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에서 치즈를 생산하는게 가능해지도록 만드는데에는 벨기에에서 온 지정환 신부(본명 :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의 노력이 컸습니다.
1959년 한국에 온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는 호남땅에 봉사하러 왔는데 간척지를 만들어 땅을 나눠줬지만, 너무 가난했던 주민들은 땅을 팔거나 고리대금업자에게 빼앗겼고
산양을 나눠주며 치즈를 만들게 했지만, 유럽에 다녀온 사이 산양도 다 팔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해보자면서 다시 산양을 공짜로 주고, 이번엔 주민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미래를 계획하고 책임지게 했고
드디어 성공했고 오늘날에도 유독 임실에서 서양식 치즈 생산이 가능해진 배경입니다.
첫댓글 집단화하면 다같이 죽거나 다같이 살거나니까 적어도 개인행동으로 나락가는건 막을 수 있죠. 가난한 시절 지나오면서도 집안마다 선산은 남아 있는 것도 팔기에 집안 눈치보이고, 또는 아예 공동소유거나 해서 그런거고.
근데 이걸 국가단위로 확장 적용해서보면 결국 비유럽 후발국의 산업화에는 한국 대만 싱가폴 식의 국가적/사회적 코포라티즘이 필수일 수밖에 없나 싶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