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현 구위는 분명 예전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버틸 수 있는 변화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코너워크가 구사되는 직구를 자유자재로 뿌린다면 분명 희망이 있다.
올 겨울부터 내년 시즌 초까지 텍사스 레인저스 우완 박찬호의 화두는 ‘재기’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화려한 재기로 텍사스 마운드의 희망으로 복귀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의견은 엇갈린다. 미국 언론들은 재기에 회의적이고, 박찬호 개인은 재기할 수 있다며 남다른 각오를 보이고 있다. 현재 박찬호에게는 희망적인 뉴스와 부정적인 뉴스가 공존하고 있다. 희망적인 뉴스는 부진의 원인을 찾았다는 점이다. 지난 2002년 현지 국내특파원들이 박찬호의 부진 원인을 허리에서 찾았지만 본인은 이를 극구 부정했다. 지난해 벅 쇼월터 감독과 텍사스 언론들은 ‘아프지도 않다고 하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부진하냐’며 에이스에 대한 대접을 접어버렸다. 구단에서 신체 정밀검진을 했지만 그때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주선해 콜로라도에 있는 척추전문의 야밀 클린 박사를 만나 허리에 문제점을 발견했다. 부진의 원인을 찾은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희망적이다. 해법을 찾은 셈이다.
박찬호의 지난 2년 동안의 부진은 훈련부족과 자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찬호는 다른 건 몰라도 훈련만큼은 메이저리그 정상급이다. 물론 부정적인 뉴스도 있다. 박찬호는 2001시즌부터 직구 구속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2, 3km씩 구속이 저하됐다.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박찬호가 그동안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장점은 불 같은 강속구였다. 평균 150km대의 빠른 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모습은 팬들의 가슴에 얹힌 체증을 씻어내는 청량제였다. 하지만 바로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박찬호의 트레이드마크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구속 저하에 허리통증이 겹치면서 박찬호의 부진은 오래갔다. 2년 동안의 부진은 투수에게는 긴 시간이다. 특히 수술로 인한 공백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미국 언론들이 박찬호의 재기에 의문점을 던지는 까닭은 팔꿈치, 혹은 어깨 수술도 없이 장기간 부진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딛고 예전처럼 재기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프리에이전트(FA)들이 장기계약을 맺으면 그 후유증이 나타난다. 박찬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스콧 보라스 사단’ 투수들이 눈에 띄게 후유증이 나타났다. LA 다저스의 케빈 브라운, 대런 드라이포트, 텍사스의 박찬호 등이다. 보라스 사단인 그들은 FA 계약 이후 일제히 부진의 늪에 빠졌다. 브라운과 박찬호는 허리, 드라이포트는 팔꿈치 무릎 수술.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언론들은 수술받은 투수에게는 매우 관대하다는 점이다. 물론 인종차별적인 시각도 엄연히 있다. 드라이포트가 박찬호였다면 <LA타임스>의 논조가 그렇게 우호적일 수 있겠냐는 원론적인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무튼 백인 드라이포트는 2000년 연봉 5천만 달러에 FA계약 후 고작 8승에 그쳤지만 박찬호에 비하면 매스컴의 비난 강도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다. 박찬호는 이제 전성기가 지났다. 2001년 다저스에서 15승을 기록한 것을 끝으로 2002년 9승8패 방어율 5.75, 2003년 1승3패 방어율 7.58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현 상황에서 당장 15승 투수로 복귀하기는 어렵다.
박찬호의 평균 연봉은 1천300만 달러다. 지금의 기량으로는 연봉 1천만 달러에도 미칠 수가 없다. 박찬호 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은 결국 FA다.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FA를 앞둔 상황에서 무리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는 2001년 시즌 후 FA가 돼 대박을 터뜨렸다. 사실 다저스 구단과 코칭스태프도 박찬호의 허리가 정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구단은 시즌 후 FA가 되는 박찬호가 더이상 ‘다저스맨’이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본인이 던지겠다는데 다저스 측은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당시 다저스 분위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2001년 후반기, 당시 현 다저스의 댄 에번스 제너럴매니저의 직책은 단장보좌역이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단장 후보감에 올랐던 그는 라이벌 케니 윌리엄스(현 단장)에게 밀리자 사임을 하고 다저스로 이적했다. 단장보좌역이 된 에번스는 홈, 원정 구분 없이 따라다니면서 박찬호를 면밀히 검토했다. 솔직히 박찬호는 후반기 피칭, 특히 8, 9월에 에번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세인트루이스 원정경기에서 우천으로 쉬었다가 재등판해 난타를 당했고, 9·11 테러 이후 샌디에이고 전에 불펜투수로 나섰다가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더구나 박찬호는 경기 전과 후에 말이 달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시즌 후 단장직에 오른 에번스는 박찬호와 1년 계약을 추진했다. 장기계약은 애초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그는 당시 에이전트 보라스의 전화에 일절 응답하지 않아 <LA타임스> 다저스 코너 가십난을 장식하기도 했다. 보라스는 박찬호의 장기계약을 원했지만 다저스의 거부로 결국 텍사스로 방향을 바꿨다. 다저스는 박찬호가 잔류를 거부하자 바로 이날 노모와 2년 계약을 발표했다. 2001년 겨울, 박찬호를 원했던 팀은 텍사스뿐이었다. 올해 박찬호가 부진하자 “박찬호와 장기계약을 하지 않은 게 에번스 단장의 가장 큰 공이다”라며 그를 치켜 세웠다. 미국에서 대하는 박찬호 평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찬호의 발목을 잡은 또 하나의 요인은 2002년 시범경기 때 나타난 허벅지 통증이다. 이른바 햄스트링으로 통하는 이 부상으로 박찬호의 투구폼은 완전히 흐뜨러졌다. 투구 밸런스를 실종, 제구력이 들쭉 날쭉이 됐다. 투구 밸런스가 흐뜨러지면 신체 부위도 정상이 안된다. 즉 박찬호는 허리로 시작해 햄스트링, 투구 밸런스 실종으로 이어졌고 몸도 망가진 것이다. 사실 박찬호는 제구력이 좋은 투수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제구력이 더 난조를 보였다.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02년 145.2이닝 투구에 볼넷이 78개다. 1이닝에 0.5개꼴의 볼넷 허용이다.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로서는 절대 허용해서 안될 수치다. 더구나 명색이 제1 선발이라면 1이닝당 0.5개의 볼넷은 곤란하다. 2003년에는 29.2이닝을 던지면서 25개의 볼넷을 내줬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통산 90승을 거둔 거물 투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성기가 지난 투수로 취급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부진이 결정적이다. 다저스 시절의 위력적인 구위를 재현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투수는 쉽게 버릴 수가 없다. 투수난에 허덕이는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의 재기를 위해서는 제구력 보완이 절실하다. 제구력 보완이 안될 경우에는 재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10승 이하의 성적은 재기가 아니다. 현재 박찬호의 직구 구속은 145km 정도다. 뉴욕 메츠 서재응과 비슷하다. 팬들이 서재응의 구속에 대해서는 별 문제를 삼지 않으면서도 박찬호의 구위에는 우려를 표시한다. 그동안 빠른 볼을 구사한 박찬호였기에 그럴 만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직구 제구력이기 때문이다. 박찬호의 현 구위는 분명 예전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버틸 수 있는 변화구를 갖고 있다. 변화구는 스트라이크존이 직구보다 넓다. 스트라이크존만 걸치면 스트라이크다. 파워커브, 슬러브, 체인지업은 일품이다. 이 볼을 살리는 게 바로 송곳 같은 제구력을 겸비한 직구다. 140km 이하의 직구 스피드로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그레그 매덕스가 가장 좋은 본보기다. 코너워크가 구사되는 직구를 자유자재로 뿌린다면 박찬호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다. 미우나 고우나 박찬호는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초의 메이저리거다. 그가 이렇게 주저앉는다면 우리 모두의 손실이다.
- 문상열(<스포츠 서울> 야구전문기자)
첫댓글 MLB코리안리거 방으로 이동함이 마땅하다고 사료되옵니다.
대런 드라이포트 2000년 연봉이 5000만 달러냐??? 4가지 전문기자야... 저건 뭔말을 해도 왜 미운지 모르겠네...
"미우나 고우나" ========> 이 대목에서 속마음이 엿보이네요. 박찬호를 왜 그리 미워 하는지, 원..........
"국내특파원들이 박찬호의 부진 원인을 허리에서 찾았지만" <-- 으음...진짠가요? 기자가 기자인지라 믿을 수가 있어야지원... 전문가들이 지적한걸 배껴 나불거린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