “호”하고 불면, 뭔가 존재하는 것 같아서 거기에 손도장도 찍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입으로 저울위에 입김을 불어서 저울의 바늘을 옮겨보세요. 아마도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인생의 무게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는 흔적조차도 찾기 어려운 인생의 무게입니다. 영원히 비해 셀수조차 없는 인생의 길이입니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힘으로 무엇을 빼앗으면 잘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재물이 늘어난다고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인생도 입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11-12)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깨달은 두 가지 핵심 속성은 바로 ‘권능(공의)’과 ‘인자(사랑)’입니다. 로마서 11장 22절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이 나오듯, 우리는 하나님의 이 두 가지 성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준엄하신 왕이시면서 동시에 인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롬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신앙에는 2가지 균형이 필요합니다.
엄위하심만 바라보면 신앙이 두렵고, 무서워집니다.
인자하심만 바라보면 신앙이 가벼워지고, 경솔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다함이 없는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계신 우리의 아버지로 이해할 뿐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다스리시는 위엄있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바로 보는 경외심과 두려운 마음, 공경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들이 많아 보이나 실상은 입김같고, 안개같고, 무너지는 담벽과 같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새 마음, 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며 절대평안을 누리시는 복된 날 되세요.
https://youtu.be/9BAkivldL-w?list=RD9BAkivldL-w
https://youtu.be/7yCZ-jWWEAk?list=PL10gnklJm-OLsyKMrt1T24xtgw1_HO8F_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