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에서 남대가를 따라 북쪽으로 600m 정도 올라가면 개성민속여관이 있다.
개성민속여관의 설명을 보면 조선시대 전통가옥단지를 여관으로 개조하여 1989년 개장하였고 19채의 건물에
100여개의 방이 있는데 4, 6, 8, 16, 19호동에는 1등실과 2등실이 있고 나머지는 3등실이라고 한다.
숙박시설로 온돌방, 전통침구 등을 구비하고 있으며 여관 내 민속식당에서는 반상기, 닭곰, 약과 등 토속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이 지역에 있던 한옥을 숙박시설로 꾸미고 주변의 민가와 담장을 쳐서 차단한 모양인데 이 안에는 배천이 흐르기 때문에
숙박을 하면서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천을 따라 나무를 동그랗게 신경써서 잘 다듬어 놓았다.
북한은 형편에 비해 외국에 보이는 부분은 정말 정성껏 가꾸는 것 같다. 사상만 안 들먹이면 봉사원들도 친절할 것 같은데 한번 숙박하고 싶다.
여기에 숙박해본 외국인의 리뷰를 보면 전통적인 건물과 산책로도 좋고 편안했는데 나름의 전기 사정이 있는 것 같고
쌀 껍질 베개가 딱딱하여 불편했다고 적고 있는데 아마 이 여관의 베개는 메밀 껍질로 속을 채운 것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첫번째 사진은 서울 북촌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꽤 세련된 한옥인데 몇 등실인지는 몰라도 높은 등급일 것이다.
방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사진상으로 보면 여름인 듯 바닥에는 화문석이 깔려 있고 미닫이를 열면 자개장이 있고 그 위에 침구류가 있다.
TV는 80년대에나 볼 수 있던 그런 제품인데 전체적으로 방안 분위기는 우리나라 60년대 종로 근방 중상층 계층이 살던 한옥집같다.
고집있고 어느 정도 학식있는 할아버지가 대청마루에서 모시한복 입고 부채를 부치면서 신문을 보고 있을듯한 분위기다.
식사는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으로 삼계탕인 닭곰, 약과에 한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반상기 등이 있다. 사진의 밥상이 13첩 반상기다.
개성관광을 한창 할 때 관광객들은 통일관 혹은 여기에 있는 백송식당에서 이 13첩 반상기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관광 리뷰를 읽어보면 조미료의 맛에 익숙한 사람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이다. 2달러짜리 냉면도 팔았다고 한다.
수라상이 12첩인데 그보다 더 많고 첩수도 밥, 국, 장류나 김치 등을 세지 않는데 그릇 숫자를 보니 이런 저런 것도 첩수에 포함시킨 듯 하여
오랜 족보있는 그런 차림은 아닌 것 같고 나중에 북한 측에서 관광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나름 개발한 밥상같다.
전통적인 느낌인데 어째 남한에서 전통이라고 하는 것과 느낌이 약간 다른 것 같다. 기름진 느낌이 없어 보이고 담백할 것 같다.
몇 가지 반찬만 빼면 먹고 나서 목탁으로 북치기박치기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반찬이야 때에 따라 바뀌겠지만 사진만으로 어떤 음식인지 살펴보자면 약밥에 도라지 무침에
고기 완자, 생선에 계란을 입쳐 구운 듯한 전, 회, 오이소박이, 약과 비슷한 과자, 두부 지진 것, 나물 등에 국이 오르는 것 같다.
화학 조미료를 별로 안 넣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상당히 건강한 밥상일 것이다. 그런데 버라이어티한 느낌은 부족한 것 같다.
개성은 예로부터 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냉면과 전주비빔밥과 함께 개성탕반이 유명했다고 한다.
개성음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의 요리를 보면 단아한 기품이 엿보인다.
맵지 않고 간도 세지 않은 느낌이고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려 왕조의 궁중과 귀족의 요리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개성음식은 대표적으로 조랭이떡국이라든지 편수, 보쌈김치, 주악 등을 들 수 있는데
평양냉면처럼 단품의 메뉴 중에서 대중화 된 것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생소하며 개성음식을 파는 가게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개성음식과 실제 개성의 음식이 상당히 다를수도 있는 것이고
위의 음식들이 얼마나 그런 개성음식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래사진은 전통한옥 여관거리입니다. 잘만 발전시키면 교토의 료칸못지 않은 장소들이 될수 있을듯.
참고로 서울 청계천 모습입니다 (삼청동). 개성과 비교해보면, 고도(古都)로써 서울이 얼마나 전통을 잃어버린 모습인지 극명하게 비교가 됩니다. 사실 개성이 약 5백년간의 수도로써의 기능을 이미 600여년전에 (918~ 1394) 잃어버린데 비해, 서울은 계속해서 무려 6백여년간 (1394- 현재) 수도로써 기능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19세기말까지 천년간 수도역할을 했던- 즉 우리로 치면 개성시대+서울시대- 교토 (794~ 1868) 의 현재모습을 보면 서울의 그것은 더욱더 가슴아프게 와닿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시기적으로 경주보다 교토에 가까운 도시는 서울이지요).
서울시 삼청동 청계천 모습 (20세기초)- 청계천은 이런 역사적인 모습을 최대한 다시 담는쪽이 되어야 하지 않을런지.
일본 교토 현재
교토뿐 아니라 현재수도 도쿄도 덴포인거리등 에도시대를 재현한 거리가 외국인등 관광객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큰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래는 모두 덴포인도리입니다.
덴포인거리 곳곳에서는 샤미센등 일본 전통악기의 연주가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과연 서울 어디에서 아쟁이나 거문고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을까요. 전통음악과 문화는 박물관에서만 보존되어야 할 물건들이 아닙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면 곧 사라집니다.
도쿄의 유명인사들의 오래된 화집이나 사진이 가로등에 붙어있습니다.
에도시대를 묘사한 현대식그림이 거리 곳곳에 쓰입니다 (식당-카페문)
에도시대의 인력거사진. 이 인력거들이 실제로 이 거리에서 관광객들에게 제공됩니다. 이사진은 거리 곳곳에 있습니다.
덴포인거리의 여러 볼거리와 전통주점과 상점
마지막으로 중국도 전통거리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일뿐이지만, 복건성 난허우제거리 (삼방칠항- 서진시대 거리- 건물은 명청시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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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조금 샜습니다만, 개성 한옥지구 보존결정은 정말 현명한 정책입니다. 지금이라도 근대서울의 '우'를 범하지 않는 이런 정책이 많은 한반도의 고도들에서 결정되길 바랍니다.
1903년 서울 (한양)- 한성전기회사사옥에서 본 모습 (클릭하면 커집니다)
첫댓글 이렇게 문화유산 보존 잘해준건 북한한테 진짜 감사함 ㅠㅠ우리역사 넘 소중해
궁금해 진짜 나도 가보고싶다
헐ㅠㅠㅠㅠㅠ보존 너무 잘 되어있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가고싶어 ㅜㅜㅜ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