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분위기를 내보고 싶었다. 낙엽을 뿌리면서 2% 모자라다는 CF도 찍어 보고 싶고, 한적한 공원에서 '자기야~ 나 잡아봐라~'라고 하며 주위 사람들한테 돌 맞을 짓도 한번쯤은 과감히 해보고 싶은 계절이다. 그러면서 뭔가 폼 나는 계획을 세우고 싶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을 하루에 충족시켜 줄만한 곳이 어딜까 하며 찾다가 인사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을의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미술관 데이트!
|
|
미식가 커플, 감동받다! ‘민가다헌’
시간이 정오가 될 즈음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인사동 쪽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옛 왕의 행렬을 재현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인사동 그 긴 거리를 꽉 채울 만큼 긴 행렬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았다. 예전에 가끔씩 정오쯤 창덕궁이나 경복궁에서 인사동에서 이어지는 이런 행렬을 한다고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 행사가 일정치 않아 인사동에 자주 오는 우리도 쉽사리 볼 수 없었었다. 분장이나 의상 모두가 완벽한 그 모습에 우리는 운이 좋았다며 좋아라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왕의 가마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 숨이 차도록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행렬을 구경한 뒤 우리가 간 곳은 인사동 뒷골목에 자리잡은 민가다헌이라는 한정식 집이었다. 명성왕후의 친척이 만들었다는 그곳은 실내 장식이 조선시대 개화기를 컨셉으로 한 한식집이다. 잡지에서 소개된 것을 본 뒤 언젠가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지만 차마 가격 때문에 쉽사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곳이다. 다행히도 점심 특선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 팟찌의 데이트를 이용해서 그곳을 찾았다.
민가다헌은 잡지에서 봤던 그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사진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약간의 서구문화가 깃들기 시작한 시대의 실내장식이 단순한 음식집이라고 말하기엔 아쉬울 정도였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그 인테리어에 반해 우리는 마치 일본인 관광객이라도 된 양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었다. 종업원도 그런 우리를 보고 흠칫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내를 했다.
한옥과 한정식이라는 컨셉덕분인지 한국사람보다는 외국 관광객에게 더 잘 알려져서 우리가 갔을 때도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 사람들이었다. 종업원들도 영어로 접대하는 것이 익숙한 듯 했다. 다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국적불명의 언어들로 인해 그곳에서 우리는 홀로 이방인이 된 듯 했다. -_- |
|
|
|
|
|
|
점심코스는 잣죽과 호박 샐러드와 날치알, 쇠고기를 넣은 허브비빔밥 혹은 너비아니(선택) 맑은 장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음식은... 정말이지 하나같이 훌륭했다는 표현밖에 쓰고 싶지 않다. 우리 커플은 모두 식도락을 좋아하면서도 입이 짧은 편이라 웬만한 음식점이라도 그리 만족을 하지 못하고 나오는 편인데 민가다헌의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셋팅이나 나오는 음식도 정갈했지만, 젊은 세대들도 즐길 수 있는 담백한 잣죽과 신선한 단호박 샐러드.
특히 메인 메뉴에 함께 나오는 모시조개장국은 오오... 감동의 물결이었다~! 마지막 디저트로 차가 나오기 전, 그 막간을 이용해서 정원을 구경하는 우리를 발견하고, 차를 그곳으로 가져다주는 종업원의 세심한 배려도 있었다. 그녀는 계산을 하고 나올 때는 '사진 잘 찍으셨나요?'라는 익살스러운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네. 너무 예쁘네요’라고 웃었지만 대문을 나오자 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민망한 마음에 뒷골목을 빠르게 뛰쳐 나왔다.
지하철 : 1호선 종각역 하차, 지하철 3호선 안국역 하차, 인사동길 경인미술관 앞 골목을 따라 낙원악기 상가 방향으로 직진.
문의 : 02-733-2966
주요메뉴 *식사류 / ·점심세트A15,000원 ·점심세트B:18,000원 ·저녁세트A:47,000원 ·저녁세트B:56,000원. *차류 / (총 15가지) ·녹차(우전/세작/중전) : 15,000/11,000/8,000원 ·매실차 : 8,000원 ·에스프레소 : 7,000원 |
|
|
|
|
|
|
새가 나는 곳, ‘옛찻집’
소화도 시킬 겸 인사동 거리를 잠시 구경했다. 이제는 점점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인사동이 아쉽긴 했지만 싸고, 예쁜 물건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노점상의 귀걸이는 4~5000원 대로 저렴하면서도 예뻤다. 그 중 나.의.멋.진 남자친구는 작은 구리판에 비 내리는 구름과 산이 그려져 있는 예쁜 귀걸이를 내게 선물했다. 훗~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자 '옛 찻집'이라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골목 사이에 들어가 있어서 찾기는 어려웠지만 어려운 만큼이나 참 예쁜 곳이었다. 실내에는 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날개가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안이 훈훈해서 따뜻한 차보다 차가운 배숙과 매실차를 시켰는데, 혀를 살짝 감도는 단 맛이 느껴지는 차였다. 특히 함께 나오는 한과와 떡을 찍어먹을 수 있는 포크는 길고 뾰족했는데 가지고 놀기 좋아서 우리는 연신 그 포크를 가지고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를 빠르게 찔러내는 놀이를 했다.(다 아시죠? ^^) 분위기 있게 노는 건 이제 충분했다는 식의 장난이었다.
이곳에서 한가지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옛 찻집 구석에는 새하얀 나뭇가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나뭇가지가 너무 새하얀 것이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다가갔다가 그것이 모두 새똥인지 알고 기겁을 하고 도망쳤던 일. .........어쨌거나 찻집은 예뻤다. ^^;
가는 길: 종로 2가 탑골공원과 금강제화 중간에 있는 길로 쭉 올라가면 한빛은행이 있다. 다음골목에 통인가게가 있는데 그 골목 안쪽 끝에 석탑이 앞에 있는 곳이 ‘옛 찻집’이다.
문의전화 : 722-5332(약도보다 전화가 더 빨라요 ^^)
주요메뉴 : 수정과 (6,000원) 매실차 (5,000원) 유자차 (5,000원) |
|
|
|
|
|
|
데이트를 끝내고 나서
우리가 옛 찻집을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해진 때였다. 언제나 결심은 하지만 막상 날을 잡아 데이트를 즐기기엔 너무나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오늘의 미술관 데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바쁜 일상 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서로를 다시 한번 마주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경상도 사나이와 서울 처자의 분위기 잡는 일은 아직도 한참이나 먼 듯 싶지만, 오늘로 인해 조금은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을까? ^^ 이렇게 즐거운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해주신 팟찌에 너무 감사드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