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5]풀과의 전쟁, 이제부터닷!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은 아주 쉬운 말이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결코 장난이 아님을 금세 알게 된다. 농사꾼들에게 있어 풀과의 싸움은 일상사이지만, 아무리 독한 제초제除草劑를 쏟아부워도 안되는 게 그것이다. 논두럭 풀을 깎아야 하는 것은 농부의 ‘의무’이지만, 수확 때까지 최소한 두세 번은 풀약을 해야 한다. 풀약을 하기 전에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예초기로 깎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초보 농사꾼 3년차, 풀이 얼마나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옥수수 농사를 지으면서 80m 25개 고랑에 제초제를 두 번 했는데도, 지난주 수확을 하려고 보니 고랑을 까마득히 덮어버린 것을 어이 하랴. 고랑풀은 그렇다치고, 옥수수 포기마다 사이에 무성히 자란 ‘바라구’(일부 지역은 바래기) 풀은 미움을 넘어 증오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억세기로 말도 못해 손으로 뽑을 수도 없다. 사방팔방 380도로 뻗어내려 곳곳에 뿌리까지 내리는 것을 보면 경악스럽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는 “긍게 그렇게 자라기 전에 뽑거나 북(그 주위에 흙으로 덮는 것)을 했어야 했다”며 혀를 차면서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건든다. 이 노릇을 어찌 하랴. 옥수수 포기 사이에 콩(백태, 메주콩)을 심어야 하는데, 그 중간을 분간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정말로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복수심까지 생겼다. ‘너희놈들, 며칠만 두고 봐라. 어마무시한 풀약으로 씨를 말리리라’ 결심했다.
이윽고, 옥수수 대를 모두 낫으로 쳐냈다. 장마가 이어지는데 용케도 그날 오후 비가 오지 않을 것같았다. 옳다구나, 기회는 찬스다. 나를 몇 달 동안 그토록 골탕을 먹이던 너, 잡초여! 이제 그야말로 복수復讎는 시작됐다. 제초제로 ‘목욕’을 시키리라. 농협에서 제초제 2병을 사왔다. ‘바스타’와 ‘테레도골드’가 그것이다. 1병에 11000, 12000원씩이다. 농약값도 장난이 아니다. 600평이면 최소 2병은 든단다. 전기충전 20L 농약통에 농약 150cc를 타 물에 희석해, 바라구 박멸작전에 나섰다, 농약 하고 서너 시간 동안 비만 안오면 약효藥效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농사꾼들의 정설定說이기에 마음이 급했다. ‘이놈들, 이 뜨거운 맛을 보라. 하루이틀이면 빼빼 말라 비틀어 죽을 것이다. 고약헌 놈들’하는 마음뿐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쓴웃음, 고소苦笑를 맘껏 지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靈인 인간을 그토록 괴롭히다니. 그러면 그뿐.
그악스런 풀이 예초刈기로만 해결된대도 좋겠다. 예초기는 무소불위이기에 인정사정 돌보지 않는, 농사꾼들에게는 생필품이지만, 이 지독한 풀들은 예초를 했어도 사나흘이면 또 고개를 내민다. 요즘같은 장마철이면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버려, 금세 무릎까지 닿는데 어안이 벙벙,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독한 제초제를 쳐발라 꼬실러버려야 한다. 그 효과도 한 달이 채 못가긴 하지만. 어떤 ‘농부철학자’(고창의 윤구병)는 “잡초는 없다”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어찌 잡초雜草가 없을 손가! 말도 안되는 말이다. 피는 피고, 벼는 벼인 것을. 그 피를 어찌 농사꾼이 가만히 두겠는가. 보는 족족 뽑아 씨를 말려야 하는 것을.
80 평생 논과 밭농사를 지은 아버지는 지금도 풀이 ‘웬수’, 현재진행형이다. 시력이 멀쩡하시므로, 밭에 풀만 보면 곧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어 풀을 뽑는다. 주간보호센터 퇴근을 하면 4시 반, 5시부터 시작하여 어둑어둑해지는 7시 반까지 날마다 풀과 전쟁을 벌이신다. 오죽하면 내가 악담을 했다. “아버지는 절대로 천당에 못갈 것이요. 풀도 살려고 나왔는데 보는 족족 그렇게 뽑아대니 어떻게 천당을 갈 것이요?”라고 말이다. 그때만 해도 풀이 그렇게 겁나고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올해 옥수수밭을 덮어버린 바라구풀들을 보면서, 나의 전의戰意가 아버지 못지 않게 부풀어 올랐다.
그제, 농약통을 네 번이나 갈아가며 네 시간동안 그 ‘몹쓸 풀’들을 ‘꼬시른’ 까닭이다. '꼬시른'의 원형은 ‘꼬시르다’이며 독한 약으로 말려죽인다는 전라도 표준어이다. 이 비만 그치면 속히 나가보리라. 풀약의 효과가 제대로 빛을 발했는지, 나는 그게 못내 궁금하다. 잡초, 잡풀이여! 수수백년, 농부들을 그만큼 괴롭혔으면 됐지, 이제 그만 제발 이 땅을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