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성경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죽은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예수님이 그의 무덤 앞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랬더니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흰 천에 둘러있는 채로 무덤에서 걸어나옵니다. 대단한 기적의 사건이었습니다. 한참 후에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시 부활했던 나사로가 여태 살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후에 다시 죽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나사로라는 이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로구나. 남들은 한번 죽는 것도 무서워하고 피하려 하는데 이 사람은 두 번씩이나 죽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죽음의 사건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 보통은 잊고 삽니다. 그러나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혹 죽음을 맞닥뜨리면 두려워합니다. 사고를 당한다든지 몹쓸 병에 걸린다든지 하면 죽음이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대부분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할까요? 물론 그 뒤의 일어날 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로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맞기도 합니다. 특히 순교하는 신앙인들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기꺼운 일도 아니요 즐겁게 받아들일 일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이 그리 쉬운 시간을 지나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매우 고통스럽게 맞이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특힌 전쟁 중 큰 부상을 입고 죽음을 맞는 장면은 큰 고통을 표현합니다. 어쩌면 그 고통이 두려워서 죽음을 꺼리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 결코 쾌락하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후의 일은 고사하고 우선 닥칠 고통이 두려운 것입니다. 만약 죽음의 시간이 마치 환각제를 복용한 것 같은 환상이나 쾌락한 느낌을 제공한다면 혹 괴로운 삶보다 죽음을 택하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다행히(?) 죽음은 쾌락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살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열여섯 번을 죽는 경험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가능한가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이 무슨 볼행입니까? 그래서 말합니다.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라도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막대한 빚을 갚으려고 그런 일을 하기로 계약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직업이 있다니! 놀랄 일이지요. 상상입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에 관한 한 인간의 능력과는 별개입니다. 공상 속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우리는 죽은 개라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행여 그런 직업이 있다 하더라도 막말로 차라리 죽을 지언정 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번이면 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미키’는 그렇게 소모품이 되었습니다. 지구촌에서는 윤리 종교적인 문제가 있기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구 밖으로 나와서 시행되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실험용 휜 쥐처럼 사용되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한번 실험으로 사용되고 나면, 즉 죽고 나면 도로 복사되어 나타납니다. 전의 모습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모양만 똑같은 것이 아니고 그 동안의 기억까지 모두 지니고 등장합니다. 죽음의 고통을 지나 다시 그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영생도 가능할까요? 한 가지 의문은 그 사람이 혹 짧은 시간 내에 죽지 않고 보다 오랜 시간을 지내면 늙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뒤로는 복사되어 나타나는 사람도 노인으로 등장하지 않을까요? 영생? 늙어서?
외계인이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요? 일단 우리에게 우호적일까요, 적대적일까요? 영화에서도 그 양쪽이 모두 등장합니다. 우호적이라면 대표적으로 ‘ET'가 떠오릅니다. 그 반대로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에이리언‘이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무튼 대부분은 적대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크리퍼는 우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마저 이용하려는 인간들과의 사투를 보여줍니다. 지구촌에 꼭 악당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우호적으로 대하려는 대상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들과도 싸워야 합니다. 사실 그 행성에서는 그들이 원주민입니다. 찾아온 인간들이 침략자이지요. 하기야 이 땅에서도 우리 스스로 그런 짓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문제가 또 하나 발생합니다. 미키가 죽은 줄 알고 복사가 이미 되었습니다. 18번 미키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17번 미키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모양도 기억도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다릅니다. 이제부터는 서로 따로 생각하며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대로 살아간다면 서로 다른 인간이 되리라 짐작합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말이지요. 현실성은 없기도 하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 여겨집니다. 복사가 된다 하더라도 일단 ‘인간’입니다. 어떻게 임의로 죽이면서 실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영화 ‘미키 17’(Mickey 17)을 보았습니다.