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기 이미지라는 관점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인류의 영원한 고향으로 존재한다.그 어떤 시대,그 어떤 문학작품에도 인간이 이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한 적은 없었다.‘오디세이아’는 무한한 인간 긍정의 통찰로써 불멸의 위대성을 가지고 있다.
20세기말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한한 인간 부정의 서사문학들을 목격하고 있다.1979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영화 ‘에일리언’시리즈는 인간이 어디까지 자신을 혐오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최근 상영된 ‘에일리언4’에서 인간은 유전자 복제 기술을 악용하는,죽어 마땅한 동물로 이해되며 유일하게 인간적인 애정을 보여주던 여성은 그렇게 프로그램된 로봇으로 밝혀진다.
‘오디세이아’는 이런 세기말의 서사시들에 대한 대척점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고전이다.
○영생 뿌리친 험한 귀향길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는 여신 칼립소에게 붙들려 7년동안이나 그녀의 섬에 억류되어 있던 오디세우스가 신들의 결정에 의해 풀려나는데서 시작된다.
인간 조건에 대한 감동적인 긍정이 바로 이 첫 대목에서부터 드러난다.총 24권으로 이루어진 ‘오디세이아’의 제5권에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붙들고 그의 귀향길에는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그리고 자신의 미모를 강조하며 자기와 같이 살아준다면 오디세우스를 신으로 만들어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까지 애원한다.
이 때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에게 하는 말은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라면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대목이다.
“고귀하신 여신이여,그 때문이라면 화내지 마시오.나의 아내 페넬로페가 외모와 키에 있어서 그대만 못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그녀는 죽게 마련인데 그대는 늙지도 죽지도 않으시니 말이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귀향의 날을 보기를 날마다 원하며 바라고 있소”
○신보다 인간고통 사랑해
오디세우스는 감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인간을 신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다.그리고 인간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들이 가하는 무자비한 고통을 다 참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오디세우스에게 인간은 그들의 유한성과 욕망,무지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신보다 더 위대하다.그는 아내 페넬로페를 사랑하고 있고 그에게 이 인간적 사랑은 어떤 신적인 힘보다 영원한 것이다.
인간적인 사랑은 서로가 ‘반한다’는 로맨틱한 신(神)들림이다.인간적인 사랑 안에 유한자(有限者)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어떤 신,무한자(無限者)가 살고 있다.두 인간이 이룩한 사랑은 그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까닭에 더욱 위대해진다.그들과 그들을 둘러싼 모든 세계가 무너져가도 그들이 이룩한 사랑은,서로가 자기 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인 그 인륜적 유대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배를 탄 지 18일만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 의해 또 난파당한다.표류하다 도착한 섬에서 그는 그곳의 왕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경험담을 털어놓는다.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와 무서운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마녀 키르케와 노래로 유혹하는 사이레네스 등이 그것이다.오디세우스가 겪은 이 모든 모험들은 신화적인 세계의 폭력을 보여준다.
○외로운 시대 행복한 희망
개인에게 세상은 항상 포세이돈 신이 지배하는 바다처럼 엄청나게 크고 무섭다.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이 무서운 세상도 어쩌지 못하는 강한 것을 이야기한다.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과 늙은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이 그것이다.
마침내 오디세우스는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고향에 도착한다.그리하여 아내를 괴롭히던 청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가족을 되찾는,지극히 인간적인 복수와 재회를 이룩한다.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시대.세상은 크고 무섭지만 두렵지 않아서 인간은 항상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었던 시대.‘오디세이아’를 읽는 오늘의 독자들은 춥고 외로운 우리 시대 앞에서 이 행복했던 시대의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된다.“황금시대여 다시 한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